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공동체와 함께하는 출장 편집국
(1) 신입기자 밀양 여행기
한여름 위양지에서 만난 밀양 상인
사계절 풍경부터 옛 추억까지 생생
둘레길 걷다 마주친 창원 사는 부부
출향민이 선사한 뜻밖의 여정 동행
지난달 26일 낮 12시 30분 밀양 위양지 모습. 저수지가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최은주 기자
경남도민일보는 올해 도내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지역 문화공동체와 함께하는 출장 편집국’을 진행합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지역공동체활성화프로젝트’ 사업 지원을 받은 일종의 체류형 지역 기록 프로젝트입니다. 본사 기자들, 다른 지역 예술인들이 일정 기간 그 지역에 머무르면서 지역 문화 예술인들을 만나고, 문화 공간을 찾아보며 서로를 연결하고 기록하는 활동입니다. 두 번째 지역인 밀양에서는 지난달 25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됐습니다.
저수지에는 푸릇한 나무들과 푸른 하늘이 선명하게 비쳤다. 1㎞ 남짓한 저수지 둘레는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흰뺨검둥오리 5마리가 물 위를 줄지어 헤엄쳤다. 쉬지 않고 쨍쨍 울어대는 매미 소리 속에서 더운 공기가 흘렀다. 지나가는 사람은 열 명 안팎이었다. 지난달 26일 낮 12시 30분, 밀양시 부북면 위양지 모습이었다.
전경을 가까이서 보려고 물가로 다가갔다. 서서 사진을 찍자 모기와 날벌레가 달려들었다. 손을 휘저으며 자리를 옮기다 바로 앞에 놓인 ‘해충 퇴치 기피제 분사기’를 발견했다. 분사기를 눌렀지만 ‘끽끽’ 소리만 날 뿐 약은 나오지 않았다.
첫 번째 우연한 만남
지난달 26일 밀양 위양지 앞에서 콩을 파는 차길현 씨가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다. /최은주 기자
“이거 다 썼을걸요?”
분사기 옆에서 콩을 팔던 차길현(50) 씨가 말을 걸었다. 그는 분사기를 한 번 만져보더니 안 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차 씨는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위양지 앞에서 청보리콩과 볶음 서리태, 땅콩 등을 판다. 이곳에서 장사한 지 7년 정도 됐다. 그는 내가 고등학생처럼 보여 혼자 온 이유가 궁금해 말을 걸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왜 혼자 왔는지 묻고 답하다 보니 대화는 자연스럽게 위양지 이야기로 넘어갔다. 차 씨는 위양지 한 바퀴를 빨리 걸으면 20분, 천천히 둘러보면 한 시간도 걸린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남생이도 있고 붉은귀거북도 있어요. 한 번씩 햇볕 쬐러 올라오는데 엄청 많아요.”
새벽 위양지 이야기도 꺼냈다. 차 씨는 이곳에서 한 번씩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며, 처음에는 “귀신 소리인 줄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 어르신에게 물으니 ‘가무치(가물치)’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버드나무 근처에 있다가 사람이 다가가면 물속으로 뛰어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지난달 26일 낮 12시 30분 밀양 위양지에서 흰뺨검둥오리 5마리가 물 위를 줄지어 헤엄치고 있다. /최은주 기자
차 씨가 꼽은 위양지의 가장 큰 매력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이었다.
“여기 사계절 다 있어 봤는데, 매력이 다 달라요. 새벽, 오전, 오후도 다 다르죠. 특히 새벽 4시가 되면 안개가 싹 올라오거든요. 그때 최고로 예뻐요.”
5월에는 이팝나무의 흰 꽃을, 가을에는 백일홍을 보러 사람들이 몰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광객들의 반응이 늘 기대와 같지는 않았다.
“봄에 이팝나무 꽃이 피면 하루에 2000명씩 와요. 반면 가을 백일홍은 사진으로 보면 정말 예쁘잖아요. 그런데 막상 오면 실망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것밖에 없나’ 하는 거죠.”
차 씨는 밀양에는 위양지 말고도 둘러볼 곳이 많다고 말했다. 자신이 자주 찾는 만어사를 비롯해 얼음골과 영남루 등을 추천했다.
지난달 26일 밀양 위양지 주변으로 백일홍이 피어있다. /최은주 기자
밀양 위양지를 걷다가 만난 장수풍뎅이 한 마리. /최은주 기자
밀양 위양지를 걷다가 만난 거북이가 물가 나무 위에 앉아 있다. /최은주 기자
짧은 대화를 마치고 인사를 건넨 뒤 위양지 둘레길로 들어섰다. 길을 따라 느티나무가 이어졌다. 한쪽으로 크게 휘어진 나무에는 ‘나무 위에 올라가지 마세요’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길 한가운데에서는 장수풍뎅이 한 마리를 마주쳤다. 물 위로 드러난 나무토막에는 거북이 한 마리가 올라앉아 있었다.
