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부캉이가 보여준 건 ‘이야기의 힘’”…퐁피두·라스칼라 놓고 부산 문화타운홀 ‘후끈’

30일 오후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문화예술정책 타운홀 미팅 자리에서 전재수 부산시장이 시민들에게 퐁피두센터 분관과 라스칼라극장 개장 공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30일 오후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문화예술정책 타운홀 미팅 자리에서 전재수 부산시장이 시민들에게 퐁피두센터 분관과 라스칼라극장 개장 공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전재수 “전임 정책이라고 버리지도, 시작했다고 밀어붙이지도 않겠다”

퐁피두 1100억·라스칼라 105억 놓고 찬반 격돌…다음달 초 결론

글·사진 부산=이승륜 기자

“으리으리한 건물을 짓고 시설을 만든다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게 아니더라고요. 결국은 ‘이야기’였습니다.”

30일 오후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문화예술정책 타운홀 미팅. 90분 가까이 이어진 토론의 끝에서 전재수 부산시장은 뜻밖에도 북항의 상어 ‘부캉이’를 꺼냈다. 북항 인공수로에 들어와 시민들의 관심을 끈 상어를 보며 도시 문화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전 시장은 “어딘가에 묶여 살아가는 우리들이 야생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에 열광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며 “우리의 이야기가 문화와 예술이 되고, 그런 이야기로 부산을 가득 채울 때 K컬처의 다음 중심이 부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시민들이 가장 뜨겁게 맞붙은 주제 역시 ‘부산의 문화도시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였다. 1100억 원을 들여 이기대공원에 짓는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과 105억 원 규모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 라 스칼라 초청공연이 토론 한복판에 섰다. 두 사업 모두 전임 시정에서 추진됐지만 전 시장 취임 뒤 재검토 중이다.

◇“누리고, 창작하고, 일하고, 함께 결정”

이날 ‘문화기본도시 부산, 시민이 묻고 부산이 답하다’를 주제로 열린 행사에는 문화예술 전문가와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 14일 ‘해양수도 부산’에 이은 두 번째 타운홀이다.

1부에서는 민선 9기 문화정책의 큰 틀이 공개됐다. 전 시장은 시민의 ‘누릴 권리’, 예술인의 ‘창작할 권리’, 청년의 ‘일할 권리’, 문화 관계자의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는 ‘문화기본도시 부산’을 제시했다. 시가 정책을 결정해 문화계에 통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당사자를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겠다는 구상이다.

5대 약속도 내놨다. 문화예술지원사업을 100억 원 규모로 확대하고 북항에 복합문화전시공간을 조성한다. 작은 카페 등 민간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문화마실’, 1000억 원 규모 문화예술펀드, 흩어진 문화정보와 공간·예술인·기업·행정을 연결하는 ‘플랫폼 051’도 추진한다. 전 시장은 “문화는 지원만 받아서는 자생력을 가질 수 없다”며 문화예술을 일자리와 소득을 만드는 산업으로 키우겠다고 했다.

현장의 관심은 지원의 ‘지속성’에도 쏠렸다. 한 문화예술인은 “한 해 지원받고 다음 해를 예측할 수 없다면 청년 예술인이 부산에 남을 수 있겠느냐”며 중장기 지원 확대를 요구했다. 전 시장은 “단년도 지원이 필요한 분야도 있지만 콘텐츠가 창작에서 기술 실험, 제작, 시장 검증, 투자, 유통까지 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경우에 따라 2∼3년을 넘어서는 중장기 지원도 필요하다”고 답했다.

부산문화재단도 문화·공연예술 분야 최장 3년, 문학·시각예술 2년 등 다년 지원 확대 방침을 밝혔다. 지역 예술인의 작품을 기업·기관·시민이 구독·구매하고 수익을 다시 창작자에게 돌리는 가칭 ‘부산예술콘텐츠 은행’도 검토한다.

◇퐁피두 꺼내자 “반대 의견 있습니다”

회의장의 온도가 급격히 높아진 것은 2부였다. 문화국장이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과 라 스칼라 초청공연의 추진 경과를 설명하자 객석 곳곳에서 손이 올라갔다.

