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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방산수출, 이제는 정부가 시장을 만들고 기업이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 [이상배 칼럼]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과거 우리 방산의 중심은 국내 군수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해 군에 공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K-방산이 세계 주요 시장에서 경쟁하는 수출산업으로 성장하면서 방산의 역할과 의미도 달라졌다.

기업 지원 중심에서 국가 주도형 수출전략으로 전환해야

방사청 중심 ‘국가 방산수출 실무조직’ 구축…시장 발굴부터 후속군수까지 통합 관리해야

[스포츠서울 | 이상배 전문기자]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과거 우리 방산의 중심은 국내 군수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해 군에 공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K-방산이 세계 주요 시장에서 경쟁하는 수출산업으로 성장하면서 방산의 역할과 의미도 달라졌다.

무기체계 수출은 단순히 기업의 매출을 늘리는 산업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수출을 계기로 국가 간 군사·안보 협력이 확대되고, 기술협력과 공동생산, 현지생산, 후속군수지원 등이 장기간 이어진다. 방산수출이 외교·안보와 산업·기술을 함께 움직이는 국가전략사업으로 자리 잡은 이유다.

문제는 방산수출의 규모와 중요성은 커졌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 차원의 수출체계는 여전히 기업 지원 중심의 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이 시장을 찾아가고 정부가 뒤에서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가 시장을 발굴하고 국가 차원의 사업을 설계한 뒤 기업이 기술과 경쟁력으로 참여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 무기 하나를 파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신뢰를 파는 시장

방산수출은 일반적인 상품수출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동차나 소비재는 가격과 품질, 브랜드 경쟁력이 주요 구매 기준이지만 무기체계는 다르다. 최종 구매자가 국가이고, 한번 도입된 무기체계는 수십 년간 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매국이 고려하는 요소도 성능과 가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 간 신뢰관계와 외교·안보 협력은 물론 기술이전, 공동생산, 현지생산, 교육훈련, 정비와 부품공급, 성능개량 등 장기간의 협력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결국 대형 무기체계 사업에서 구매국이 확인하는 것은 개별 기업의 제품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계약 이후에도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따라서 방산수출은 기업의 해외영업 역량만으로 완결하기 어렵다. 외교·안보, 국방, 산업·기술, 금융, 후속군수지원이 하나의 전략 아래 움직여야 한다.

△ 세계 방산시장은 ‘제품 경쟁’에서 ‘국가 패키지 경쟁’으로

세계 방산시장의 변화는 이러한 국가 차원의 접근 필요성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최근 구매국들은 단순히 완제품을 도입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기술이전과 공동생산, 현지생산, 공동연구개발, 인력양성, 정비체계 구축, 후속군수지원 등을 함께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방산수출의 경쟁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 경쟁력은 ‘우리가 얼마나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는가?’에만 있지 않다. 구매국의 국방수요에 맞춰 어떤 협력모델을 제시하고, 계약 이후 얼마나 안정적으로 사업을 책임질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런 시장에서 개별 기업이 모든 요구를 독자적으로 충족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구매국의 안보환경과 국방수요를 먼저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합한 사업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이후 국내 방산기업과 연구기관의 역량을 결집해 외교·안보와 산업협력을 결합한 국가 차원의 패키지를 제시해야 한다.

방산수출에서 정부의 역할을 단순한 ‘지원자’에서 ‘시장과 사업을 설계하는 주체’로 바꿔야 하는 이유다.

△ 미국 FMS가 보여주는 국가 주도형 방산수출의 원리

미국의 FMS(Foreign Military Sales)는 대표적인 국가 주도형 방산수출 체계다. FMS는 단순히 무기를 판매하는 제도가 아니라 정부 간 거래를 기반으로 무기체계 획득과 외교·안보 관계를 연계하고, 계약 이후 교육과 군수지원까지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구조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제도를 그대로 도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제도의 세부 형태보다 방산수출을 개별 기업의 영업활동이 아닌 국가 차원의 사업으로 관리한다는 원리다.

우리 역시 이제 수입국의 입장에서 FMS를 이해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수출국의 관점에서 국가 차원의 방산수출 역량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 우리의 문제는 역량이 아니라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전문역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방위사업청을 비롯해 국방부와 각 군,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진흥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산업통상자원부와 KODITS, 그리고 방산기업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의 전문인력과 경험은 상당히 축적돼 있다.

