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해설]
스마트폰에 뺏긴 거실·중국에 쫓기는 기술, TV의 돌파구는?
화질·크기 전쟁은 끝났다… 삼성·LG TV, '경험·플랫폼' 대전환
삼성전자가 TV사업부 수장을 원포인트 인사로 그야말로 전격 교체했다. 그것도 하드웨어 전문가가 아닌 마케팅·플랫폼 전문가를 앉혔다. TV사업 역사에서 극히 이례적인 인사다. 수십 년간 TV 업계를 지배해온 '화질, 사이즈, 가격경쟁력'이라는 세가지 성공 공식을 허무는 것인 동시에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시선으로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만들어내겠다는 선언이다.
지난 4월 23일 베트남 하노이 영빈관 이재명 대통령 국빈 방문 환영 만찬에서 대화하고 있는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1. IT시대 수십 년 ‘시청’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로 버텨온 TV
TV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오직 ‘시청’이라는 하나의 가치에 갇혀 있었다. 스마트폰을 생각해보자. '통화'라는 단일 기능에서 출발해, 그것이 카메라가 되고, 지도가 되고, 지갑이 되고, 영화관이 됐다. 손에 쥔 작은 기기 하나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수십 배로 늘었다. 집에 두고 나오면 십중팔구 다시 가지러 돌아가야 할 만큼 손안의 필수재가 됐다. 스마트폰 없는 일상을 살아가지 못한다.
그 사이 TV는 무엇이 되었는가. 더 얇아지고, 화면이 커지고, 화질이 선명해졌다. 그것뿐이다. 기술 진보가 빠른 IT 분야에서 이토록 오래 또 집요하게 단 하나의 가치에 안주한 기기는 TV가 거의 유일하다. 왜 그랬을까. TV가 등장한 이래 수십 년 동안 그것이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더 크고 더 선명한 화면 앞에서 소비자들은 경탄했고, 그 경탄이 매출로 이어졌다.
성공 경험은 조직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다른 길을 찾는 눈을 멀게 한다. 성공 방식이 누적되면 그것이 곧 세상의 방식이라 생각하는 게 인간과 조직의 섭리다. 그래서 세상이 다른 것을 원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를 대개는 폄하하게 된다.
그사이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거실로 들어왔다. TV가 독점하던 시간과 시선은 분산됐다. 마치 나이 든 가장이 자리는 지키고 있지만 조용히 존재감을 잃어가듯, 한때 집안의 중심이었던 TV는 그렇게 서서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2. 삼성에 내쫓긴 소니의 역설...같은 프레임 안에서 싸우면 진다
중국이 10세대 공장을 짓고 대형 패널을 쏟아내기 시작했을 때, 이 결말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기술 격차가 줄어들면 결국 물량과 원가로 승부가 갈린다. 한때 TV의 절대 강자였던 소니가 한국의 LCD 기술 앞에 왕좌를 내어준 것처럼, 우리는 이제 같은 기술을 가진 중국의 물량 앞에서 같은 처지에 놓였다.
압도적인 브랜드 파워와 기술력을 자랑하던 소니는 왜 무너졌는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브라비아라는 세계적 브랜드가 있었고, 화질 엔진 기술도 뛰어났다. CRT(브라운관)에서 LCD로의 전환이 늦었을 때도 소니는 재빠르게 삼성과 합작법인을 세워 새로운 기술에 대응했다. 그러나 그 대응의 화두는 언제나 화질이었다. LCD 기술이 범용화하자 소니도 같은 부품으로 같은 게임을 해야 했다. 싸움은 결국 원가와 규모의 싸움이었다. 2013년 소니의 순손실은 1조 3,000억 원을 넘었다. 결국 소니는 TV를 포함한 하드웨어 사업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고, 게임·영화·음악 등 콘텐츠 사업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2023년, 소니의 영업이익은 삼성전자를 24년 만에 추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TV를 놓아버린 소니는 더 강해졌다. 이제 소니는 남은 TV 사업 지분마저 중국 TCL에 넘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소니의 이야기는 단순한 패배의 역사가 아니다. 소니는 TV 자체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프레임을 바꿨다. 하지만 삼성은 TV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TV라는 하드웨어는 유지하되, 그 위에 올라가는 가치의 문법을 전혀 다르게 써야 하는 길을 가고 있다. 그것은 버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길이다. 같은 제품을 다른 눈으로 보는 것, 그것이 삼성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 오래전부터 다른 역사 속에서 그 전환의 실마리를 찾고 해답이 없을까를 탐색해왔다.
