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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각의 경계에서 세계를 읽다…진아트스페이스 이성락 초대전 'Rest & Silence'

종이나 캔버스, 나무 판넬의 표면은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가 펼쳐지는 장이다. 캔버스 같은 물질의 표면에 점과 선, 면과 색이 놓이고, 그 조형 요소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의 세계가 구축된다.

점·선·면과 색, 백시멘트와 아교의 물성으로 구축한 화면

사각형의 중첩과 기울기로 자아와 세계의 구조 탐색

전시는 11월 3일까지

이성락 작가가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진아트스페이스 전시장에 걸린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종이나 캔버스, 나무 판넬의 표면은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가 펼쳐지는 장이다. 캔버스 같은 물질의 표면에 점과 선, 면과 색이 놓이고, 그 조형 요소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의 세계가 구축된다. 같은 선과 색을 사용하더라도 그것을 어떤 질서로 배열하고, 어떤 색으로 감싸며, 어떤 물성 위에 쌓아 올리느냐에 따라 화면은 전혀 다른 결의 세계로 거듭나게 된다.

이성락의 회화는 선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조형언어로부터 출발하여 사각형이라는 사유의 세계로 나아간다. 이때 색과 형태의 관계맺기가 진행되고, 그 결과 표면은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으로 거듭니다.

전시공간 진아트스페이스(JIN ART SPACE)에서 열리고 있는 이성락 초대전 ‘Rest(휴식) & Silence(침묵)’는 그가 오랜 시간 탐구해 온 자아, 그리고 자아를 둘러싼 질서와 변화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리다.

이성락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진아트스페이스 전시장 전경. 황인옥기자

이성락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사각형’이다.  그가 “하나의 사각형은 한 사람의 자아”라고 설명했다. “제게 사각형은 ‘나’라는 자아를 담아내는 공간입니다.”

흔히 자아라고 하면 고정되어 있을 것 같지만,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자아 역시 끊임없이 변화한다. 삶이 지속되면서 다양한 정보와 경험들이 쌓이고, 그것들이 자아의 일부로 계속해서 편입되기 때문이다. 이성락의 자아에 대한 사유 또한 변화를 전제로 한다.

이번 전시는 사각형을 매개로 자아의 여러 층위와 변화를 탐색한 네 개의 시리즈로 구성된다. “네 개의 시리즈는 사각형의 중첩과 기울기, 경계와 반복 등의 조형적 변화를 통해 자아의 구조와 내면의 움직임, 시간에 따른 자기 인식의 변화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그의 연작들은 도포된 색면 위에 사각형이 변주되는 형식을 띤다. 먼저 ‘Square in Drift’ 연작은 흰색 화면 위에 두 개의 사각형이 겹쳐진 작품이다. 각각의 형태는 서로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조금씩 각도를 달리하고 있다.

“작은 어긋남이 화면에 묘한 긴장감을 만듭니다.”

이성락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진아트스페이스 전시장 전경. 황인옥기자

정확한 기하학적 구조에서 아주 조금 벗어나 있는 사각형은 역동성을 제공한다. 마치 자아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시마저 가져온다. “완벽하게 고정된 질서보다 그 질서 안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변화를 화면을 생동하게 합니다.” 작가가 말하는 ‘drift’, 즉 흐름과 이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Edge Within’은 그의 사유를 더욱 내밀하게 끌고 간다. 작품 속 사각형은 화면을 구획하면서 동시에 독립적인 공간이다. 전체 화면이 우주라면, 화면 속 사각은 하나의 존재, 즉 특정 존재의 자아를 의미한다.

특히 흰색 작업에서는 사각형의 선과 바탕의 차이가 극도로 절제돼 있다. 그 절제미가 평면 속 사각과 배경을 둘이 아닌 하나의 조형성으로 이끈다. “평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화면 전체를 덮고 있는 촘촘한 표면의 결이 드러나고, 그 위에 사각형의 윤곽이 서서히 떠오릅니다.”

이성락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진아트스페이스 전시장 전경. 황인옥기자

이성락에게 ‘내면의 경계’는 심리학적 개념에서 출발하여 회화의 구조로 치환된다. 화면의 바깥과 안쪽, 선과 면, 표면과 깊이, 흰색과 푸른색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내면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경계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데, 그 경계가 화면의 긴장감을 촉발한다. 침묵과 수다, 현실과 비현실이라는 상반된 개념들이 경계에서 서로 조화와 균형으로 수렴된다.

