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베이징,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국빈 만찬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건배주를 마시는 장면(사진=VOA동영상 캐처)
2026년 5월 13일 밤, 에어포스원이 알래스카 앵커리지에 잠시 내렸다. 복수 보도에 따르면 애초 수행단 명단에서 빠졌던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막판에 초청돼 그곳에서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 날인 5월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8년여 만의 미국 대통령 방중이었다. 그리고 미국 싱크탱크 디플로맷이 짚어낸 것처럼, 2001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일본·한국·호주 등 역내 동맹국 수도를 단 한 곳도 거치지 않았다.
이 생략된 경유지가 이미 하나의 메시지다. 이번 회담은 동맹을 끌어들이는 다자 판이 아니라, 두 강대국이 직접 거래하는 양자 협상이었다.
시진핑의 투키디데스 함정, 경고인가, 인지전인가
회담 벽두에 시진핑이 꺼낸 화두는 예상을 깼다. "중국과 미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을 극복하고 강대국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겠는가." 투키디데스 함정은 하버드 케네디스쿨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가 2014년 제시한 개념이다.
고대 아테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이렇게 썼다. "아테네의 부상과, 그것이 스파르타에 심어준 두려움이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앨리슨은 이 구도를 미중 패권 경쟁에 적용했다. 지난 500년간 신흥 강대국이 패권국에 도전한 16개 사례 가운데 12개가 전쟁으로 끝났다.
그런데 시진핑의 발언에는 교묘한 역전이 있다. 이 개념에서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은 아테네, 즉 중국이다. 위협을 받는 패권국은 스파르타, 즉 미국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이 도식을 뒤집어, 마치 중국이 미국의 팽창을 두려워하는 방어적 행위자인 것처럼 프레이밍했다.
남중국해 군사화, 대만 위협, 이웃 국가에 대한 경제 강압이 주변국의 정당한 방어 기제를 촉발했음에도, 피해자 코스프레로 미국의 봉쇄망을 해체하려는 인지전(Cognitive Warfare)이다. 시진핑이 또 대만 문제를 이렇게 못 박았다. "대만 독립과 양안 평화는 물과 불처럼 양립할 수 없다. 잘못 다루면 충돌과 분쟁으로 간다." 협박이자 레드라인 재확인이다. 트럼프는 이 발언에 공개 석상에서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을 어떻게 보는가
미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안내로 중국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사진=백악관 홈페이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안보 전략 문서들은 중국을 미국의 최우선 전략 경쟁 대상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목표는 중국의 붕괴가 아니다. 중국이 인도·태평양에서 패권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전쟁 없이 미국에 유리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제1도련선 중심의 거부적 억제(deterrence by denial)를 구축하고, 경제적으로는 공급망 재편과 기술 우위 확보를 병행한다. 중국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팽창하지 못하도록 한계선 안에 묶어두는 전략이다.
중국은 반대 방향을 바라본다.
미국을 전략적 위협으로 규정하되, 정면충돌 대신 평화공존·상호존중의 언어로 버틴다. 반도체·AI 국산화를 밀어붙이고, 디지털 위안화와 결제 네트워크 확장으로 달러 의존을 줄이려 한다. 중국의 1분기 GDP 성장률 5%는 겉으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부동산 부채 위기, 21%대 청년 실업률(공식 발표 중단),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약점이 그 아래에 쌓여 있다.
이란 전쟁 장기화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에너지 수입이 위협받는 것도 중국에게 절박한 현안이다. 시진핑이 이번 회담에서 미국산 에너지를 더 사들여 호르무즈 의존을 줄이고 싶다고 먼저 말한 것은 자발적 제안이 아니라 구조적 압박에 대한 반응이다. 달러 패권과 첨단 기술 통제권은 여전히 미국이 쥔 레버리지다. 미국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도, 중국이 더 필요한 쪽이다.
트럼프는 회담장에서 시진핑을 향해 웃으며 "훌륭한 사람이다", "우리 관계는 늘 좋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밀렸다"고 읽는다. 트럼프의 협상 패턴을 보면 반대다. 경쟁자로 여기는 상대를 만날 때 그는 오히려 목소리를 낮추고 부드럽게 대한다. 상대를 방심시켜 약점을 드러내게 하려는 것이다. 진심으로 신뢰하는 동맹과 만날 때는 목소리가 커진다.
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11월 중간선거가 코앞인 상황에서, 베이징에 가서 씨 뿌리고 온 사람이 누구인지는 앞으로의 행보가 보여줄 것이다.