3. TV 공습에 극장은 어떻
게 생존했나....
연합과 연결의 전략
TV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극장은 망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안방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데, 굳이 밖에 나가 돈을 내고 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극장은 사라지지 않았고 살아남았다. 어떻게?
극장은 더 큰 화면만으로 승부를 걸지 않았다. 팝콘 냄새, 연인과의 시간, 상영 전의 설렘, 나온 뒤의 저녁 식사 등. 극장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경험으로 묶어냈다. 영화관과 쇼핑, 식사, 놀이가 한 공간에 어우러지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진화했다. 그 접근 방식이 오늘날의 대형 멀티플렉스를 만들었다.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특별하게 보내러 가는 장소가 된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핵심이다. 극장이 살아남은 것은 경쟁자보다 더 큰 화면을 만들어서가 아니었다. 소비자의 시간을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경험의 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의 시간이 더 충만해지기를 원한다. 단순히 보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시간 안에서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어 한다. 극장은 그 본성을 읽었기에 살아남은 것이다.
지난 4월 15일 서울 서초구 삼성 강남사옥에서 열린 삼성전자 2026년형 TV 신제품 미디어 브리핑. (사진=연합뉴스)
4. 카메라의 공습에 화가는 어떻게 살아남았나...존재의 재정의
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화가들은 존재론적 위기에 처했다. 사물을 그대로 옮겨 담는 일을 카메라보다 더 잘할 순 없었다.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화가를 찾던 사람들은 사진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살아남은 화가들은 어떻게 했는가. 그들은 더 정확하게 그리려 하지 않았다. 대신 방향을 바꿨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빛이 변하는 순간, 감정이 흔들리는 찰나, 내면에 새겨지는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저게 그림이냐”는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인상파가 미술사의 거대한 한 획이 되었다. 카메라가 줄 수 없는 것, 즉 인간의 주관과 감성과 해석을 그림 속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극장과 인상파 화가. 이 둘이 처한 상황은 달랐고, 찾아낸 해법도 달랐다. 하지만 그들이 향한 방향의 본질은 같다. '더 편하고 싶다. 내 삶에 더 이롭고 싶다. 내 시간이 더 충만해지기를 원한다. 나를 둘러싼 변화 속에서 편안하게 녹아들고 싶다.' 이 같은 인간 본성의 방향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다. 각자가 처한 업의 특성에 맞게, 그 본성에 닿는 자신만의 가닥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능력이고 전략이다.
5. TV가 가야 할 길, 이미 시작되었지만 갈길 멀었다
극장과 인상파 화가가 찾아낸 해법은 각각 달랐지만, TV에 대입해보면 흥미로운 그림이 나온다. 극장의 키워드는 연결과 확장된 경험이었다. TV도 그 길을 이미 걷기 시작했다. 삼성과 LG는 OTT 플랫폼들과 손을 잡아 고객이 하나의 화면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손쉽게 연결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신 광고 수익을 얻는 구조다. 콘텐츠의 연결이라는 측면에서는 방향을 잡은 셈이다. 하지만 극장이 만들어낸 것은 단순한 연결이 아니었다. 영화관 밖의 식사, 쇼핑, 놀이까지 아우르는 확장된 경험의 공간이었다. TV가 아직 그 수준의 확장에 이르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인상파 화가의 키워드는 관점의 전환이었다. 그려야 할 대상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인상과 심상으로 존재의 이유를 재정의했다. TV도 그 시도를 하고 있다. 삼성의 ’더 프레임(The Frame)’은 꺼진 화면에 명화를 띄워 거실 벽의 액자가 되고, LG전자의 ‘올레드 갤러리 TV’는 미술관의 작품처럼 공간에 스며든다. 시청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넘어, 꺼져 있는 시간조차 집안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디지털 아트의 프레임으로 존재하도록 하는 시도다.