문제는 이 역량이 하나의 수출전략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대형 방산사업의 기회가 포착됐다고 가정해 보자. 시장조사와 수요분석에서부터 사업기획, 정부 간 협상, 기업 선정, 기술협력, 금융지원, 계약, 생산·인도, 교육훈련, 정비와 후속군수지원까지 수많은 기관과 기업이 관여한다.

각 기관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가와 국가가 경쟁하는 세계 방산시장에서 우리 역시 하나의 국가적 전략과 책임체계 아래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전문역량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역량을 하나로 연결하고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 방사청 중심 ‘국가 방산수출 실무조직’ 구축해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대한 정부 조직을 새로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해법이 아니다. 핵심은 기존 기관의 전문성을 사업 단위로 결집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작지만 강한 국가 방산수출 실무조직’​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방위사업청이 있어야 한다. 방사청을 중심으로 국방부와 각 군,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진흥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산업통상자원부와 KODITS, 방산기업 등이 사업별로 참여하는 상시 협업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 조직의 역할도 명확해야 한다.

첫째, 시장 발굴이다. 어느 국가에 어떤 국방수요가 있는지를 선제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둘째, 사업 기획이다. 구매국의 요구를 분석해 단순 무기 판매가 아닌 기술·산업·안보협력을 결합한 사업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셋째, 국가 역량 결집이다. 사업에 적합한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을 연결하고 외교·안보 지원, 금융, 산업협력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

넷째, 사업 전 과정 관리다. 협상과 계약에 그치지 않고 생산·인도 이후 교육훈련, 정비, 부품공급, 성능개량 등 후속군수지원까지 관리해야 한다.

즉, 시장 발굴 → 수요 분석 → 사업 기획 → 협상·계약 → 생산·인도 → 후속군수지원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하나의 책임체계로 연결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직의 규모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이다. 방사청 주도로 기관 간 업무를 조정하고 필요한 인력과 자원을 적시에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해외시장에서 발생하는 기회를 실제 수출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

△ 정부는 시장을 만들고 기업은 경쟁해야 한다

국가가 방산수출을 주도한다고 해서 기업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와 기업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을 발굴하고 국가 간 신뢰관계를 구축하며 사업의 큰 틀을 만드는 것이다. 기업은 그 위에서 기술개발과 생산, 품질관리, 원가절감, 납기 준수 등 제품과 사업의 경쟁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정부는 시장과 신뢰를 만들고, 기업은 기술과 제품으로 경쟁하는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국가 주도형 수출전략이 대기업 중심으로만 작동해서는 안 된다. 체계기업을 중심으로 국내 중소·중견 방산기업과 소재·부품·장비 기업, 연구기관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대형 무기체계 수출이 국내 산업 전반의 생산과 기술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때 방산수출은 단순한 수주를 넘어 국가 산업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 방산수출의 성과를 수출액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방산수출의 성과를 단순히 연간 수출액이나 수주액으로 평가하는 것도 이제는 한계가 있다. 하나의 무기체계 수출은 장기간의 군사협력과 산업협력, 기술협력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외교·안보 영향력을 높이고 국방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며 국내 방위산업의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방산수출은 경제정책인 동시에 외교·안보정책이고, 산업정책인 동시에 국방정책이다. 이러한 복합적 성격을 가진 사업을 기업의 해외영업만으로 추진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

△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대한민국 방산은 이미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술과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원기관을 계속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군, 연구기관, 기업에 흩어진 전문역량을 하나의 전략 아래 결집하고, 시장 발굴부터 후속군수지원까지 책임질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수출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방산수출의 규모가 커질수록 정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기업이 시장을 찾아가고 정부가 뒤에서 지원하는 ‘지원형 수출정책’에서 정부가 시장을 발굴하고 사업을 설계하며 기업이 경쟁력으로 참여하는 ‘선도형 수출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방위사업청은 국가 방산수출의 실질적인 주도기관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각 정부기관과 군·연구기관·기업의 역량을 사업별로 결집해야 한다.

이제 방산수출 정책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 기업이 어디에 수출할 것인가’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어느 시장을 만들고, 어떤 사업을 설계하며, 우리 기업을 어떻게 세계시장에 진출시킬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방산수출 강국을 넘어 세계 방산시장의 주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시장을 만들고, 국가가 사업을 설계하며, 기업이 세계 최고의 기술과 제품으로 경쟁하는 새로운 수출체계가 필요하다.

이제 K-방산의 다음 경쟁력은 무기를 만드는 능력만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시장을 만들고 사업을 완성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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