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남자 골프 메이저대회 마스터스의 개막을 알리는 명예 시타자로 나선 잭 니클라우스(오른쪽)와 톰 왓슨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 AFP연합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어떤 일은 매우 일어나기 힘들고 또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1980년 올림픽에서 미국 하키팀이 소련을 꺾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잭 니클라우스가 46세에 65타를 쳐서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예는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
워싱턴포스트의 전설적인 스포츠 칼럼니스트 토머스 보스웰이 1986년 마스터스를 목격하고 남긴 이 문장은 니클라우스가 골프 역사에 새긴 가장 극적인 순간을 대변한다. 1980년 US오픈과 PGA 챔피언십 동시 석권 이후 6년 동안 메이저 승수가 멈춰있던 46세의 니클라우스. 세간에서는 이미 그를 향해 ‘역전의 용사지만 무기는 녹슬었다’ ‘박물관에 가야 할 나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니클라우스는 골프의 성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골프클럽에서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기 드라마를 집필했다.
1986년 마스터스, 황금 곰의 마지막 포효
1986년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 선두 그렉 노먼에게 4타 뒤진 채 출발한 니클라우스는 전반 8번 홀까지도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 9홀, 잠자던 황금 곰이 깨어났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그만두지 말고, 절대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하라(Resolve never to quit, never to give up, no matter what the situation).” 이 신념처럼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9번 홀부터 11번 홀까지 3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추격의 서막을 알린 그는 15번 홀(파5)에서 200야드가 넘는 거리를 4번 아이언으로 공략해 투온에 성공한 뒤 이글을 낚아채며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어진 16번 홀(파3)에서 5번 아이언 티샷을 홀컵 1m 거리에 붙여 버디를 추가하자, 오거스타의 숲속은 “잭! 잭!”을 연호하는 함성으로 뒤덮였다. 이어 17번 홀(파4)에서 약 3.5m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뒤 퍼터를 하늘 높이 치켜든 장면은 마스터스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후반 9홀에서만 이글 1개와 버디 5개를 묶어 30타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종 합계 7언더파 65타. 톰 카이트와 노먼을 1타 차로 제치고 46세 2개월 23일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마스터스 우승자이자, 통산 6번째 그린 재킷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기적 같은 우승은 “잘못된 점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책에 집중하라.(Focus on remedies, not faults)”는 그의 긍정적 사고가 만들어낸 결정체였다.
니클라우스는 압도적인 파워가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플레이했다. 그는 1960년대 초반부터 작은 수첩에 발걸음으로 잰 거리와 코스 특징을 세밀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캐디의 감에만 의존하던 골프계에 야디지 북(Yardage Book) 개념을 도입한 선구적 사건이었다.
그의 전략은 단순히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확률의 게임이었다. 핀을 직접 겨냥해 실수할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그린의 가장 넓은 중앙 지역을 공략해 확실한 파를 확보하고 기회가 왔을 때만 버디를 노렸다. “골프 코스 관리의 큰 부분은 코스에서 당신의 스윙을 관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공을 칠 수는 있지만, 공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관리하는 법을 모른다.”
그는 공을 높이 띄워 세우기 유리한 하이 페이드(high fade) 구질을 주무기로 삼았다. 이는 딱딱하고 빠른 메이저 대회의 그린 위에서도 공을 원하는 지점에 멈추게 하기 위한 철저한 계산 결과였다. 그는 요행을 바라지 않았다. “큰 클럽으로 완벽하게 똑바로 친 샷은 요행이다(A perfectly straight shot with a big club is a fluke).”
그는 어려운 코스를 즐기는 고행자와 같았다. 확률 높은 샷을 선택함으로써 리스크를 관리했다. “트러블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한 한 그곳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The best way to cope with trouble is to stay out of it as much as possible).”
1963년 마스터스 우승을 차지한 잭 니클라우스에게
전년도 챔피언 아널드 파머가 그린 재킷을 입혀주고
있다. /사진 AP연합
40대까지 정상을 유지한 자기 관리의 비밀
니클라우스가 46세에 마스터스를 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저서 ‘골프 마이 웨이(Golf My Way)’에 잘 나타나 있다.
첫째, 그는 시각화(visualization)의 대가였다. “머릿속으로 컬러 영화를 보듯 공의 궤적을 그리기 전에는 절대로 샷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정신적 훈련을 중시했다. 어드레스에 들어가기 전 공 뒤에 서서 공이 날아가는 선과 낙하지점을 미리 보는 그의 루틴은 전 세계 골퍼의 교본이 되었다.
둘째, 철저한 에너지 집중이다. 그는 가족과의 시간을 확보하고 정신적 소모를 막기 위해 연간 대회 출전 횟수를 15~20개 내외로 엄격히 제한했다. 대신 4대 메이저 대회에 맞춰 훈련 강도와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피크 퍼포먼스 전략을 취했다.
또한 그는 나이가 들어 근력이 떨어지자 무거운 퍼시먼 드라이버 대신 메탈 헤드나 카본 소재 등 장비의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짧아진 비거리를 정교한 쇼트 게임과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보완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점이 롱런의 핵심이었다. “자신감은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요소이며,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을 얻고 유지하는 방법은 연습뿐이다(Confidence is the most important single factor in this game, and no matter how great your natural talent, there is only one way to obtain and sustain it: work).”
태양 아래의 결투와 ‘컨시드’
니클라우스의 커리어는 위대한 라이벌이 있었기에 더욱 빛났다. 1960년대 아널드 파머와 경쟁이 골프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1970년대 톰 왓슨과 대결은 골프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특히 1977년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열린 디오픈은 ‘태양 아래의 결투(Duel in the Sun)’라는 전설로 남아 있다. 니클라우스는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66타를 쳤지만, 65타를 기록한 왓슨에게 1타 차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니클라우스는 패배 직후 왓슨의 어깨를 감싸며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다. 강한 승부욕 속에서도 그는 상대를 존중했고, 패배했을 때 더 빛나는 품격을 보여주었다. 당시 기자들은 그를 두고 “승리했을 때보다 패배했을 때의 인터뷰가 더 품격 있고 훌륭하다”고 평했다. 1969년 영국 로열 버크데일에서 열린 라이더컵. 미국과 유럽의 자존심이 걸린 이 대회는 마지막 날 마지막 조인 니클라우스와 영국의 골프 영웅 토니 재클린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재클린은 그해 디오픈에서 영국인으로는 18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린 자국 최고의 스타였다.
18번 홀 그린 위, 니클라우스가 1.5m 파 퍼트를 성공시키자 재클린 앞에는 약 60㎝의 파 퍼트가 남았다. 이를 놓치면 자국 팬 앞에서 팀에 패배를 안기게 되는 상황. 니클라우스는 다가가 재클린의 볼 마커를 집어 들며 컨시드를 선언했다. 경기는 16 대 16 무승부로 끝났고, 이 장면은 승리보다 위대한 스포츠맨십의 상징이 되었다.
“자네가 이 퍼트를 놓칠 리 없지만, 수천 명의 자국 팬 앞에서 그 퍼트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부담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네.”
처음엔 불같이 화를 냈던 미국팀 캡틴 샘 스니드조차 훗날 이 장면을 “내가 본 가장 위대한 골프 매치이자 신사적인 결정”이라고 인정했다. “골프는 존중과 스포츠맨십의 게임이다. 우리는 그 전통과 규칙을 존중해야 한다(Golf is a game of respect and sportsmanship; we have to respect its traditions and its rules).” 그의 말처럼, 컨시드는 골프의 진정한 가치가 점수판 너머에 있음을 전 세계에 증명해 보였다.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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