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대학의 연구·교육 환경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학술정보 서비스는 더 이상 ‘찾는 도구’에 머물지 않고, 연구의 전 과정을 함께 설계하고 지원하는 지능형 연구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본지는 정책과 기술, 그리고 현장을 잇는 연결고리로서, 케리스와 함께 AI 시대 대학도서관과 공공 학술 플랫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심층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편집자주>
<上> AI 기반 지능형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 전환과 교육데이터플랫폼의 역할
<中> 대학도서관 오픈액세스(OA) 활성화를 통한 학술 생태계 혁신
<下> AI 시대 대학도서관의 새로운 역할
연구자들은 대학연구동향분석서비스 UREKA의 AI 역량을 RISS의 방대한 학술 데이터와 결합해 연구 전 과정을 지원하는 통합 플랫폼으로 고도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사진=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한국대학신문 임지연 기자] 논문을 검색하는 데서 연구가 시작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이제 방대한 학술정보를 요약하고, 연결하고, 새로운 연구의 실마리를 제안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국내 최대 학술연구정보서비스 RISS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검색 플랫폼’을 넘어 AI 기반 지능형 연구 파트너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교육데이터플랫폼을 결합해 연구자를 둘러싼 공공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연구자의 일상을 바꾼 1년… AI, 보조 도구에서 연구 파트너로
= 불과 1~2년 전만 해도 AI는 연구자의 ‘보조 도구’에 가까웠다. 이미 완성된 글을 다듬거나, 한국어 원고를 영어로 번역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지금은 연구 프로세스 기획부터 연구 아이디어 구상 및 구체화, 선행 연구와의 차이 파악, 데이터 서치 및 분석, 결론 해석, 논문화 등 전 과정에서 활용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변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의 PubMedGPT, ProQuest, EBSCO 등은 출처의 투명성을 갖춘 생성형 AI 학술서비스를 계획하고 있으며, 유럽의 EOSC와 OpenAIRE는 클라우드와 오픈사이언스를 결합해 연구 데이터의 저장·공유·재활용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 역시 CiNii Research를 통해 자국어 LLM을 활용한 다국어 검색과 주제 예측을 시범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도 KISTI의 사이언스온(ScienceON)이 AI 기반 논문 요약·품질 개선·통합 연구 도우미(SAI)를 구축했고, DBpia는 AI 기반 논문 추천과 개인화 연구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김병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정보학과 교수는 “기존에는 대학원생과 교수가 함께, 또는 여러 연구자가 분담해 수행하던 선행 연구 조사, 데이터 수집·분석 등의 반복 작업이 AI로 ‘반자동화’ 수준에 이르렀다”며 “특히 선행 연구 조사 분야의 변화가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연구 현장의 변화는 이공계에서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흐름은 동일하다. 다만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은 아직 논문 집필은 본인이 직접 하되, 선행 연구 파악과 문헌 검토 작업을 AI에 맡기는 방식을 주로 택하고 있다.
■ 이용자 88% “지능형 RISS 도입 필요”… 1순위 희망 기능은 ‘논문 핵심 요약’
= 이러한 흐름은 국내 학술 시스템의 변화로 연결된다. 특히 RISS의 지능형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가 운영하는 RISS는 국내 최대의 학술연구정보 공공 플랫폼으로서 학위논문, 학술지 논문, 해외 학술자료를 포괄하며 한국어 논문 데이터에서 독보적인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KERIS가 강남대 산학협력단과 함께 수행한 ‘클라우드 기반 지능형 RISS 구축을 위한 기획연구(2025)’에 따르면, RISS 이용 경험자 가운데 83.1%가 RISS에 AI를 도입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88.3%는 AI 도입 시 실제로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미 변화는 진행 중이다. 응답자의 약 80%가 주 1회 이상 RISS를 이용하고 있으며, 51.1%는 AI 기반 지능형 학술서비스를 이미 주 1회 이상 활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범용 AI는 ChatGPT(96.6%)였고, 학술 특화 AI로는 DBpia AI(49.1%)와 Perplexity(46.8%)가 뒤를 이었다.
이용자들이 AI 기반 서비스에 기대하는 효과는 ‘검색 효율성 증가’(73.6%)가 가장 많았다. 정보 요약·이해 용이(58.6%), 연구 시간 단축(48.6%)도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다만 정보의 정확성·신뢰성 부족(66.1%)과 표절·연구 윤리 문제(52.0%)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용자들이 가장 원하는 기능은 ‘논문 핵심 내용 요약 및 설명’이 가장 많았으며, ‘자연어 기반의 편리한 질의응답’, ‘연구 주제 탐색 지원 및 추천’도 높은 응답을 보였다.
집단심층면접(FGI)에서 도출된 현장 목소리도 방향을 가리킨다. 교수·연구자들은 “ChatGPT와 차별화된 RISS형 연구 어시스턴트가 필요하다”며 인용 가능한 출처 명시형 요약 기능을 강조했고, 대학원생들은 국내 학술 데이터 기반의 신뢰 가능한 AI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사서 그룹은 AI 기반 질의응답 시 저작권 문제 해결과 공공성 유지를 최우선으로 강조했다.
RISS 홈페이지 메인 화면.
