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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별이 운명을 말하던 밤에

어김없이 밤은 찾아온다. 땅거미가 배경과 소음을 집어삼킨다. 모두가 돌아갈 준비로 분주하다. 주변은 점점 어두워진다. 무겁고 짙은 고요함이 거리를 덮는다. 숨을 들이마신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관통한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본다. 수많은 별이 까마득한 거리를 두고 모여있다.

별이 운명을 말하던 밤에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시인·철학자

어김없이 밤은 찾아온다. 땅거미가 배경과 소음을 집어삼킨다. 모두가 돌아갈 준비로 분주하다. 주변은 점점 어두워진다. 무겁고 짙은 고요함이 거리를 덮는다. 숨을 들이마신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관통한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본다. 수많은 별이 까마득한 거리를 두고 모여있다. 빛은 아주 멀리서 왔다. 수백만 년의 시공을 건너 나의 시야에 닿는다. 내가 보고 있는 별은 이미 소멸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잔광(殘光)은 여전히 빛난다. 이것은 묘한 철학적 사색을 준다. 멀리 있는 것이 오래 남는다. 이미 사라진 것이 가장 길게 빛난다. 마치 기억 속 연인이나 후회와 같다. 중요한 순간은 시간을 초월하여 간직된다.

왜 우리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하늘로 향하는가? 왜 우리는 광대한 우주에 우리의 모습과 운명을 투영하려 하는가? 고대 문명은 별을 관찰하며 읽었다. 천체(天體) 움직임을 보고 왕조의 흥망성쇠를 예언했다. 사랑의 시기를 가늠했으며 전쟁의 결과를 예고했다. 하늘은 그들에게 경외심의 원천이자 불안을 견디게 하는 형이상학적 언어였다. 그들은 암흑에서도 빛을 믿으며 심적인 동요를 달랬다.

하지만 별빛은 단지 그 자리에 존재했을 뿐이다.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었다. 빛은 어둠이 있어야 선명해진다. 별을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 내면의 어둠을 응시한다는 뜻이다.

감정이 극점에 달했거나 사랑이 익을 때,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운명이란 단어를 강렬하게 떠올린다. 누군가는 그것을 피할 수 없는 필연이라 한다. 누군가는 무거운 숙명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별은 사랑의 신호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사랑을 함께 하길 원하는 간절한 눈빛을 닮았다. 사랑을 운명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미리 정해진 궤도가 아니라 그 감정을 온전히 감당하기로 선택한 자가 내린 결심일 수 있다.

사랑은 외부에서 온 선물이 아니다. 운명을 스스로 완성하려는 주체적인 내면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인생의 노트를 새로 쓰고 문장을 수정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다. 그것이 운명의 시작이 된다. 고통과 기쁨이 공존하는 시간을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별빛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다.

우리가 보는 빛은 수백만 년 전의 폭발이 남긴 잔광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사실이 인간의 존재를 더 신비롭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잔광 위에 서 있다. 그렇다면 운명이란 무엇일까? 이미 저질러진 과거의 선택들이 현재의 삶을 비추는 방식은 아닐까? 어제 행한 선택의 흔적에서 오늘을 이루며 사는 것이다. 현재라는 토대에서 미래를 향한 설계를 이어간다.

운명은 고정된 길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시간이 현재에 와서 새롭게 해석되고 조합되는 과정이다.

별들은 질서 없이 흩어져 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그 불규칙한 점들을 연결하여 별자리를 만든다. 우연한 모양을 이어서 의미 있는 그림을 만든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사건과 만남, 실패와 기쁨 등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인다. 그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해석력과 정신적 작용이다. 우리는 의미를 찾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의미는 우리의 강력한 위안이자 삶의 동력이다.

운명은 미리 써놓은 대본이 아니다. 그것은 백지 위에 새겨 넣을 해석과 결단의 흔적이다. 거리는 이제 밝아지며 깨어나고 있다. 가로등도 멀어지는 새벽을 향한다. 세상의 소리와 욕망이 고요해지면서 별은 또렷이 드러난다. 운명도 그런 것이다. 소리가 죽고 세상의 야욕이 사라진다. 그때야 비로소 잠잠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신의 명령이 아니다.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결심과 의지의 소리다. 운명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가가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별은 말을 걸지 않는다. 침묵에서 별과 자신을 마주하며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별이 운명을 속삭이던 밤에 우리는 재충전과 성찰을 가지게 된다. 별빛은 아득히 멀고도 가깝게 있다. 그 빛을 붙잡는 일은 내면에서 시작된다. 어둠에서도 기어이 빛을 찾으려는 다짐이었다. 별은 사라지지만 그 빛은 비춘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어떤 선택은 끝나지만, 의미와 업은 남는다. 그 의미가 보람이면서 다시 새로운 길을 안내한다. 우리는 운명을 그렇게 하나씩 기록해 간다. 밤을 뚫고 빛을 보듯이 삶을 뚫고 의미를 만든다. 그것이 인간이며 진실이다. 운명은 주어진 서사를 넘어 해석하고 개척해나가는 인생의 위대한 서사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시인·철학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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