‘Inner Edge’에서는 그 경계가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사각형이 기울어져 있는 작품으로, 기울어진 사각형은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층을 암시한다. 하나의 자아 안에도 여러 모습이 공존하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화면의 구조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울기’다. 사각형의 각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화면의 긴장감은 크게 달라진다. “반듯한 형태가 안정과 질서를 연상시킨다면, 작은 기울기는 그 질서 안에서 움직이는 생명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이성락의 회화에서 변화는 거대한 사건으로 등장하기보다, 아주 작은 각도의 차이, 선과 선 사이의 간격, 색의 미세한 농도 차이처럼 작고 느린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이는 그의 회화가 조용하면서도 긴장감을 갖는 이유다.

또 다른 연작인 ‘Square in Square’에서는 수십 개의 사각형으로 구성돼 있다. 주로 격자무늬 형태로 하나의 화면 속에 사각형들을 모아놓았다. 화면 속 반복되는 구조는 화면을 안쪽으로 끌어들이면서 공간의 깊이를 만든다. 하나의 세계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그 안에 다시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식의 중첩이다.

이런 구조는 개인의 내면에서 우주적 질서로까지 확장될 여지를 내포한다. 한 사람이 하나의 세계라면 그 사람을 둘러싼 사회 역시 하나의 세계이자, 그 사회가 속한 지구와 우주로까지 확장된다.

“사각형이라는 단순한 형식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면서도 그 안에 개별 존재와 더 나아가 우주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이성락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진아트스페이스 전시장 전경. 황인옥기자

이성락의 화면은 ‘작은 우주’다. 그러나 그의 우주는 관념의 축적으로 구축되기보다 매우 구체적인 물질과 노동으로 가시화된다. 작가는 화면의 바탕을 만드는 과정부터 오랜 실험을 이어왔다. 전시작들의 물성 중 핵심은 백시멘트다. “아교를 이용해 바탕을 조성하고 백시멘트를 얇게 올리면서 종이와 캔버스가 재료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백시멘트의 양이 지나치면 굳은 뒤 표면이 깨지거나 떨어져 나갈 수 있고, 재료의 비율과 바탕의 상태에 따라 화면의 결과도 달라지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의 표면을 만들었습니다.”

화면의 독특한 질감도 물성 특유의 성질로부터 나온다. 표면은 매끈하게 평탄화되지 않고, 미세한 결들이 일정한 방향성을 이루며 화면 전체에 쌓여 있다. 빛이 표면에 닿으면 같은 흰색 안에서도 밝고 어두운 차이가 생긴다. 사각형의 윤곽 역시 단순히 그어진 선이 아니라 표면의 높낮이와 빛의 변화에 따라 깊이를 갖는다.

“화면 속 표면은 단순한 배경 이상의 기능으로 작동합니다. 표면 자체가 화면의 내용을 말하는 또 하나의 언어인 것이죠.”

백시멘트를 활용한 물성이 표면에 도포되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바르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선들이 드러난다. 화면 속 선은 문인화와 수묵의 전통을 경험한 이력의 산물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서예와 문인화를 시작했고, 오랫동안 한국 전통회화를 탐구했다. 그 경험은 한 획에 담기는 힘, 즉 필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이후 한국 전통회화와 서양회화의 경계 넘나들기를 시작하면서 선은 대상의 본질적인 요소를 서술하는 매개로 격상했다.

​​​이성락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진아트스페이스 전시장 전경. 황인옥기자

이성락이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분리해서 바라보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동양화에서 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양의 재료와 현대적인 추상언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왔다. 재료의 경계를 나누기보다 그것들이 화면에서 어떤 조형적 가능성을 만들어내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성락이 그림을 그리는 1차 목표는 자신의 휴식이다. 그의 본업은 신경외과 의사다.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을 집도할 때 극도의 집중을 요구했다. 수술실에서는 환자의 생명이 자신의 손에 놓인다. 그런 긴장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고 감각을 회복하는 시간이 된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먼저 자신이 치유되고,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이 만들어졌을 때 그 울림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될 수 있다”고 말한다. 회화가 그의 삶에서 하나의 ‘수양’으로 기능하는 이유다.

작업은 병원에서 진행된다. 점심 시간 1시간이 그의 작업 시간이다. 작업 시간이 짧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가 “일주일 중 병원이 문을 여는 5일간 매일 1시간씩 30연간 반복하면 작업 시간이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다”는 답은 전했다. 무엇보다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매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그림을 그리는 의사’라는 틀 안에 두기보다 작품 자체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작가의 학력이나 직업, 이력보다 그림 앞에서 작품이 관람자의 마음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회화가 지향하는 감상법과도 맞닿아 있다. 이성락의 작품은 빠르게 지나가며 한눈에 의미를 파악하기보다 일정한 시간 동안 바라볼 때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며 색감과 표면을 느끼면 도형으로 보이던 사각형이 어느 순간 하나의 경계가 되고, 각자가 가진 다양한 자아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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