하지만 이것은 관점 전환의 초입에 불과하다. 카메라 앞에서 화가들이 찾아낸 것은 단순히 그림의 용도를 바꾼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TV가 진정한 관점 전환을 이루려면, 아직 누구도 이름 붙이지 못한 무언가를 향해 가야 한다. 소비자 스스로도 원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필요, 그것을 먼저 발견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모른다"고 말했다. 마차의 시대에 더 나은 이동수단을 물어보면, 아무도 자동차를 원한다고 답하지 못한다. 그저 더 빠르고 편안한 마차를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세상은 마차가 아니라 자동차로 진화했다. 스마트폰 이전에 이미 팜파일럿이 존재했고, 초기 자동차는 너무 느려서 대중화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모든 혁신의 시작은 언제나 미약하지만, 세상은 결코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소비자는 계속 바뀌고, 경쟁자는 끝없이 생겨난다. 업의 본질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TV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소비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존재해야 하는가. 카메라의 등장으로 존재의 이유를 송두리째 흔들렸던 화가들처럼, 그 질문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만 비로소 답이 보이지 않을까. TV 스스로가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소비자의 시간과 공간은 스마트폰이, AI가, 혹은 전혀 다른 무언가가 채울 것이다.
삼성전자 모델이 2026년형 삼성 OLED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삼성전자)
6. 절박함이 만드는 변화...벼랑끝 선 삼성TV, 과거 영화 되찾으려면
궁하면 통하고, 통하면 행하고, 행하면 변한다. 지금 삼성전자 TV는 절박하다. LG전자도 마찬가지다. 하드웨어 수익성은 한계에 달했고, 중국 업체들은 기술과 물량 모두에서 빠르게 따라붙고 있으며, 소비자의 시간과 시선은 계속해서 분산되고 있다. 그 절박함이 이례적인 인사를 만들었다. 절박함 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극장도, 인상파 화가도, 소니도, 그 절박함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조직에서 인사는 전략의 언어다. 말이 아니라 자리로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 리더십의 방식이다. 이번 인사는 단순한 경영진 교체가 아니다. 수십 년간 TV 업계를 지배해온 하드웨어 중심의 세계관을 스스로 내려놓겠다는 선언이다.
겉으로는 기술의 경쟁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이 싸움의 본질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싸움이다. 더 편하고 싶고, 내 삶에 더 이롭고 싶고, 내 시간이 더 충만해지기를 원하는 인간의 본성. 그 본성을 향해 TV만의 가닥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이 시대 TV 산업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제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이 그 자리에 섰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갇히지 않은 시각, 다른 세계에서 쌓아온 경험, 그것들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힘. 새로운 길을 여는 선구자는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삼성전자 TV의 새로운 수장이 그 선구자가 되기를 응원해본다.
김희연
은 기업전략 컨설턴트다. 씨티은행과 증권사 IT애널리스트를 거쳐 LG디스플레이 최고전략책임자(CSO)에 올랐다. 금융·증권·IT·제조를 아우르는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 MI·신사업 발굴·IR을 총괄했다. 퇴임 후엔 AI를 이용해 현자·석학들과 대화하며 차별화 전략 및 리더십 해법을 탐색하는 <AI스토밍(AI-Storming) 방식> 을 창안했고, 관련 저작권도 갖고 있다. 이 독창적 AI활용 방법론을 기반으로 기업과 기관에 <전략 컨설팅> 및 <AI 강의> 등을 하고, 뉴스버스에도 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공감지능시대>와 <리더는 AI에게 질문하지 않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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