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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박윤정의 위클리투어] 오래된 시간이 일상이 되는 도시 '타이중'

타이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오래된 것을 지우지 않고 새로운 생활 속에 끌어들이는 도시의 방식이었다. 미술관에서 카페를 거쳐 자전거 박물관으로 이어진 하루는 서로 다른 장소를 방문한 일정처럼 보였지만, 돌아보니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박윤정의 위클리투어] 오래된 시간이 일상이 되는 도시 '타이중'

타이중그린뮤지엄브러리. 사진=박윤정 민트투어 대표

타이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오래된 것을 지우지 않고 새로운 생활 속에 끌어들이는 도시의 방식이었다. 미술관에서 카페를 거쳐 자전거 박물관으로 이어진 하루는 서로 다른 장소를 방문한 일정처럼 보였지만, 돌아보니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도시는 과거를 어떻게 오늘의 일상으로 바꾸는가?

◇ 거대한 지붕 아래, 도시와 관계 맺는 미술관

미술관에 다가가면 작품보다 먼저 건축이 시선을 붙잡는다. 사진 속 건물은 거대한 금속 격자가 지붕과 외벽을 연속적으로 감싸고 있다. 삼각형 모듈이 촘촘히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 느슨해지고, 지붕은 땅에서 솟아올랐다가 다시 낮아지는 하나의 지형처럼 보인다. 직선으로 반듯하게 세운 기념비적 문화 시설과는 상당히 다른 인상이다.

특히 위층에서 바라보면 건축의 성격이 더 분명해진다. 은빛 외피 아래로 공원과 산책로, 나무들이 이어지고 사람들은 건물과 정원 사이를 천천히 오간다. 미술관이 작품을 보관하는 상자가 아니라 도시의 풍경을 끌어들이는 커다란 그늘처럼 느껴진다. 미술관의 경험이 전시장 문 앞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바라보고, 걷고, 주변 풍경과 관계를 맺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전시를 본 뒤 카페에 앉았다. 이곳에서는 미술관의 긴장감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유리창 너머로 녹지가 보이고, 스테인리스 테이블과 의자, 은색 카운터 위로 주황빛 조명이 길게 내려앉아 있다. 차갑고 현대적인 금속의 질감에 따뜻한 빛 하나가 들어오자 공간의 표정도 달라진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좋은 문화 시설에는 이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작품 앞에서 집중했던 시선을 잠시 풀어놓을 장소가 있을 때 미술관은 관광지가 아니라 하루의 일부가 된다.

타이중 자전거 박물관. 사진=박윤정 민트투어 대표

◇ 두 바퀴로 읽는 근대의 시간

이어 찾은 자전거 박물관에 들어서자 하루의 속도도 한층 느려진다. 둥글게 휘어진 전시장을 따라 초기 자전거들이 시간 순으로 놓여 있다. 거대한 앞바퀴를 가진 자전거, 지금의 형태와는 사뭇 다른 프레임과 안장, 가느다란 금속 바퀴를 보고 있으면 자전거가 처음부터 완성된 물건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특히 1810년대의 초기 자전거를 재현한 전시품 앞에서는 자전거가 단순한 이동수단 이상의 발명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 두 바퀴는 인간의 이동 반경과 속도를 넓혔다. 걷는 사람과 기차 사이에 개인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속도가 생긴 것이다. 이후 자전거는 출퇴근 수단이 되고 스포츠가 됐으며, 대량 생산 산업과 도시 문화의 일부가 됐다. 그래서 자전거의 역사를 보는 일은 결국 근대인의 몸과 도시의 변화를 읽는 일이기도 했다. 페달 하나, 체인 하나, 바퀴의 크기 하나가 달라질 때마다 인간이 도시를 경험하는 방식도 조금씩 변했다. 미술관에서 건축을 통해 현재의 타이중을 봤다면, 이곳에서는 전시품을 통해 근대라는 시간을 바라보게 된다.

궁원안과 미야하라아이스크림. 사진=박윤정 민트투어 대표

◇ 오래된 건물서 맛보는 현재의 시간

저녁 무렵, 타이중 중구로 향한다. 이 지역의 매력은 새 건물보다 오래된 건물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궁원안과’와 ‘제4신용합작소’다. 이름만 들으면 여행객이 찾아갈 곳 같지 않다. 안과와 금융기관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건물을 다시 활용한 이 공간들은 지금 타이중의 대표적인 디저트 명소다.

궁원안과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안과의사 미야하라 다케오가 운영했던 안과 건물에서 이름을 가져왔다고 한다. 훗날 이 오래된 건물이 식품·디저트 공간으로 되살아나면서 과거의 이름 자체가 새로운 브랜드가 됐다. 제4신용합작소 역시 과거 금융기관이던 건물을 활용한 공간이다. 오래된 건물의 기억을 없애는 대신 이름과 흔적을 남기고 그 안에 아이스크림과 차, 과자 같은 현대의 소비문화를 채워 넣었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현재의 소비 경험을 더했다는 데 있다. 타이중의 도시재생은 역사를 박제해 놓고 감상하라고 요구하기보다, 사람들이 먹고 사고 머무는 행위 속으로 밀어 넣는다. 오래된 안과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옛 금융기관에서 디저트를 먹는 경험에는 약간의 유머가 흐른다. 과거는 엄숙한 문화재로 멈추지 않고 현재의 취향과 소비 속에서 다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저녁 식탁에서도 여러 문화가 겹쳐진 타이중의 얼굴을 만난다. 대만의 중국 음식은 하나의 ‘중식’으로 묶기 어렵다. 복건(푸젠)과 광동(광둥)을 비롯한 중국 남부의 음식 문화와 대만 고유의 식재료와 조리법, 일본 통치기의 영향이 오랜 시간 겹쳐졌다. 볶고 찌고 삶는 익숙한 중국 요리의 문법 속에서도 간은 비교적 섬세하고, 채소와 해산물, 돼지고기의 질감을 살리는 음식들이 자연스럽게 식탁을 채운다. 여러 접시를 가운데 놓고 조금씩 나눠 먹는 방식까지 포함하면 저녁 식사는 음식이라기보다 사람 사이의 시간을 만드는 자리에 가까웠다.

하루를 되짚어보니 미술관과 카페, 자전거 박물관, 궁원안과와 제4신용합작소는 전혀 동떨어진 장소가 아닌 듯 하다. 거대한 현대 건축도, 19세기의 자전거도, 오래된 안과와 금융기관도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과거를 남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보존하되 멈춰 세우지 않고, 고쳐 쓰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않는다. 미술관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오래된 건물에서는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렇게 역사는 기념관이 아니라 일상 가까이에 머문다. 어쩌면 도시의 기억을 오래 남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전시장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계속 그 안을 걷고 먹고 이야기하도록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박윤정 민트투어 대표 pyj@minttou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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