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RIS는 국내 연구자의 오픈액세스(OA) 출판지원을 통해 국민 누구나 필요한 지식에 쉽게 접근하고, 국내 연구성과가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될 수 있도록 학술정보 유통 생태계 혁신을 꾀하고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김준환 기자] 전 세계 학술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학계의 영향력이 큰 대형 상업 출판사들의 과도한 구독료 인상은 대학도서관의 재정 부담을 한계치로 몰아넣었으며, 공공연구기금이 투입된 연구 성과조차 높은 결제 장벽 뒤에 갇혀 접근성이 제한되는 모순을 낳았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타파할 현실적 대안 중 하나로 ‘오픈액세스(Open Access, OA)’가 꼽힌다.
특히 한국교육학술정보원(Korea Education and Research Information Service, KERIS)은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 기반 학술정보 개방 체계를 강화하며 OA 출판 지원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는 연구 성과의 국제적 접근성과 활용도를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본지는 OA의 확산 배경과 다각적인 유형을 짚어보고, KERIS와 대학도서관이 추진하는 구체적인 활성화 전략, 그리고 AI 시대가 불러올 학술 혁신의 미래를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 국내 OA의 현황, 국내 연구자들의 OA에 대한 인식
= 오픈액세스(OA)는 단순히 ‘무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경제적·기술적 장벽 없이 누구나 학술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OA의 실현 경로는 크게 골드(Gold), 그린(Green), 다이아몬드(Diamond)로 구분되며, 그 흐름은 점차 연구자 개인의 선택에서 국가적·제도적 의무로 전이되고 있는 형국이다.
하나하나씩 살펴보면, 골드 OA는 저자가 논문출판비용(APC)을 지불하고 학술지 출판 즉시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높은 논문처리비용(Article Processing Charge, APC)가 저자에게 새로운 경제적 장벽이 되고 있어, 최근 대학도서관 컨소시엄은 국가 차원에서 기존의 ‘읽기 전용’ 구독료를 ‘읽기+쓰기(OA 출판)’ 비용으로 전환하는 전환계약(Transformative Agreement, R&P)을 통해 OA를 전략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린 OA는 연구자가 출판된 논문 혹은 심사 전 원고를 대학의 ‘기관 리포지토리(Institutional Repository)’에 스스로 기탁(Self-archiving)해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는 대학이 생산한 지식 자산을 직접 아카이빙하고 통제권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최근 주목받는 다이아몬드 OA는 저자와 독자 모두에게 비용을 부과하지 않는 모델이다. 주로 대학출판부나 학술 단체, 공공기관이 운영 주체가 되어 지식의 완전한 공공성을 실현한다. 특히 국내 학회의 학술지 중 상당수가 이미 원문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으나, 이를 체계적인 OA 시스템(CCL 적용 등)으로 전환하는 ‘다이아몬드 모델’로의 고도화가 절실한 시점으로 보인다.
국내 연구자들도 OA가 국제적 흐름이라는 데 대체적으로 공감을 표했다. 국제경영 분야 학술지 International Business Review 편집위원인 노태우 한양대 교수는 “OA 확대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좋은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만으로는 연구의 의미가 완성되지 않는다. OA를 통해 논문이 더 많이 읽히고 인용될 때 비로소 연구 영향력이 확장된다”면서 “해외 학계에서는 논문 수보다 인용 점수가 훨씬 중요한 평가 기준”이라며 “OA는 연구자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정경희 한성대 도서관정보문화 디지털인문정보학 교수는 “과거에는 연구 성과를 소수 전문가 집단이 공유하는 폐쇄적 구도였다면,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공적 자금이 투입된 연구 성과를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며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의 연구 보고서뿐만 아니라 학술지 논문 또한 OA로 전환되는 비중이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대학도서관의 역할 재정의 필요… ‘구입처’에서 ‘연구 지원의 전략적 동반자’로
= OA 출판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학도서관뿐만 아니라 KERIS의 역할도 중요하다. 대학도서관의 역할은 이제 단순히 자료를 구매해 서가에 꽂아두는 곳이 아니라, 대학 연구 역량을 외부로 확산시키는 ‘OA 서비스 거점’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해외 주요 연구중심 대학들은 도서관 내 전문 인력을 배치해 연구자들에게 OA 출판 경로를 안내하고, 저작권 라이선스(CCL) 활용법을 교육하며, 연구 데이터 관리(RDM)까지 지원하고 있다. 반면 국내 대학도서관의 현주소는 아직 정보 제공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대학도서관의 한 관계자는 “연구 기획 단계에서의 OA 학술지 선정 지원부터, 투고 시 APC 지원 안내, 출판 후 리포지토리를 통한 성과 확산까지 이어지는 유기적인 서비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특히 ‘약탈적 학술지’로부터 연구자를 보호하고, 부실 학술지 투고를 예방하는 연구 윤리 가이드라인 제공은 대학도서관이 수행해야 할 핵심적인 연구 지원 기능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국가적 OA 이니셔티브, KERIS 주도 ‘표준 가이드라인’과 ‘RISS의 진화’ 혁신
= KERIS는 개별 대학이 감당하기 어려운 OA 인프라 구축과 정책 수립을 지원하며 한국형 OA 생태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런 일환으로 KERIS가 최근 추진하는 전략의 핵심은 ‘표준화’와 ‘연계’다.
KERIS는 대학도서관 사서들이 전문적인 OA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개발 중에 있으며, 올해 8월 최종 가이드라인을 보급할 예정이다. 이 가이드라인이 보급되면 OA의 개념 정의부터 정책 수립, 저작권 법적 검토, 시스템 구축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표준화해 대학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사서들은 이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에게 어떤 학술지가 신뢰할 수 있는 OA지인지, 저작권 침해 없이 논문을 공유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전문적으로 컨설팅할 수 있게 된다.
