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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박형주의 세나수 세상에 나쁜 수학은 없다]지구를 위한 수학, MPE

자연의 무질서와 혼돈을 수학적으로 측정하고 규명하려는 투쟁의 기록은 인류 문명사 곳곳에서 발견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국가 명운을 쥔 나일강의 대범람에서 천체 운행의 주기성을 읽어내며 문명사 최초로 ‘패턴 인식’의 싹을 틔웠다.

[박형주의 세나수 세상에 나쁜 수학은 없다]지구를 위한 수학, MPE

자연의 무질서와 혼돈을 수학적으로 측정하고 규명하려는 투쟁의 기록은 인류 문명사 곳곳에서 발견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국가 명운을 쥔 나일강의 대범람에서 천체 운행의 주기성을 읽어내며 문명사 최초로 ‘패턴 인식’의 싹을 틔웠다. 초기 달력의 미세 오차가 누적돼 농경에 치명상을 입히자, 헬레니즘 알렉산드리아 시대에 이르러 1년을 365일 6시간으로 개선하고 매년 어긋나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4년마다 윤년을 도입함으로써 완전한 역법 체계를 구축했다.

난치병 치료에 ‘수학과 데이터’의 힘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은 경험과 패턴 인식으로 구름 모양을 관찰해 기상 예측과 연결하고 있고, 19세기 전기통신의 발명으로 원거리 관측망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기상 데이터의 광범위한 수집에 기반한 근대적 일기예보가 태동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기의 열역학적 변화와 유체 흐름을 편미분방정식으로 정식화하고 이를 슈퍼컴퓨터로 전산 해석하는 수치 기상예보 시대로 진화했다.

수학의 놀라운 통찰은 하늘을 넘어 땅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본다. 인류는 지구 중심을 파고 들어가지 않고도 지표 아래의 맨틀과 외핵, 내핵의 형태를 명확히 규명해냈다. 지표면에 도달한 지진파의 파형이라는 ‘결과’로부터 지구 내부 밀도와 구조라는 ‘원인’을 거꾸로 역산하는 ‘역문제’ 수학 모델 덕분이다. 흥미롭게도 이는 인체를 절개하지 않고 단면을 가시화하는 병원의 CT 및 X-ray 촬영 원리와 수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지구과학과 첨단 의학이 수학이라는 보편 언어로 통합되는 것이다.

오늘날, 극지의 만년설과 영구동토층이 허물어지고, 전례 없는 슈퍼 태풍과 가뭄, 기상이변으로 인류는 유례없는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기후 대응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탄소 배출 책임 공방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아직 개발 과정에 있는 개도국에 당장 탄소 배출을 줄이라는 것은 선진국의 갑질로 비칠 수도 있어서, 단순 규제만으로는 국제적 합의를 끌어내기 어렵다. 진정한 해결책은 신재생 및 청정에너지의 발전 단가를 기존 화석연료 이하로 낮추는 압도적인 기술 혁신인데, 데이터센터의 전기 수요 폭증 등은 문제의 난도를 올리고 있다.

2016년 이세돌 9단을 꺾으며 AI 시대를 열어젖힌 알파고의 창조자 데미스 허사비스는 대국 종료 직후, 다음 도전 과제로 ‘기후변화’와 ‘난치병 치료’를 지목했다. 바둑판의 승부를 넘어 인류가 직면한 가장 거대하고 복잡한 난제를 돌파하겠다는 그의 선언은, 이러한 문제 해결의 핵심 열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바로 ‘수학과 데이터’의 힘이다. 그가 먼저 성공을 거둔 분야는 난치병 치료였다. 알파폴드를 개발해 단백질 접힘 구조를 알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와 난치병 치료의 가능성을 높인 그는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인류 지속 가능성 해결의 ‘열쇠’

수학적 방법으로 지구의 문제를 접근하는 분야를 이제는 MPE(Mathematics of Planet Earth)라고 부른다. 2013년, 유네스코는 파리 본부에서 ‘지구를 위한 수학의 해’(Year of MPE) 선포식을 개최하고, 기후와 생태계 문제를 풀기 위한 전 세계 수학자들의 연대를 촉구했다. MPE는 기후변화나 감염병 확산같이 인류의 운명을 걸고 실험해볼 수 없는 문제들을, 각종 요소의 상관관계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가상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 기반해 있다.

하지만 자연의 물리 법칙을 미분방정식에 담아내는 일은 비선형성과 카오스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국소적 미세 변화가 대기 기류 전체를 뒤흔들고, 슈퍼컴퓨터의 성능 향상만으론 메울 수 없는 근원적 ‘불확실성’의 문제도 등장한다. 여기서 수학은 야코프 베르누이 이래 발전해온 확률 통계 기법으로 불확실성 자체를 정량화(UQ)함으로써 신뢰도를 제공한다. 방대한 기후 빅데이터를 심층 학습하는 최근의 AI 접근에서는,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은 경우의 수를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과 딥러닝으로 돌파했던 알파고의 방식처럼, 무한에 가까운 지구 기후 패턴 예측과 온실가스 감축의 최적 레버리지를 도출하는 데 이러한 방식이 고스란히 적용된다.

고대 나일강 범람에 대처하던 지혜부터 지구 내부 구조 스캐닝의 구현을 넘어, 이제 수학은 인류 지속 가능성의 모색이라는 거대 난제의 해결 과정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지적 도구가 됐다.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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