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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빚으로 돌아오는 빛 낭비...서울 24곳 옥외전광판이 4000가구 전력 쓴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어느 지역에서 언제 전기를 많이 쓰는지 분석해야 수요를 예측하고 절감 대책도 세울 수 있다”며 AI를 활용한 에너지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양방향 충전 기술인 V2G...

빚으로 돌아오는 빛 낭비...서울 24곳 옥외전광판이 4000가구 전력 쓴다

■ 에너지 과소비 일상부터 줄이자

서울 번화가 고화질 옥외광고물

㎡당 전력 소모량 80~100㎾h

미디어파사드 등 합치면 더 늘어

수요관리 위해 쿼터제 도입 필요

서울 주요 번화가에 설치된 옥외광고물과 미디어파사드의 월평균 전력 소모량이 일반 가정 4000여 가구가 한 달간 사용하는 전력량과 맞먹는 것으로 추산됐다.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국내 에너지 수급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반드시 사용할 필요가 없는 전기나 에너지는 덜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에너지 문제가 반복적으로 불거지는 만큼 쿼터제 도입 등 구조적인 수요관리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7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 내 광고물의 월평균 전력 소모량은 약 116만 ㎾h로 추산된다. 일반적인 2~3인 가구가 한 달에 약 300㎾h를 사용하는 점을 감안하면 약 4000가구의 월간 전력사용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현재 서울시 내 자유표시구역은 강남구 코엑스 일대와 종로구 광화문스퀘어, 중구 명동관광특구 등 3곳이다. 강남구에는 6개소에 17기의 옥외광고물이 설치돼 있으며 총면적은 4487㎡에 달한다. 광화문스퀘어는 4개소 4기, 총 6764㎡ 규모이며 명동관광특구는 3개소 3기, 총 3209㎡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화질 옥외광고물의 월평균 전력 소모량은 ㎡당 80~100㎾h 수준이다. 이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강남 지역 옥외광고물의 월 전력 소모량은 35만 8960㎾h로 일반 가정 1200가구가 한 달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같은 기준으로 광화문스퀘어는 1803가구, 명동관광특구는 855가구가 사용하는 전력을 매달 외벽 광고에 쓰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자유표시구역 내 옥외광고물이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송두삼 성균관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미디어파사드 등 도시 경관용 시설물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사용전력량이나 운영 시간에 일정 한도를 두는 ‘쿼터제’ 도입과 함께 기업의 자발적 절전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 체계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쇼크 깊어지는데…매달 4000가구 전기 쓰는 도심 전광판

옥외 전광판

호주 유학을 마치고 최근 귀국한 A(36) 씨는 밤 11시가 넘도록 불이 켜진 광화문 일대 빌딩들을 보고 크게 놀랐다. 이미 업무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각인데도 오피스 빌딩은 물론 부동산 간판까지 환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A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경쟁하듯 밤거리를 밝히는 초대형 전광판들이었다. A 씨는 “10여 년 만에 광화문 거리를 걸어보니 역사박물관에서 시청 앞까지 옥외 전광판과 미디어파사드가 즐비했다”며 “호주에서는 매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밤에 1시간 동안 불을 끄는 ‘어스아워(Earth Hour)’ 같은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는데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고 말했다.

중동발 에너지 수급 불안이 전 세계를 흔들면서 우리 정부도 에너지 절약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일상 속 에너지 낭비는 여전히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에서 전력과 천연가스 등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려면 단기 처방을 넘어 사회 전반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7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중구의 한 백화점에 설치된 미디어파사드는 2022년 기준 월평균 4만 5000㎾h의 전력을 사용했다. 해당 백화점은 에너지 절감을 위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도입하면서 전년 동기 월평균 8만 6400㎾h였던 전력사용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그럼에도 이 전력량은 2022년 서울 가구당 월평균 전력사용량(296㎾h) 기준으로 약 152가구가 한 달간 쓸 수 있는 규모다. 외벽 장식 하나에 사실상 작은 마을 단위의 전력이 투입되는 셈이다.

옥외 전광판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코엑스 일대의 전력 소비도 적지 않다. 이 일대 옥외 전광판 17개가 한 달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은 약 35만 8960㎾h로 일반 가구 1200가구 이상이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광화문과 명동 일대 옥외 전광판을 포함하면 약 4000가구가 쓸 전력량을 이 세 지역의 전광판이 쓰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민간의 경제활동을 무작정 제약할 수는 없더라도 에너지 위기가 현실화한 현시점에서는 밝기를 낮추거나 가동 시간을 줄이는 방식의 자발적 절전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공공기관은 민간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지방자치단체가 사용하는 전력은 공공용으로 산업용 등 다른 전기에 비해 사실상 헐값에 공급되는 측면이 있다”며 “민간기업은 영업 활동과 직결돼 있어 일률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지만 지금 같은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지자체가 미디어파사드나 각종 빛 축제에 많은 전력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행주산성에서 바라본 서울 여의도. 연합뉴스

초대형 전광판을 둘러싼 관리 기준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시는 2018년 발표한 ‘미디어 시설물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한 기준’에서 옥외 전광판과 미디어파사드 등 미디어 시설물의 규제 기준을 빛의 밝기를 뜻하는 휘도(cd/㎡) 중심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휘도뿐 아니라 공간 1㎡당 얼마나 많은 전력을 쓰는지를 보여주는 조명밀도(W/㎡) 역시 중요한 기준으로 본다. 단순히 ‘얼마나 밝은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는가’를 함께 따져야 한다는 의미다.

