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의 세포에서 우주까지
[AI 생성이미지]
혹시 요즘 주말 연속극으로 방영되는 TV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꽤 재미난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으니 아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대로 “요즘도 텔레비전에서 주말 연속극을 하나”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TV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줄어들었다.
2010년대만 하더라도 지상파 방송국에서 주말 연속극을 하면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요즘 누가 나오는 무슨 연속극을 하는 것 같더라”며 다들 알기는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 비하면 요즘 TV 방송의 사업 환경은 훨씬 어려워진 상태다. 이런 식이라면 TV 방송국에서 투자하는 금액이나 채용하는 인력의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즉 과거에 비해 지금은 TV 방송국의 일자리가 줄어든 상태다.
지상파 등은 정해진 편성대로 방송
TV 대신 유튜브 등 영상 매체를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한 시민의 유튜브 시청 기록. 하루에만 3시간, 일주일 33시간을 넘게 시청했다. [중앙포토]
요즘 사람들은 TV를 보는 대신에 무엇을 할까? 가장 먼저 떠올려 볼 만한 것은 유튜브나 OTT 같은 인터넷 영상 매체다. 중앙일보 2025년 3월 3일자 기사에는 한 조사 업체의 자료를 인용하여 유튜브 앱의 평균 사용 시간이 하루 2시간19분22초 정도라고 소개했다. 조사 대상인 모든 앱 중에 1위였으며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카카오톡의 사용 시간보다도 4배 이상 길었다. 그러니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사람들이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기 때문에 TV 방송의 경쟁이 힘들어졌다고 추측해 볼만도 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유튜브의 매력은 무엇일까? 나는 몇 년 전에 이런저런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다가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래서 영상 제작진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이 채널의 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어떤 경로로 이런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보나요?” 나는 그 질문의 답에 인기 있는 요즘 영상 매체의 비밀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나는 막연히 한국은 인터넷 커뮤니티가 발달한 편이니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많은 사람이 추천한 글에 영상이 소개되면 조회수가 높아질 거라는 상상을 했다. 혹은 요즘이 SNS 시대라고 하니 어떤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 같은 사람이 유튜브 영상을 자기 SNS에서 추천해 주면 그때 그 영상의 조회수가 높아지는 게 중요할 거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그 두 가지 경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다. 내가 질문을 한 유튜브 채널들이 하는 대답은 놀랍게도 하나 같이 같았다. 그 대답은 “알고리즘이 추천 영상으로 띄워주면 그걸 찍고 들어오시는 분들이 가장 많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는 기존 매체가 흉내 내기 어려운 유튜브나 OTT의 장점이다. 지상파 방송은 항상 정해진 편성이 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본방송을 하는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 재미를 찾기 위해서는 다음 주 그 시간에 다시 다음 회차 방송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유튜브는 영상 하나를 재미있게 보고 나면 그 순간 유튜브 회사의 인공지능(AI)이 내 나이, 성별, 관심 분야, 성향 등등을 최대한 분석하여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바로 밑에 추천해 준다. 그 영상을 보고 재미있다고 느끼면 또 비슷하게 좋아할 만한 영상을 다시 하나 더 추천해 준다. 이런 식으로 유튜브는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끝없이 볼 수 있게 해준다.
유튜브의 장점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사용자와 영상을 분석하는 인공지능의 힘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꼽고 싶다. 인공지능이 개선될수록 그 힘은 더 강해진다. 요즘 유튜브를 많이 보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스마트폰으로 남이 영상을 보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가 꽤 있다. 다른 사람이 이런저런 영상을 봐서 내 취향에 맞춰져 있던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 흐트러지는 게 싫기 때문이다.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은 내 스마트폰을 빌려준 사람의 취향에 따라 영상을 추천해 주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문제까지 신경을 쓰게 될 정도로 요즘 추천 알고리즘은 기능은 뛰어나다.
