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발 칩플레이션의 반사 이익
DDR·SSD 가격 상승 효과일 뿐
AI 생태계 주변부서만 맴돌 듯
반도체 클린룸에서 방진복을 착용한 작업자가 EUV 공정용 포토마스크를 이송하고 있다. /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네덜란드 ASML에 10조원 규모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20대를 포함, 총 70여 대의 노광장비 라인업을 구축하며 ‘초격차’를 외치고 나섰다. 그러나 초격차의 이면엔 삼성의 말 못할 고민이 숨어 있다.
역대급 실적이라는 57조원의 영업이익 속에 정작 차세대 먹거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익은 ‘제로’에 가깝다는 분석 때문이다. 삼성이 기술 혁신 대신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거대 노점상’ 식 경영에 매몰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7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평택 5공장(P5) 1구역에 투입할 EUV 장비를 대거 발주하며 장비 보유 대수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를 압도한 것은 사실이다. 삼성은 현재 SK하이닉스의 약 2배 수준인 40여 대의 EUV를 가동 중이며, 이번 발주 물량이 입고되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장비 대수’와 ‘HBM 주도권’은 별개라고 입을 모은다. HBM의 핵심은 미세 회로를 그리는 노광 기술보다 칩을 쌓고 연결하는 ‘어드밴스드 패키징’에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40대의 장비만으로 엔비디아 공급망을 장악한 반면, 삼성은 70대의 장비를 갖추고도 대만 TSMC와의 패키징 및 SRAM 기술 격차로 인해 고전하고 있다.
57조의 착시는 재고가 만든 실적
D램 낙수 효과 속 ‘턴키 고집 발목
이날 삼성전자가 발표한 2026년 1분기 영업이익 57조 2000억 원은 표면적으로는 ‘어닝 서프라이즈’다. 하지만 세부 지표를 뜯어보면 이번 실적 폭증의 주역은 HBM4가 아닌, 서버용 DDR5와 고용량 eSSD(기업용 SSD) 등 ‘범용 메모리’의 가격 상승이다. 데이터센타 증설로 인해 기존 메모리 재고 가치가 급등하며 발생한 반사이익일 뿐, 정작 수익성이 가장 높은 고부가가치 HBM 시장에서의 실질적인 매출 기여도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란 것.
해외 경쟁사 한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삼성이 HBM4 세계 최초 양산을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 엔비디아 내 점유율은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밀려 ‘낙수 효과’만 겨우 누리는 실정”이라며 “결국 삼성이 번 돈은 기술력이 아니라 시장 상황에 기댄 ‘재고 장사’의 결과물”이라고 꼬집었다.
삼성전자는 내년 1분기 P5 클린룸 구축과 함께 10나노급 7세대(1d) D램 개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서도 업계의 시각은 회의적이다. 이미 TSMC와 SK하이닉스가 공고한 생태계를 구축한 상황에서, 독자 노선을 고수하는 삼성의 턴키(Turnkey) 전략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퀄컴의 스냅드래곤 등을 재수주하며 파운드리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으나 내실은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실질적인 영업이익 90% 이상은 여전히 D램과 SSD 등 메모리 판가 상승에 의존하는 천수답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국 10조원의 EUV 발주 또한 미래 지능을 설계하는 시스템 반도체의 도약이 아닌, 범용 D램의 대량 양산을 통해 당장의 실적 수치를 방어하려는 ‘거대 노점상’의 고육지책이란 분석이다. 57조 원의 영업이익이라는 화려한 성적표 뒤에는, 독자적인 수익 모델을 창출하지 못한 채 메모리 시황에만 목을 매는 삼성의 초라한 자화상이 숨어 있다.
삼성이 이번에 발주한 20대의 EUV를 오로지 D램 생산량 확대에만 투입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역대급 실적'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AI 서버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범용 D램과 SSD를 찍어내기만 해도 금전적 이득은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독이 든 성배다.
현실적으로 10조 원의 설비 투자 비용과 유지비를 감당하기 위해 삼성은 다시 한번 '물량 밀어내기'라는 과거의 문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다만 물량으로 시장을 장악하던 ‘거대 노점상’의 문법으로는 AI 반도체 생태계에서 정착하기 어렵다.
반도체 분석 전문가는 "삼성이 자랑하는 57조 원의 영업이익은 미래 지능의 가치가 아니라, 과거 유산의 정리 세일에 가깝다"며 "10조 원의 EUV가 단순히 D램 찍어내는 기계로 전락한다면,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장비를 보유한 채 거리를 떠도는 '테크 노점상'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스냅드래곤(Snapdragon)
= 퀄컴이 설계하는 모바일용 시스템온칩(SoC)으로, 스마트폰 안에 들어가는 CPU·GPU·AI 연산 장치(NPU)·통신 모뎀을 하나의 칩에 통합한 구조다. 핵심은 단순한 성능이 아니라 “전력 대비 연산 효율”이다. 배터리 제약이 있는 환경에서 고성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스냅드래곤은 연산을 잘게 나눠 필요한 만큼만 처리하고, AI 연산도 전용 회로로 분산시켜 불필요한 전력 낭비를 줄인다. 최신 제품군은 카메라 처리, 음성 인식, 온디바이스 AI까지 칩 내부에서 바로 처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며, 스마트폰을 단순 단말이 아닌 ‘즉각 반응하는 연산 장치’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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