회담 결과, 실무는 됐고, 본론은 안 됐다
135분간의 회담이 끝났다. 합의된 내용은 대략 이렇다. 양국 무역·투자위원회를 설립해 장기 관리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 사전 협의에서 도출된 관세 조정과 농산물 구매 확대가 확인됐고, 미국산 에너지 구매 의사도 중국 측이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이 자유롭게 유지돼야 한다는 원칙도 공동으로 확인됐다. APEC·G20 정상회의의 상호 지원도 합의됐다. 시진핑은 "중국의 개방의 문은 더 넓게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 의제별 결과 (2026.05.14)
분야
논의 및 합의 내용
결과
무역·관세
서울 사전 협의 결과 확인, 무역·투자위원회 설립
합의
농산물·에너지
미국산 대두·농산물 구매 확대, 미국산 에너지 수입 의사 표명
합의
호르무즈 해협
자유 항행 원칙 공동 확인
원칙 합의
대만
시진핑 강경 경고, 미국 공개 대응 없음, 구체 합의 없음
합의 없음
반도체·AI
수출통제 입장 차이 확인, 실질 합의 없음
합의 없음
이란 전쟁
미국 협조 요청, 호르무즈 원칙 합의로 우회 처리
간접 합의
한반도·북한
공개 발언에서 비중 없음, 논의 내용 미공개
주변화
달라진 것은 온도이지 구조가 아니다. 전문가들이 이번 회담을 관리된 휴전으로 부르는 이유다. 대만, AI, 반도체는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신화통신은 국내용 기사에 시진핑이 대만 문제로 트럼프에게 강하게 경고했다고 대서특필하면서, 영어판에는 양안 평화가 공통 이익이라는 온건한 문장만 올렸다.
국내 인민에게는 강경 이미지를, 국제 사회에는 합리적 행위자 이미지를 동시에 심는 이중 플레이다. 이것이 공산당 선전의 전형이다. 한국 언론 상당수가 이 신화통신 기사를 그대로 받아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의 선전물이 한국 여론 시장에 무방비로 유통되는 구조가 이번에도 반복됐다.
에어포스원 승객 명단이 말하는 것
트럼프가 데려간 기업인 명단은 회담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젠슨 황(엔비디아), 일론 머스크(테슬라), 팀 쿡(애플), 래리 핑크(블랙록), 골드만삭스, 씨티, 마스터카드, 비자, 보잉, 카길, GE에어로스페이스, 마이크론, 퀄컴, 블랙스톤. 기술·금융·항공·농업·반도체를 망라한 구성이다. 중국 외교부도 트럼프가 이들을 회담장으로 데리고 들어가 시진핑에게 직접 소개했다고 밝혔다.
이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중국 시장에서 미국 기업이 중국 기업과 동등한 조건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실질적 시장 접근과 규제 불확실성 해소다. 트럼프가 말한 중국 개방의 실체가 그것이다.
보수 진영은 이 구도의 이면을 더 봐야 한다. 미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자유롭게 활동한다는 것은 첨단 기술이 공산당 통제 시스템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경로가 될 수 있다. 중국 내 데이터 센터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 확보나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법적 보장이 전제되지 않으면, 시장 개방은 제2의 트로이 목마다. 트럼프의 거래적 접근이 단기 이익을 좇다가 장기 안보를 갉아먹는 역설, 미국 스스로도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개방은 공산당 통치 구조에 대한 직격탄이다
시진핑이 중국의 문은 더 넓게 열릴 것이라고 말한 것은 환영 선언이 아니라 조건부 응대다. 중국 공산당의 통치 구조는 국가 보조금, 기술 강제 이전, 데이터 현지화, 자국 기업 우선 정책 위에 서 있다. 시진핑 체제가 구축한 데이터보안법·개인정보보호법·네트워크안전법이 이 구조의 법적 토대다.
미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기술·데이터·자본을 자유롭게 유통하는 순간, 이 법적 장벽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외국 자본의 활동 공간이 넓어지면 당의 경제 통제력이 느슨해지고, 정보가 자유롭게 오가면 여론 장악력도 흔들린다. 덩샤오핑 시대의 통제된 개방과 달리, 시진핑은 당 중심의 폐쇄 모델을 선택했다. 그래서 개방은 시진핑 입장에서 경제 협력이 아니라 체제 생존의 문제다.
역설은 여기에 있다. 중국 개방은 중국 국민에게 나쁜 일이 아니다.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 더 많은 경쟁, 더 투명한 시장이 들어온다. 고통받는 것은 당 통제 기구다. 트럼프의 개방 요구는 그런 의미에서 전쟁 없이 공산당 체제를 압박하는 전략의 성격을 가진다. 역사는 이런 구조적 개방 압력이 장기적으로 권위주의 체제를 약화시켜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련이 그랬고, 동구권이 그랬다.
서울을 건너뛴 트럼프, 한국에 보낸 신호
트럼프가 베이징 가는 길에 서울을 건너뛴 것은 단순한 일정 문제가 아니다. 베이징 회담 전날인 5월 13일, 미국 대통령 대신 베선트 재무장관이 서울에 들러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경제·무역 사전 협의를 가졌다. 한국은 미중 양자 협상의 경유지이자 사전 조율 장소였다.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더 무게감 있는 것은 북한 문제다.
트럼프도 시진핑도 공개 발언에서 한반도와 북한을 사실상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양 정상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공개 발표에서 한반도 의제가 주변으로 밀린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 이 침묵이 중요하다.