에너지 대란 국면에서 전력 낭비를 줄이려면 한밤중까지 불을 켜두는 사회적 관행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비판 또한 나온다. 광화문과 강남 등 번화가의 대형 빌딩 가운데 심야 시간대에도 내부 조명을 켜둔 채 주변을 밝히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수도권과 지방을 막론하고 공인중개사사무소, 가구 판매점 쇼룸, 분양 홍보관 등도 영업 종료 후까지 실내를 밝게 유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행법상 실내 조명이 창밖으로 새어나가는 문제는 별도 규제 대상이 아니어서 제도적 대응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송두삼 성균관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야간의 과도한 조명은 빛 반사로 시민들에게 눈부심 등 불편을 줄 수 있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낮과 밤의 밝기를 똑같이 유지할 필요는 없는 만큼 전력 낭비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대안은 시간대별 밝기 조정과 운영 시간 단축”이라고 말했다.

쉬는 날인데 평일의 80% 전력사용…공공기관은 에너지 위기 ‘무풍지대’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전력수급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전력 사용마저 늘고 있다. 민간 부문에 에너지 절약을 요구하기에 앞서 정부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3월 26일까지 공공기관 전력 사용량은 108만 9893㎿h로 전년 동기(105만 2328㎿h)보다 3.6% 증가했다. 아직 냉방 수요가 본격화하지 않은 시점인데도 전력 소비는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전체 공공기관 전력 사용량도 446만 7067㎿h로 2024년 같은 기간(435만 663㎿h)보다 2.7% 늘었다.

특히 주말 전력 사용량이 평일의 80% 수준에 달하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통상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는 기관의 전력 수요가 줄어들어야 하지만 공공기관은 업무 시설 특성상 조명과 설비가 상시 가동되면서 에너지 소비를 쉽게 줄이지 못하는 구조다. 정부가 공공기관 신축 시 건물 내 에너지 사용을 실시간으로 분석·제어하는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과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을 의무화했지만 실질적인 절감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온이 크게 오르는 4월 말 이후에는 냉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 소비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크다. 기상청은 서울의 이상고온 기준인 23.4도를 웃도는 날이 평년보다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 수급 불안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에게 에너지 절약 동참을 요구하려면 공공 부문이 먼저 소비 절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해외 주요국들은 공공 부문 에너지 소비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 독일은 공공 건물 경관 조명을 특정 시간 이후 소등하도록 하고 프랑스는 야간 조명과 냉난방 온도를 규제하고 있다. 일본 역시 정부 청사의 조명을 줄이고 냉방 온도를 높이는 등 강제적인 수요관리 정책을 시행 중이다.

반면 국내는 여전히 구조적인 절감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보다는 단기적인 절약 캠페인에 의존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존에는 에너지를 과소비하고 인프라를 늘리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효율을 높이고 아껴 쓰는 방법을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획일적 요금제부터 바꿔야 전력소비 패턴 개선”

뉴스1

국제 정세 불안 때마다 전력 낭비 문제가 반복적으로 불거지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전기 관리 체계의 구조적 문제부터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업과 가정이 일상 속에서 전력 낭비를 인식하고 줄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27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전기 전문가 3인에게 문의한 결과 이들은 전력 낭비를 줄이기 위한 공통 해법으로 △계시별 요금제 도입과 지역별 차등화 △전력효율화 기술 개발 △재생에너지 활용 확대를 제시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계시별 요금제가 꼽혔다. 이는 전력수요가 높은 시간대와 계절에는 요금을 올리고 수요가 낮은 시간대에는 요금을 낮춰 소비 패턴 조정을 유도하는 제도다. 김종규 식스티헤르츠 대표는 “공급과 수요의 균형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남는 시간대에는 싸게, 부족한 시간대에는 비싸게 하는 식으로 계절과 시간대를 함께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전력 데이터 공개와 분석 체계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어느 지역에서 언제 전기를 많이 쓰는지 분석해야 수요를 예측하고 절감 대책도 세울 수 있다”며 AI를 활용한 에너지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양방향 충전 기술인 V2G, 에너지저장장치(ESS), 섹터커플링 같은 기술 개발 또한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순형 동신대 교수는 “남는 전력을 저장하거나 수소·열 등 다른 에너지로 전환해 활용하는 연계성을 높여야 낭비를 줄이고 공급 안정성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건물·가정용 자가소비형 태양광 보급 확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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