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규의 도시, 문화로 날자(5회)
▲ 박승규 대전대 교수
K-팝 아레나, ‘또 하나의 돔’에 취한 충청권…
지금 필요한 건 ‘상징’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다
K-팝은 이미 음악 장르를 넘어 국가 전략산업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6년 예산안에서 ‘K-컬처 300조원 시대’를 선언하며 중대형 공연형 아레나 구축 기본연구 예산까지 반영했다. 정부는 이제 공연장을 단순 문화시설이 아니라 콘텐츠·관광·MICE·AI 산업이 결합된 국가 인프라로 보기 시작했다.
이 흐름 속에서 충청권도 들썩이고 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천안아산역 인근에 5만석 규모 돔구장과 K-팝 아레나를 결합한 초대형 프로젝트를 꺼내 들었고, 충북 오송 역시 5만석 돔구장 구상을 내놨다.
대전 정치권에서도 대전역과 원도심을 중심으로 K-팝 아레나 아이디어를 거론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지금 충청권이 경쟁해야 할 대상은 서로가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이라는 현실이다.
현재 수도권은 이미 ‘아레나 전쟁’에 들어갔다.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공항·리조트·외국인 관광을 결합했고, 서울 창동 아레나는 카카오 중심 민간 운영 모델을 구축 중이다.
CJ라이브시티는 제작·체험·공연이 결합된 콘텐츠 생태계를 준비하고 있다. 반면 충청권은 아직 “무엇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보다 “몇 만석을 지을 것인가”에만 몰두하는 분위기다.
현실은 냉정하다. 아레나의 핵심은 규모가 아니라 ‘가동률’이다. 연 150일 이상 콘텐츠를 돌릴 수 있는 상시 운영 구조와 앵커 콘텐츠 확보가 성패를 좌우한다.
하지만 충청권에는 대형 기획사 본사도, 상설 IP도, 해외 팬을 끌어들일 글로벌 관광 허브도 부족하다. 천안아산 돔구장 검토 의견서조차 “서울 시설이 모두 찬 다음에 선택되는 2~3순위 옵션”이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특히 ‘돔 야구장과 K-팝 아레나’ 결합 모델은 정치적으로는 화려해 보일 수 있어도 산업 논리로는 불안하다. 야구장은 시즌제 시설이고, 아레나는 상시 공연형 시설이다. 설계 철학도 수익 구조도 완전히 다르다. 결국 어느 쪽에도 최적화되지 못한 ‘거대한 혼합 적자시설’이 될 위험이 크다.
대전은 광역교통 측면에서 강점이 있지만, “교통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글로벌 공연이 오지는 않는다. 실제 공연 산업은 장비·스태프·홍보·숙박·항공까지 수도권 중심 생태계로 움직인다. 충청권이 진짜 고민해야 할 것은 “서울을 이길 초대형 돔”이 아니라 “서울과 역할을 분담할 현실적 문화 인프라”다.
오히려 대안은 복합공간에서 찾을 수 있다. 대전의 ICT·게임 산업 기반과 충남의 관광 자원을 결합한 ‘e-스포츠·중형 공연장 네트워크 모델’이다.
5천~1만석급 공연장과 버추얼 콘텐츠, OTT 라이브, 국제 e-스포츠를 연결하는 구조라면 건설비 부담은 줄이고 가동률은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 지역 청년과 콘텐츠 기업이 실제로 숨 쉬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지금 충청권 정치권에 필요한 것은 “우리도 5만석”이라는 경쟁심리가 아니다. 상징은 선거에서 박수를 받을 수 있지만, 운영 적자는 결국 시민 세금으로 돌아온다.
문화산업은 건물이 아니라 콘텐츠와 사람, 그리고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에서 시작된다. 충청권이 진짜 문화수도로 가는 길은 가장 큰 돔을 짓는 데 있지 않다. 가장 오래 살아남는 문화 생태계를 만드는 데 있다.
박승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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