전 시장은 토론에 앞서 “전임 시장이 추진했던 정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버리지 않겠다. 반대로 이미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밀고 가지도 않겠다”고 밝혔다. 판단 기준으로는 시민 체감도와 공공성, 재정의 지속 가능성,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 기여도, 실행 가능성과 책임성을 제시했다. 그는 “유명한 것을 백 번 불러오면 뭐 하느냐”며 “세금을 쓰고도 부산 문화예술 생태계에 남는 것이 없다면 시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은 남구 용호동 이기대공원에 연면적 약 1만5000㎡ 규모로 짓는 기획전시 중심 아트센터다. 건립비는 시비 1100억 원, 연간 운영비는 125억 원이다. 시는 현재 협상을 중단하고 사업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10월 초 결론을 낼 예정이다.

찬성 측 시민은 “미술관을 입장료와 단기 수익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광안대교를 사례로 들었다. “건설 당시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부산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며 퐁피두 역시 10년, 20년 뒤 문화·관광 자산으로 남을 가능성을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자 객석에서 곧바로 목소리가 겹쳤다. “반대 의견 있습니다. 반대 의견 있습니다.” 여러 시민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한 참석자는 “아까부터 계속 손을 들었는데 한 번도 안 시켜준다. 이 문제 때문에 오늘 왔다”며 마이크를 요구했다. 사회자가 발언 시간을 조절하려 했지만 손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반대 측에서는 “부산 문화의 밭부터 기름지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 문화예술계 관계자는 “외국의 유명 미술관이 들어온다고 지역 문화생태계가 저절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며 지역 예술인과 부산 자체의 문화자산을 먼저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이기대를 해양생태문화공원으로 보존하고 문화예술 기능은 북항의 해양예술관 등으로 풀어내자고 제안했다. 그는 “부캉이가 많은 사람을 북항으로 불러모은 것처럼 부산의 바다와 북항 자체가 이미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30일 오후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문화예술정책 타운홀 미팅에서 시민들이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과 라 스칼라 초청공연 사업과 관련해 발언을 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105억 해외 공연 대신 지역 예술인” vs “세계적 브랜드 효과 봐야”

논쟁은 곧 라 스칼라 초청공연으로 옮겨갔다. 부산시가 검토 중인 안은 2027년 9월 6∼11일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콘서트홀에서 라 스칼라 극장 인력 약 420명이 참여해 5차례 공연하는 내용이다. 오페라 ‘오텔로’ 3회, 합창단 1회, 라 스칼라 필하모닉 1회로 구성되며 총사업비는 105억 원이다.

반대 측 시민은 “부산 예술인들은 공연 한 번을 올리기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하는데 해외 극장 초청에 100억 원 넘게 써야 하느냐”며 “오페라하우스를 부산과 한국 예술인들이 채우도록 먼저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민예총 관계자도 두 사업에 반대 입장을 밝히며 부산형 예술인 기본소득과 서부산 국제예술특구, 예술지원센터 조성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반면 찬성 측에서는 오페라하우스 개관의 상징성과 세계적인 공연단체 초청에 따른 도시 브랜드 효과를 함께 따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모든 공연이 부산시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며 대형 공연을 문화산업과 관광으로 연결할 운영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손은 계속 올라가고…시장까지 “기계적 균형 맞춰야”

찬반이 오갈수록 회의장은 달아올랐다. 사회자가 “한 분이 길게 말하면 다른 입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며 발언 시간을 줄여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전 시장도 “반대 의견이 세 분이고 찬성 의견이 두 분이니 기계적인 균형도 맞춰야 하지 않겠느냐”며 직접 교통정리에 나섰다. 그래도 객석에서는 발언 기회를 요구하는 손이 계속 올라왔다.

결국 예정된 종료 시간이 다가오자 사회자는 모든 발언을 받기 어렵다며 QR코드를 통해 추가 의견을 받기로 했다. 전 시장은 “이것을 안 볼 것 같지만 전부 분류해 싹 다 본다”며 “말을 못했다고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 시장은 이날 두 사업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는 “찬성하는 분도, 반대하는 분도 부산 문화예술 생태계가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다고 본다”며 “내 마음에는 들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결정했구나’라고 존중할 수 있을 정도로 의견을 듣고 절차를 거치겠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과 라 스칼라 초청공연 추진 여부를 다음달 초 결정할 예정이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