KERIS는 RISS를 통한 글로벌 확산도 꾀하고 있다. 국내 최대 학술 정보 포털인 RISS는 단순한 검색 도구를 넘어 OA 콘텐츠의 거대한 허브로 진화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학회지의 OA 전환을 지원하고, 해외 OA 논문 데이터베이스와 연계를 강화함으로써 국내 연구자들이 전 세계 지식에 장벽 없이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또한 KERIS가 대학에 보급한 dCollection(디지털 학술정보 유통시스템)은 RISS와 통합 연계해 개별 대학의 연구 성과가 국내외 검색 엔진에서 상단에 노출되도록 지원함으로써 한국 학술지의 글로벌 인용 영향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OA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개인 연구자의 노력을 넘어 국가적 차원의 지원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 정 교수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연구비 지원 조건으로 ‘OA 게재 의무화’ 정책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연구자들이 논문을 OA로 출판할 때 발생하는 논문게재료(APC) 부담을 완화해 줄 수 있는 별도의 기금을 마련하거나, 대학별로 분산된 OA 예산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AI와 OA의 강력한 시너지… 데이터의 신뢰성과 저작권 보호 필요성도 제기돼
=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OA의 필요성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AI 모델이 양질의 학술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을 때, 연구의 생산성과 정확성은 획기적으로 향상된다. 이 지점에서 OA는 AI 기반 학술 서비스의 ‘핵심 연료’가 된다.
먼저 연구 효율의 극대화를 노릴 수 있다. 논문이 OA로 공개되어 머신러닝이 가능한 형태(Machine-readable)로 유통되면, AI는 수만 편의 논문을 순식간에 분석해 연구 동향을 요약하고, 가설 검증에 필요한 데이터를 추출하며, 새로운 연구 주제를 제안할 수 있다. 이는 연구자가 문헌 검토에 쏟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킨다.
다음으로 ‘지식 주권’과 ‘소버린 AI’도 꾀할 수 있다. 특히 국내 학술지의 OA 전환은 한국어 기반의 학술 AI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다. 글로벌 거대 IT 기업의 AI가 영미권 지식에 편향되는 것을 막고, 우리 학계 고유의 연구 성과와 가치관이 반영된 AI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서는 국내 대학과 학회의 데이터가 OA를 통해 개방돼야 한다. 특히 KERIS가 운영하는 RISS에는 dCollection 기반으로 이미 전국 대학 학위논문에 접근이 가능하나, 국내 학위논문뿐만 아니라 국내 학술지도 함께 필요하다는 점에서 OA 활성화 전략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AI 시대에 OA 출판의 새로운 과제로 데이터의 신뢰성과 저작권 보호에 대한 점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 교수는 “AI 기술의 확산은 OA 출판에 기회이자 위협으로 다가온다. 무분별한 데이터 추출로 인한 저작권 침해 우려와 AI가 생성한 결과물의 신뢰성 검증이 필요하다”면서 “AI 시대를 맞아 OA는 단순히 ‘무료 공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Machine-readable)의 표준화된 데이터 구조를 갖추고, 올바른 인용 체계와 라이선스 정책을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대학도서관의 역할은 이제 단순히 자료를 구매해 서가에 꽂아두는 곳이 아니라, 대학 연구 역량을 외부로 확산시키는 ‘OA 서비스 거점’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아이클릭아트)
■ 국가 차원의 OA 확산… 연구자에게는 영향력을, 대학에게는 사회적 가치를
= 이렇듯 OA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국내 학술생태계가 구독 기반에서 OA 출판으로 본격 전환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대학과 연구자들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식은 더 이상 특정 계층이나 부유한 대학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누리는 ‘공공재’로 환원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OA가 전면적으로 도입되면 연구자와 대학에게도 효용 가치가 크다는 분석이다. 연구자 입장에선 OA로 출판된 논문은 비OA 논문에 비해 인용 횟수가 평균적으로 훨씬 높다. 이는 연구자의 개인적 명성뿐만 아니라 대학의 연구 평판 상승으로 이어진다. 또한 데이터 공유를 통해 연구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협력 연구가 활성화되는 ‘오픈 사이언스(Open Science)’ 시대로의 진입이 가속화될 것이다.
대학도 사회적 책임과 지식 주권을 회복할 수 있다. 대학은 이제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사회와 산업계에 지식을 환류하는 ‘혁신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OA는 대학이 생산한 지식을 중소기업, 정책 입안자, 일반 시민에게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통로가 된다.
이제 대학도서관은 더 이상 상업 출판사의 ‘구독료 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제영 KERIS 원장은 “대학이 필요로 하는 핵심 전자저널을 국가 차원에서 공동 구독하여 연구환경을 지원하고 있으나, 글로벌 출판사의 정책과 환율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한 구조적 한계가 많이 있다”라며 “국내 연구자의 오픈액세스 출판지원을 통해 KERIS는 국민 누구나 필요한 지식에 쉽게 접근하고 국내 연구성과가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될 수 있도록 학술정보 유통 생태계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학도서관 OA의 활성화는 단순한 도서관 운영 방식의 변화에 그쳐선 안 된다. 이는 상업 자본의 영향력이 막강한 학술 생태계를 다시 연구자와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학술 민주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KERIS와 대학도서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구축될 새로운 공유 생태계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학술 커뮤니케이션의 변방이 아닌, 지식 혁신의 중심지로 도약하는 든든한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구독’의 성벽을 허물고 ‘공유’의 광장을 여는 대학도서관과 KERIS의 행보에 학계 전체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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