그러므로 TV 방송의 힘을 약하게 하고 TV 방송 분야의 일자리를 줄어들게 한 것은 결국 유튜브 인공지능이다. 이것은 인공지능으로 방송국 PD 일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으니 PD를 덜 채용한다거나 이젠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카메라를 조작해 주기 때문에 카메라 감독을 해고해도 된다는 등의 이야기와는 다른 문제다.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된 체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현상은 그 사람의 일자리에 직접 자동화 체계가 설치되며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경쟁사 때문에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간접적으로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벌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간접적인 일자리 대체가 더 빠르게 더 먼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인도에서 캐슈넛트 까는 사업을 하는 회사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수작업으로 캐슈넛트를 까고 있다. 회사 사장은 직원 모두를 아끼고 있어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더라도 아무도 해고할 생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베트남에 새로 생긴 회사에서 캐슈넛트를 자동으로 까는 기계를 도입해서 훨씬 싼 값에 대량의 캐슈넛트를 세계에 공급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인도 회사는 경쟁에 밀려 망하게 된다. 아무도 해고하지는 않았지만 자동화된 기계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매한가지다. 인도에서는 쉽게 파악할 수도 없고 더군다나 통제할 수도 없는 저 멀리 베트남에서 벌어진 기술 혁신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렇기에 그 영향력은 오히려 더 급격하고 강력하다.
돌아보면 이런 식으로 일자리가 변화하는 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벌어지고 있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더욱 빠르게 더욱 광범위한 영역에서 비슷한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많은 미디어 전문가들은 TV 방송국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 최고의 연예인들을 섭외해 제작하는 영상과 중학생들이 심심해서 슬릭백 춤추는 영상 같은 것을 올리는 유튜브 영상이 경쟁 대상이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만큼 상상을 초월해 전통적인 경쟁의 범위를 넘어서 인공지능이 여러 산업과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는 일 또한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올해 2월 16일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국세청 자료를 통해 공개한 바에 따르면 2024년 종합소득세를 신고한 유튜버는 3만4806명에 달했다고 한다. 단순 평균으로 이들의 연간 수입은 7100만원 수준이라고 하므로 이 통계에 잡힌 사람들의 상당수는 충분히 직업으로 유튜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이 숫자는 주업종을 ‘1인 미디어 콘텐트 창작자’ 또는 ‘미디어 콘텐트 창작업’으로 표기한 사람만을 헤아린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 유튜버의 숫자는 그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종합소득세를 신고하지 못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욱 더 늘어날 것이다.
국내 종소세 신고 유튜버 3만명 달해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유튜브 인공지능이 보았을 때 추천 영상이 될 만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애쓰고 있다. 과거에는 코미디언이나 가수가 유명해지려면 영향력 있는 방송국 PD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말이 있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들 “알고리즘을 잘 타야 유명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그 많은 한국의 예술인과 창작자들이 아마도 저 멀리 미국 아이오와주 카운슬 블러프스쯤 되는 어느 시골 마을에 쌓여 있을 유튜브 운영회사의 인공지능 컴퓨터의 눈에 들기 위해 인생을 걸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는 유튜브 영상이 퍼지면서 온갖 분야의 한국 유행과 사회 여론을 뒤흔드는 것 또한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그 모든 일들이 누가 무슨 방법으로 만들어 어떻게 운영하는지도 잘 알기 어려운 머나먼 곳의 인공지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묘한 일이다. 생각에 빠지다 보면, 한때 한국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유튜브와 견줄 만한 동영상 서비스 사업을 야심 차게 추진한 적도 있었는데 왜 몇몇 예외 말고는 자리 잡는 데 실패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된다. 옛날 공상과학(SF)에 나오던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이란 반란을 일으킨 기계 로봇들이 레이저총으로 사람들을 위협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에서 인공지능은 구독과 좋아요를 무기로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곽재식 작가·숭실사이버대 교수. 공상과학(SF) 소설가이자 과학자. 과학과 사회·역사·문화를 연결짓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괴물 백과』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등을 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공학·화학을 전공, 연세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