동양에 노자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역설 인간의 탐욕과 착취를 경계 자연의 순리 따라 살길 권고했다. 서양화가 중엔 인상파 화각 중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이 “원시적 순수성”을 주장하며 남태평양 타히티로 가 살다 거기서 사망했다. 몸과 영혼까지 타히티 부속 작은 섬에 묻었다. 밝고 아름다운 모습의 원주민 여인들이 많은 야자수와 계곡물에 머리 감는 모습을 천국으로 형상화해 그린 르네상스적 메시지를 산업사회의 탐욕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 시기에 제국주의는 원료와 시장을 개척하려 사방팔방 배를 띄워 성장동력을 찾기 시작했다. 이 눈에 걸린 서태평양의 여의도 7배 인구 1만 3천이 사는 나우루였다. 서양인들은, 매일 팔딱이는 참치를 잡아 마른 야자수 잎에 싸 구워 먹으며 캠프파이어를 둘러싸고 춤추는 것만 본 것이 아니었다.
돋보기와 곡괭이를 앞세워 나우루인들에게 섬 곳곳을 파게 하며 진귀한 서양 신상을 선물했다. 조사를 마치고 서양인들과 나우루 지도부 간의 회사가 여러 개 급히 설립됐고, 그 수는 날로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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