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에서 수출화물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부산항만공사)
[뉴스웍스=박광하 기자] 국가보안시설로 지정된 부산항 등 국내 주요 항만에 설치된 중국산 항만 하역, 환적 장비의 펌웨어를 검증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정보보호 업계가 지적하고 있다. 완전자동화 크레인 1대당 수십 개씩 달린 폐쇄회로(CC)TV 대부분이 중국산인 상태로, 항만 내 물동량과 군사 물자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보보호 업계에 따르면 부산항을 비롯한 국내 항만에 배치된 컨테이너 크레인에는 원격 조종과 하역 작업 모니터링을 위한 CCTV가 1대당 수십 대가량 탑재돼 있다. 이 카메라 대부분이 중국산이고 펌웨어를 외부에서 검증하기 어렵다는 것이 보안 업계의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항만 시스템 업체 관계자는 "주요 항만 시설 상당수가 중국산이라는 사실이 관련 업계에서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들 설비 중 일부는 펌웨어가 2중으로 암호화돼 어떤 데이터를 어디로 보내는지 파악, 검증할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크레인이나 CCTV를 폐쇄망으로 운영하더라도 스파이칩 같은 불법 무선 모듈을 통해 외부와 연결하는 우회로를 만들 수 있다"며 "물리적 네트워크 차단만으로 정보 유출을 완전히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는 해외에서 이미 구체적인 사례로 확인됐다. 미국 하원 국토안보위원회와 중국 공산당 특별위원회가 2024년 발표한 공동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국영 기업 상하이진화중공업(ZPMC)이 제조해 미국 항만에 납품한 컨테이너 크레인에 계약에 없던 셀룰러 모뎀이 무단 설치된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 항만 컨테이너 크레인의 약 80%가 ZPMC 제품이라는 점도 충격을 줬다.
의회 조사관들은 한 항만에서만 12개 이상의 모뎀을 발견했으며, 이 모뎀들이 방화벽을 우회해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백도어로 기능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미국 해안경비대는 2024년 2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중국산 크레인의 내재된 원격 접근 취약성을 경고하는 해상보안지침을 발령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앞으로 5년간 200억달러(약 28조원)를 투입해 중국산 크레인을 자국산으로 교체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캐나다도 강경 대응에 나섰다. 캐나다 산업부는 지난해 6월 중국 감시카메라 업체 하이크비전(Hikvision)의 현지 법인에 국가안보를 이유로 사업 중단 및 철수를 명령했다. 영국 정부는 2022년 민감 시설에 대한 중국산 CCTV 신규 설치를 금지한 데 이어, 2024년 4월 기준으로 해당 장비를 설치했던 소수의 민감 시설 중 절반 이상의 사이트에서 교체를 완료했다. 나머지 사이트도 2025년 4월까지 전면 교체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호주는 2023년 연방 국방부·전쟁기념관·국가장애보험청 등 연방정부 부처와 기관 건물에서 하이크비전이나 다후아(Dahua) 등 중국 기업들이 제조한 카메라 913대가 설치된 사실이 드러나자 전면 철거 방침을 선언했다.
국내 상황은 사각지대에 가깝다. 부산신항 7부두는 지난해 국내 최초 완전자동화 부두로 개장하면서 '전량 국산 장비'라고 홍보했지만, 원격 조종의 눈 역할을 하는 CCTV 700여 대가 중국 기업 제품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기도 했다. 심지어 국가정보원의 교체 권고에도 규정 시행 이전에 구매한 장비라는 이유로 전면 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달리 한국전력공사는 변전소 등에 설치된 중국산 CCTV 3663대를 2029년까지 전량 교체하는 계획을 최근 수립했다. 군 당국도 악성코드 의심 CCTV 1300여 대를 철거하기로 했다. 이렇듯 개별 기관 차원의 대응이 이어지고 있지만, 항만 분야는 체계적인 대책 마련이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다.
보안 업계에서는 국내 항만 운영기술(OT) 환경의 특수성을 지적한다. 항만 크레인 제어에는 모드버스(Modbus), OPC UA 등 산업용 통신 프로토콜이 쓰인다. 이 같은 특수 환경은 일반 IT 보안 체계만으로는 방어하기 어렵다.
중국 정보보안법은 자국 기업이 당국의 정보 제공 요청에 반드시 협조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중국산 장비에 수집된 화물 정보나 군사 물자 동선이 언제든 중국 당국에 공유될 수 있다는 구조적 위험이 존재한다.
항만이 마비될 경우 하루 수조원대의 물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유사시 군수 물자 이동 정보까지 노출될 수 있다. 보안 업계는 이런 사정을 종합해 보면 항만 설비 문제는 단순한 민간 보안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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