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 프로그래머
지난 7월 7일, 혐오 콘텐츠의 확산을 근본부터 막겠다는 제도가 시행됐다. 이른바 '일베 방지법'이다. 가세연 사태가 남긴 상처를 생각하면 입법 의도까지 나무랄 수는 없다. 사람이 죽었고 삶이 무너졌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조급함도 이해한다. 사이버 레커들을 향한 피해자들의 분노 역시 정당하다. 그러나 분노에 법의 설계를 맡길 수는 없다. 의도가 좋다고 나쁜 법이 정당해지지는 않는다.
일베를 막아 봐야 또 다른 일베가 지하에서 생겨날 뿐이다. 풍선은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른다. 지하로 내려간 혐오는 더 과격해지고 추적하기도 어려워진다. 음지로 내몰린 불만은 햇빛을 보지 못한 채 발효된다. 그렇게 발효된 혐오는 어느 날 더 큰 폭발로 터져 나왔다. 역사에서 몇 번이고 반복된 일이다.
미국의 KKK단이 그런 경우다. KKK의 인종 테러는 불법으로 규정되고 철저히 배격당했지만 유색 인종을 향한 혐오와 테러는 오히려 더 과격해지고 있다. 혐오를 막는 데만 매달릴 게 아니라 혐오를 낳은 불신과 박탈감을 풀어야 한다.
이 법은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제한한다. 그런 류의 규제는 예외 없이 양날의 검이다. 법이 혐오의 기준을 정하는 순간 그 기준은 권력을 쥔 쪽에 유리하게 기울기 쉽다. 표현의 자유는 원래 불쾌하고 거슬리는 말, 다수가 혐오하는 말을 지키라고 존재한다. 쾌적하고 무해한 말에는 보호가 필요 없다. 일베 방지법이 일베 아닌 다른 무언가를 막는 데 쓰이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는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마찬가지다.
미국은 우리보다 먼저 이 문제를 고민했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인종차별적 발언조차 원칙적으로 금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혐오를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발언이 낳은 피해에는 법적·사회적 책임을 혹독하게 묻는다. 민사소송에서 나오는 천문학적 손해배상, 광고주 이탈, 사회적 매장이 실질적인 억지 장치다. 혐오 발언을 법으로 허용하더라도 그 결과에 책임을 지우는 구조인 것이다. 우리가 갈 길도 이쪽이다.
현행 '일베 방지법'은 혐오의 기준을 법으로 정의한다. 필자는 이 기준이 몹시 우려스럽다. '우리 편을 악마화하는 그 표현은 혐오'라는 논리가 끝내 모든 표현을 막아버리는 데까지 가지 말라는 법이 없어서다. 실제로 그렇게 굴러가는 나라가 중국, 북한, 아프가니스탄 등이다. 이들 나라는 지도부를 향한 비판이나 폭로를 '국가와 지도부에 대한 혐오'로 규정하고 가혹하게 탄압한다.
혐오를 규정하고 형사처벌하는 방식이 혐오 장사꾼에게 잘 듣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그들에게 형사처벌은 순교에 불과하다. 자신이 받는 심판을 '정권의 탄압'으로 규정하는 순간 혐오는 졸지에 정치 투쟁이 된다. 김세의씨가 실제로 이 수법을 즐겨 썼고 그렇게 막대한 부당이득을 챙겼다. 이들을 멈춰 세울 장치는 자본주의식 처벌, 이른바 '금융 치료'다. 이들의 행동에 금융 치료가 반드시 뒤따르는 구조를 세워야 혐오 표현의 수위도 빈도도 내려간다. 미국 사회가 그렇게 돌아간다. 말하자면 '혐오는 자유지만, 그로 인한 파멸은 네 책임'이다.
법과 시민의 역할도 나눠서 봐야 한다. 법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법은 피해를 보상하고 억지력을 만드는 도구다. 혐오를 근절하는 일은 결국 시민의 몫이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 가세연을 괴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가세연 시청자다. 조회수를 올려 준 손가락들이 혐오 비즈니스를 키웠다. 혐오 콘텐츠를 클릭하지 않는 시민이 가장 센 규제자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어떤 법안보다 중요한 이유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아무 의심 없이 공유하는 순간 우리 모두가 혐오 생산에 가담한다. 공유 버튼 한 번은 한없이 사소해 보이지만 사회적으로는 꽤 무겁다. 그 사실을 아는 시민이 늘수록 혐오 콘텐츠가 설 자리는 줄어든다.
우리는 피와 죽음을 대가로 집권자의 독재 시도를 좌절시키고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얻은 교훈은 분명하다. 강력한 법률로 시민의 자유를 틀어막는 순간이 곧 독재의 시작이다. 혐오 장사도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풀어야 한다. 일베를 법으로 틀어막는 나라가 아니라 일베를 스스로 외면할 줄 아는 시민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혐오 장사를 규제하려는 입법 시도 자체는 환영한다. 다만 그 방법이 자칫 압제에 악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조환 프로그래머
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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