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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설] '웜다운' 들어간 삼성 반도체…파업 전 느려지는 공장, 흔들리는...

TSMC 등 경쟁사들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관측이 대만 매체를 통해 확산되고,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이 '공급 안정성'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시장에서 신뢰는 단가보다 비싸다. 한 번...

[사설] '웜다운' 들어간 삼성 반도체…파업 전 느려지는 공장, 흔들리는...

[위클리오늘신문사] 공장이 멈추기 전에, 먼저 속도를 늦춘다. 반도체에서는 이것이 곧 ‘위기 신호’다.

삼성전자가 파업에 대비해 생산량을 선제적으로 줄이는 ‘웜다운(warm-down)’ 절차에 착수했다는 소식은 파업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손실이 발생하고 있음을 뜻한다.

반도체 공정의 특성상 갑작스러운 셧다운은 수천억 원 규모의 웨이퍼 폐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설비를 서서히 식히고, 투입 웨이퍼를 줄이며, 라인을 ‘안전한 저속 상태’로 바꾼다. 이 과정 자체가 곧 매출 감소다.

평택 D램 라인에서 웨이퍼 보관함 수만 개를 물류 장비 밖으로 꺼내는 작업, 신규 웨이퍼 투입 제한, 고부가 제품 위주로의 믹스 재편은 ‘비상 매뉴얼’이 실제로 가동됐다는 신호다. 공장을 멈추지 않기 위해 공장을 늦추는 역설.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를 상정한 방어 조치가 이미 생산 차질을 만들고 있다.

문제는 이 손실이 ‘삼성전자 내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 반도체 라인에 직·간접으로 연결된 협력업체는 2000곳이 훌쩍 넘는다. 소재·부품·장비는 물론, 청소·유지보수·인력 공급까지 이어진 생태계다.

공정이 멈추면 이들 중소 협력사는 매출 공백을 그대로 떠안는다. 파업 18일보다, 웜다운과 정상화까지 이어지는 한 달 이상의 공백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노사 갈등의 또 다른 축은 ‘노조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중심의 요구에 DX(디바이스경험) 소속 조합원들이 반발하며, 교섭 대표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가처분 신청을 준비 중이다. 교섭을 중단하라는 취지다.

파업을 앞두고 노조가 ‘회사와’가 아니라 ‘노조와’ 법적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조합비 인상에 반발해 탈퇴 후 소송비를 내겠다는 움직임, 사내 메신저 프로필 문구를 둘러싼 감정전까지 번지며 내부 균열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여기에 법원이 판단할 또 하나의 축이 있다. 회사가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이다. 반도체 안전시설 유지, 웨이퍼 변질 방지, 시설 점거 금지 등을 이유로 낸 신청에 대해 수원지법은 파업 개시 직전 결론을 낼 예정이다. 노조는 ‘외부’와 ‘내부’ 두 갈래의 법적 리스크를 동시에 안게 됐다.

정부의 기류도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노사 자율 해결’을 강조하던 기조에서, 산업 주무 부처 수장이 ‘긴급조정’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파업은 즉시 30일간 중지된다.

국가 경제에 중대한 위해가 우려될 때 쓰는 최후 수단이다. 반도체가 그 기준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에, 정부 안에서 ‘그렇다’는 답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해외의 시선은 냉정하다. TSMC 등 경쟁사들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관측이 대만 매체를 통해 확산되고,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이 ‘공급 안정성’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시장에서 신뢰는 단가보다 비싸다. 한 번 흔들리면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제시한 중재안 '기존 OPI 유지에 더해 DS 특별 포상을 얹는 방식'도 노조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조합원 투표에 부치자는 제안마저 거절됐다.

사측의 추가 교섭 요청에 노조는 ‘전영현 대표가 직접 OPI 제도화, 상한 폐지, 투명화에 대한 구체안을 내라’는 조건을 달았다. 대화는 이어지되,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 형국이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13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조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2차 심문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6.05.13.

지금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임금·성과급 분쟁이 아니다. 반도체 공정의 물리적 특성, 노조 내부의 대표성 문제, 협력업체 생태계의 생존, 정부의 공권력 카드, 해외 경쟁사의 계산이 한 지점에서 교차하고 있다. 그 교차점의 이름이 ‘웜다운’이다.

공장은 이미 느려졌다. 그리고 그 속도 저하가 한국 반도체 산업 전반의 긴장도를 보여준다. 삼성전자의 파업이 시작되면 그 손실은 삼성과 반도체 산업만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과 국민들에게 큰 피해로 파급될 것이 자명한 만큼,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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