두 번째 우연한 만남
둘레길을 걷다 보니 한 정자에 닿았다. 김재웅(69)·김영주(65) 부부가 앉아 위양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위양지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있자 김재웅 씨가 말을 건넸다.
“아가씨, 어디서 왔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부부도 창원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부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위양지를 찾는다.
“12년 전에 친구 부부하고 여기서 낚시하고 매운탕도 끓여 먹었어요. 방금도 그 이야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때는 나무가 더 무성했어요.”
김 씨는 예전에는 지금보다 나무가 훨씬 많았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다 저수지 안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무 사이로 완재정이 보였다.
“저기 가봤어요?”
아직 가보지 않았다고 하자 부부는 같이 가자고 했다. 완재정으로 걸어가는 동안 김 씨는 위양지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위양지는 말 그대로 ‘지(池)’, 저수지잖아요. 농경지에 물을 대려고 만든 거예요. ‘위양(位良)’은 백성을 위한다는 뜻이고요.”
위양지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다. 저수지 안에는 작은 섬들과 정자 완재정이 있다.
지난달 26일 밀양 위양지에서 만난 창원 사는 김재웅(왼쪽)·김영주 부부가 위양지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남편 김 씨 고향이 밀양이다. /최은주 기자
완재정을 둘러보고 나오자 김 씨가 말했다.
“여기보다 더 좋은 데가 있어요.”
그가 보여주고 싶다는 곳은 용두산 생태공원이었다. 강을 따라 잔도(벼랑을 따라난 좁은 길)가 이어진 곳이라고 설명했다.
“여기는 꼭 가봐야 해요. 내가 구경시켜 줄게.”
김 씨는 휴대전화 지도에 주소를 입력하고 자신의 차를 따라오라고 했다. 부부가 탄 차가 먼저 위양지를 빠져나갔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지난달 26일 밀양 위양지에서 만난 김재웅·김영주 부부의 차를 따라 밀양시 가곡동 용두산으로 향하고 있다. /최은주 기자
그러나 길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부부의 차를 놓쳤다. 입력한 주소와 부부가 향한 곳도 달랐다. 한동안 길을 헤맨 끝에 다시 만났을 때 김 씨가 말했다.
“원래 첫 길에는 고생하기 마련이지. 인생을 살아가기 쉬운 건 아무것도 없어.”
부부는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자고 말했다. 카페에서 김 씨는 오래전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이 근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추억이 많은 장소라고 소개했다. 스물다섯 살 무렵까지 이 일대에서 살았다고 한다. 학교를 마치면 모래주머니를 차고 용두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곤 했다. 강에서는 친구들과 고기를 잡고 씨름을 하며 놀았다.
김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도 이 용두산이다. 비 오는 날이면 아내에게 이 곳으로 드라이브를 가자고 한다.
“비 오면 여기가 너무 낭만적이에요. 밀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 용두산에 내리는 밤비에요.”
지난달 26일 오후 2시 밀양 용두산 잔도길에서 바라본 밀양강. /최은주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밀양 용두산 잔도길을 김재웅·김영주 부부가 걷고 있다. /최은주 기자
김 씨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산과 강의 모양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했다. 어느 쪽이 용의 머리이고, 산줄기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손짓으로 그려 보였다.
“왜 용두산이냐 하면 용머리처럼 생겼어요. 우리가 앉아 있는 데가 용머리예요. 이 밑으로는 몸통이고요. 위에서 보면 용의 머리처럼 보여서 용두산이고, 아래 강을 옛날에는 용두강이라 불렀어요.”
김 씨는 그동안 안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 밀양이 좋지 않은 이미지로만 기억되는 것을 아쉬워했다.
“옛날에 밀양을 두고 악평이 났었을 때 기사 댓글에 밀양이 꼭 그런 곳이 아니라고,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용두강부터 해서 곳곳을 소개했어요. 하루 뒤에 보니까 거의 몇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더라고.”
김 씨는 우리의 만남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날 부부가 예정대로 용두산으로 향했다면 만나지 못했을 터였다. 나 역시 위양지 정자에서 김 씨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용두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용두산에만 오려고 했어요. 좌회전하려는 데 차가 너무 많아서 위양지로 온 거야. 그러다 아가씨를 만났네.”
이렇게 우연한 만남이 선사한 여행으로 밀양의 멋진 모습을 눈에 담고 숙소로 돌아왔다.
/최은주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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