■ 지능형 RISS 전환, ‘정확성·신뢰성’ 담보와 ‘데이터 접근성’이 핵심
= 그렇다면 지능형 RISS로의 전환은 어떻게 진행돼야 할까. 김 교수는 지능형 전환의 핵심 가치를 ‘한국어 특화 AI’라고 짚었다. 현재 해외 대형 출판사들은 이미 AI 기반 학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연구 질문을 던지면 관련 선행 연구를 추천하거나 아이디어를 정교하게 다듬어주는 ‘Research Question 정제’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영어 기반이라, 국내 연구자 대부분이 영어 기반 AI 학술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교수는 “고급 한국어 기반 AI 학술 서비스가 아직 제대로 나온 것이 없기 때문에 RISS의 KCI 논문, 학위논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국어로 이런 서비스가 되면 사용자들이 많이 사용할 것”이라며 “특히 제목에 특정 단어가 포함된 논문을 찾는 방식보다 ‘미셸 푸코의 개념을 인용한 논문’처럼 연구의 맥락과 내용 자체를 이해하여 검색하는 방식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RISS가 보유한 한국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현된다면 국내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KERIS는 AI 기반 연구 지원 서비스 영역에서 성과를 쌓아왔다. 2024년 정식 출시한 대학연구동향분석서비스 UREKA(University Research Keyword Analysis Service)가 대표적이다. UREKA는 AI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대학별 연구 트렌드를 분석·예측하고, 연구 초반에 연구 주제 탐색과 공동연구자 발굴을 지원하는 서비스로, 현재 17개 대학에 보급돼 있다. 다만 UREKA가 연구 동향 분석과 주제 탐색에 집중돼 있는 만큼, 선행 연구 조사부터 데이터 분석, 논문화에 이르는 연구 전주기를 아우르는 지능형 RISS로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연구자들은 UREKA의 AI 역량을 RISS의 방대한 학술 데이터와 결합해 연구 전 과정을 지원하는 통합 플랫폼으로 고도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논문 한 편을 시작점으로 이를 인용한 논문, 그 논문이 인용한 또 다른 논문으로 이어지는 인용 관계 분석 기능에 대한 기대도 크다. 또한 정확성과 신뢰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클라우드 기반 지능형 RISS 구축을 위한 기획연구(2025)’에서도 지능형 RISS가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로 정확성·신뢰성(85.4%), 공공성(42.0%), 포괄성(41.2%)을 꼽았다.
실제로 연구자들은 생성형 AI 활용에 있어 ‘환각(hallucination)’ 문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AI가 없는 논문을 있는 것처럼 생성해 알려주거나, 제공하는 정보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수준에 그쳐 연구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능형 RISS 전환에 있어 ‘데이터 접근성’도 중요한 과제다. 아무리 뛰어난 AI를 탑재하더라도, AI가 학습하고 서비스할 수 있는 학술 데이터 자체가 제한돼 있다면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용 플랫폼과의 독점 계약이 된 국내 학술지는 원문이 공개되지 않는다. 연구자 자신도 논문을 다른 사람이 읽게 하려면 유료 결제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는 논문의 인용 가능성을 낮추고, 학문 공동체 내 지식 순환을 저해하고 있다.
김 교수는 “ChatGPT에서 검색이 걸리려면 논문이 오픈액세스 형태여야 한다”며 “PDF 파일 형태로 제공되는 논문은 AI 검색엔진이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반면 XML 형식으로 변환돼 웹 페이지에 직접 게재되는 논문은 일반 시민도 별도의 다운로드 없이 읽을 수 있고, AI 검색에도 훨씬 잘 노출된다”고 설명했다.
임종태 국립경국대 IT융합공학부 조교수도 “구글 학술검색에서도 검색하면 학술지 출판사와 독점 계약을 맺고 원문 제공 권한을 확보한 상용 논문 사이트에 실려있는 논문이 더 많이 검색된다”며 “이는 개인적 선호라기보다 검색 생태계 전반에서 형성된 구조적 결과”라고 짚었다. 국책 지원 사업을 통해 나온 논문에는 이 같은 방식의 오픈액세스를 의무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 데이터 탐색–분석–활용을 잇는 연구 지원 체계 구축 필요
= 지능형 RISS와 교육데이터통합플랫폼과의 결합도 연구 환경에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제언도 나온다. 학술 데이터와 교육 행정 데이터를 결합하면 데이터 탐색–분석–활용을 잇는 연구 지원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이유다. 다만 현재 교육데이터통합플랫폼의 경우 주로 유·초·중등 분야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어 대학이나 고등 지표 관련 심층 데이터를 더욱 보강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에 KERIS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과 협력해 고등교육 관련 데이터도 확보해 나갈 방침이다.
이태환 KERIS 교육학술데이터본부 데이터분석부장은 “학술 문헌 데이터와 교육 행정 데이터가 통합될 경우 특정 교육 정책의 학술적 근거와 실제 교육 현장 데이터를 동시에 탐색하는 연구가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부장은 “아직 교육데이터통합플랫폼은 LLM 활용 수준에서 ChatGPT나 Gemini와 같은 상용 모델과 비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면서도 “연구자 수요에 맞춰 분석 모델을 맞춤 개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데이터가 고립돼 공유·연계가 어려워지는 현상인 ‘데이터 사일로’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 부장은 “각 기관마다 데이터 표준이 달라 결합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다양한 노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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