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일반
[브릿지 칼럼]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한국 AI 산업에 던진 경고
오윤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배포일
2026-04-06 14:50
수정일 2026-04-06 14:58
발행일 2026-04-07
19면
오윤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2026년 3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와 LNG 수송의 핵심 요충지다. 이 해협의 기능이 흔들리자 국제 유가는 단기간에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았고, 한국처럼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수입 물가와 환율의 이중 압박에 직면했다.
이번 사태는 에너지를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정이 인공지능(AI) 산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분쟁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 등 중동 지역의 아마존 웹 서비스(AWS) 인프라는 드론 공격 여파로 피해를 보거나 서비스 차질을 겪었다.
여기에 유가 급등은 데이터센터 운영비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전력 비용이 오르면 모델 학습과 서비스 운영 비용도 함께 오른다. 이는 곧 기업들의 AI 도입을 늦추고 산업 전반의 혁신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에너지 리스크는 더 이상 AI 산업의 외곽 변수가 아니라 핵심 변수다.
AI 산업은 겉으로는 소프트웨어 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막대한 전력과 냉각 설비, 안정적인 공급망 위에서 작동하는 물리적 산업이기도 하다. 에너지 가격과 공급이 흔들리는 순간 모델 개발의 속도와 서비스 운영의 안정성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국이 이 위험에 특히 취약한 구조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전력 생산 역시 상당 부분 수입 화석연료에 기대고 있다.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데이터센터가 이 같은 토대 위에 놓여 있는 이상, 국내 AI 산업도 에너지 가격과 공급 불안에서 자유롭지 않다. 더욱이 AI 모델이 고도화될수록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더 가파르게 늘어난다. 결국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AI 산업의 성장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북유럽의 일부 국가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풍부한 수력과 풍력, 안정적인 전력망, 서늘한 기후를 바탕으로 데이터센터 입지 경쟁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OpenAI는 파트너사와 함께 노르웨이 나르비크(Narvik)에서 장기적으로 500MW급까지 확장 가능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핀란드도 저탄소 전력과 기후 조건을 바탕으로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을 중심으로 한 미국 빅테크 기업들도 데이터센터 입지 결정 과정에서 시장 수요뿐 아니라 전력 가용성을 핵심 변수로 보기 시작했다. 이제 AI 경쟁력에서는 코드(Code)뿐 아니라 와트(Watt)도 중요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출발점은 에너지 전략과 AI 인프라 전략을 하나의 국가 의제로 통합하는 데 있다.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도 핵심 인프라가 작동할 수 있는 공급 안정성과 비상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발전·에너지 인프라와 데이터센터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함께 육성하는 ‘에너지-AI 통합 특구‘를 조성하거나, 소형모듈원전(SMR)처럼 차세대 에너지원을 AI 인프라 가까이 배치하는 발상의 전환도 모색해야 한다. 결국 안정적인 전력 공급망 자체를 AI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설계해야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AI 강국의 조건은 고성능 반도체와 뛰어난 알고리즘에만 있지 않다. 시스템을 멈추지 않고 돌릴 수 있는 안정적인 에너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는 그 사실을 냉혹하게 일깨워줬다. 지정학적 충격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산업의 연속성, 그것이 곧 AI 경쟁력의 핵심 조건이다.
오윤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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