북핵 문제를 미중을 통해 관리하려는 외교 경로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디플로맷은 이번 회담에서 한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양국이 합의한 내용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희토류도 마찬가지다. 이번 회담을 전후해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한시적으로 완화하겠다고 밝힌 것은, 거꾸로 그 카드의 절대성이 약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일본·호주·캐나다가 대체 공급망 구축을 가속하면서,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화할수록 공급망 다변화가 빨라지는 역설이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이 받을 압박, 단기 호재와 이중 의존의 함정
한국 언론은 이번 회담을 삼성·SK하이닉스 반사이익, HBM 수요 폭발 기대로 다루고 있다. 단기 분석으로는 틀리지 않는다. 엔비디아 AI칩 수출 규제가 완화되면 중국 빅테크의 GPU 수요가 늘고, 이 칩에 탑재되는 HBM 메모리 수요도 커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중국이 미국 기술을 더 쉽게 흡수하면, CXMT(창신메모리)와 YMTC(양쯔메모리)가 기술 격차를 좁히는 속도가 빨라진다. 레거시 DRAM과 NAND 분야에서 중국의 점유율 확대는 이미 진행 중이다. 단기 수익을 올리면서 장기 경쟁자를 키워주는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
통상 압박도 한국을 피해 가지 않는다.
트럼프가 중국에 미국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하게 하라고 요구하는 논리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반도체·배터리·조선·방산 혜택을 누리는 동안, 미국 빅테크는 한국의 플랫폼 규제, 클라우드 보안 인증, 공공조달 장벽에 막혀 있다.
블랙록·골드만삭스·씨티 같은 금융회사는 한국 자본시장 접근성을 오래전부터 문제 삼아 왔다. 미중이 직접 거래하는 국면에서 이 압박이 더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중국보다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 안보와 경제가 모두 미국과 깊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취해온 안미경중 노선, 안보는 미국에 기대고 경제는 중국 시장에 의지하는 이 구조는 미중이 직접 거래하는 국면에서 설 자리가 좁아진다. 미중 양국이 한국을 건너뛰고 양자 협상을 트는 순간,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은 레버리지가 아니라 고립의 자초가 된다. 베선트 장관이 서울을 들렀을 때 한국이 받은 메시지는 그것이다. 이 판의 일부가 돼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짠 판 밖에 있게 된다.
한국이 선택해야 할 길
한국이 수세에만 몰린 것은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업 MRO 역량은 미 해군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다. K-방산 공급망은 미국의 탄약·무기 생산 병목을 보완할 수 있다.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는 미국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구조다.
이 자산들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고, 미국 기업의 한국 시장 접근 압박에 맞서 주고받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수동적 순응이 아니라, 해양 세력 파트너로서의 능동적 협상이다.
한국의 반도체 원천 기술 라이선스는 미국에 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오늘 생산하는 모든 첨단 반도체는 미국의 기술 허가 위에서 만들어진다. 그 허가가 닫히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마비된다. 미국이 그 카드를 쓸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카드를 쥔 쪽이 어디인지 알고 외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미 동맹은 굴종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 간의 생존 연대다. 이 연대를 사대주의로 매도하는 논리는 한국을 공산당 통치 체제에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안내한다. 역사는 이것을 이미 보여줬다. 19세기 말 청일 사이를 오가던 조선이 끝내 주권을 잃었듯, 오늘의 줄타기도 같은 결말로 이어질 수 있다.
미중이 직접 거래하는 시대에 전략적 모호성으로 버티는 공간은 사라지고 있다. 국내에 친중·종북 세력이 건재한 한, 어떤 전략도 정권이 바뀌면 뒤집힌다. 오는 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 세력이 다수를 확보하는 것이 모든 외교 전략보다 먼저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판은 결국 국민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박대서 칼럼니스트
참고자료
· CNBC (2026.05.14) "Trump-Xi Beijing summit — trade, Taiwan, AI, Iran, rare earths, tariffs"
· CNBC (2026.05.13) "Jensen Huang joins Trump's China trip after the U.S. president called the Nvidia CEO"
· Bloomberg (2026.05.14) "What is the Thucydides Trap, why did Xi raise it with Trump at Beijing summit?"
· The Hill (2026.05.14) "Xi Jinping raises Thucydides Trap with Donald Trump: What is it?"
· The Diplomat (2026.05.15) "Trump-Xi Summit Leaves South Korea Navigating Familiar Pressures"
· Al Jazeera (2026.05.13) "Trump and Xi meet in Beijing: Key issues shaping the China summit"
· 중국 외교부 공식 발표 (2026.05.14) "President Xi Jinping holds talks with U.S. President Donald J. Trump"
· 연합뉴스 (2026.05.14) 미중 정상회담 135분 결과 종합
· 머니투데이 (2026.05.13) "베선트 미 재무, 서울서 허리펑과 사전 회담"
· 트럼프 2기 행정부 국가방위전략(NDS 2026), 국가안보전략(NSS 2025)
· Jean Cummings (2026.05.13) "트럼프의 '중국 개방' 요구, 공산당 체제를 겨냥한 무서운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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