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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시 복합 용도 조닝(Zoning), '규제'가 '혁신'을 만든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시는 한때 미국의 ‘철강 수도‘였다. ‘앤드루 카네기‘가 일으킨 제철소들이 세 개의 강이 만나는 지점 곳곳에 들어섰고, 한때 미국에서 생산되는 철강의 상당량이 이 도시 하나에서 나왔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시에 위치한 베이커리 스퀘어 전경/ 사진 홍승태 기자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시는 한때 미국의 ‘철강 수도‘였다. ‘앤드루 카네기‘가 일으킨 제철소들이 세 개의 강이 만나는 지점 곳곳에 들어섰고, 한때 미국에서 생산되는 철강의 상당량이 이 도시 하나에서 나왔다. 그러나 1970~80년대 철강산업이 무너지면서 피츠버그는 공장 문이 잇따라 닫히고 인구가 빠져나가는 ‘러스트벨트‘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피츠버그는 최근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을 앞세운 두 번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 변화를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이스트리버티(East Liberty) 지구의 ‘베이커리 스퀘어(Bakery Square)‘다.

100년된 ‘나비스코’ 공장을 리모델링해 개발한 베이커리 스퀘어 전경/ 사진 홍승태 기자

이곳은 겉으로 보기엔 첨단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모여 있는 여느 혁신지구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붉은 벽돌 건물과 하늘로 솟은 굴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918년 지어져 80년 가까이 가동되다 1998년 문을 닫은 ‘나비스코(Nabisco)‘ 대형 제과공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공장을 허무는 대신 되살리기로 한 개발사 월넛 캐피털(Walnut Capital)의 결정, 그리고 공장 용도로만 묶여 있던 100년 묵은 용도지역제(Zoning) 조례를 깬 파격적인 도시계획 실험이 오늘날의 베이커리 스퀘어를 만들었다.

본보는 최근 피츠버그시 주택청(Housing Authority of the City of Pittsburgh)에서 15년 넘게 도시개발과 공공주거 인프라 기획, 커뮤니티 재생을 총괄해 온 김정욱 최고개발책임자(CDO)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몰락에서 부활로…다시 살려낸 나비스코 공장

이스트리버티는 100년 전만 해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세 번째로 번화했던 상업 중심지였다.

그러나 1950~60년대 무분별하게 밀어붙인 도시재개발이 발목을 잡았다. 보행자 중심으로 촘촘히 이어져 있던 골목길들이 자동차 도로와 일방통행로로 쪼개지면서 동네 상권 자체가 무너져 내렸다. 나비스코 공장마저 1998년 가동을 멈추면서 이스트리버티는 오랜 기간 방치된 산업 유휴지로 전락했다.

베이커리스퀘어 개발사 ‘월넛 캐피털’ 본사 전경/ 사진 홍승태 기자

월넛 캐피털은 이 부지를 완전히 철거하는 대신 6층 규모의 붉은 벽돌 본관 건물과 굴뚝 등 랜드마크 요소를 살리는 ‘적응형 재사용(Adaptive Reuse)‘ 방식을 택했다. 미국 국립사적지(NRHP) 등록을 추진해 역사보존 세액공제(Historic Tax Credits) 혜택까지 확보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막대한 초기 리모델링 비용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CDO는 베이커리 스퀘어에 대해 “피츠버그가 과거의 번영을 되찾은 상징적인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100년 조례를 깨다…특별계획구역(SP-D)과 주민의 자리

가장 큰 걸림돌은 규제였다. 원래 공장만 지을 수 있던 땅에 업무·주거·상업 기능이 뒤섞인 복합단지를 들이려면 100년 된 엄격한 용도지역 조례부터 손봐야 했다.

김정욱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시 주택청 최고개발책임자(CDO)가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홍승태 기자

김 CDO는 “그래서 특별계획구역(Special Planning District·SP-D)이라는 유연한 방식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 개발사가 피츠버그시와 머리를 맞대고 마스터플랜을 짜서 가져오면, 수차례 수정을 거쳐 완성된 최종안을 시가 받아들여 공식 계획으로 인정해 주는 구조였다“며 “2010년 구글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제도적 유연성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공장 부지에 이런 파격적 혜택을 몰아주면 특혜 시비가 불거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피츠버그는 동네별로 주민 자치 의식과 이해관계가 유독 강한 도시다. 김 CDO는 부지 개발에 대해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지름길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초기 단계부터 시의회는 물론 동네 이익을 대변하는 커뮤니티개발조직(CDC)을 기획 테이블에 직접 앉혔다“며 “처음부터 주민들을 계획의 주체로 끌어들여 치열하게 부딪치고 조율했기에 결국 주민 지지를 얻어 시의회 승인까지 통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베이커리스퀘어 내부에 위치한 구글 사무실/ 사진 홍승태 기자

◆구글 입주 이후 되살아난 활기

입지도 결정적이었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산실인 카네기멜론대학교(CMU)와 피츠버그대학교(Pitt)가 불과 1~2마일(약 1.6~3.2㎞) 거리에 있다. 카네기가 철로 세운 도시가 이제는 카네기멜론이 키워낸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으로 다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월넛 캐피털이 2010년 구글 피츠버그 오피스를 앵커테넌트로 유치하는 데 성공하면서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 구글의 입주는 단지의 신뢰도를 단숨에 끌어올렸고, 이후 오토데스크(Autodesk) 등 글로벌 테크 기업이 잇따라 둥지를 틀었다. 1단계 개발에만 1억3000만달러 넘게 투입됐는데, 신시장 세액공제와 펜실베이니아주 보조금 등 공공 재원을 정교하게 엮어 조달한 결과였다.

실제로 현장을 찾아가 보니, 오피스 공간은 1층부터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이 건물 관계자는 “입주 관계자 외 민간인은 출입이 불가능하다“며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야 닿는 내부에는 약 12~13개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고 말했다.

‘베이커리 리빙’ 내부 전경 /사진 홍승태 기자

업무 공간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고급 주거용 아파트 ‘베이커리 리빙(Bakery Living)‘과 스프링힐 스위트 호텔이 들어섰고,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 같은 대형 리테일도 입점했다. 실제로 둘러본 베이커리 리빙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탁구대를 갖춘 라운지와 헬스장, 입주민 전용 무료 카페, 촘촘한 보안 시설까지 갖춰 일하고 살고 즐기는 기능을 한 부지 안에 담아낸 ‘라이브-워크-플레이(Live-Work-Play·직주락)‘ 설계를 체감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어두운 그늘도 있다. 구글이 들어오고 카네기멜론대 출신 인재들이 동네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세련된 상점과 값비싼 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섰다.

김 CDO는 “동네가 낙후됐던 시절 자리 잡았던 저소득층 주민들이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유입되고, 이로 인해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기존의 원주민이나 영세 상인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 위험이 커졌다“고 짚었다.

이어 “그래서 저희 주택청은 시가 보유한 유휴 부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계속 짓고 있다“며 “이 동네를 오랫동안 지켜온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지 않도록 안전망을 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CDO는 “피츠버그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지역 풀뿌리 커뮤니티 조직의 법적 위상을 한층 강화했다“며 “이제 개발사가 무작정 시청에 도면을 들고 가 허가를 받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시 차원에서 개발사가 반드시 해당 지역 커뮤니티 조직과 공식 주민 설명회를 열고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제도화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최종 결정은 시가 내리지만 주민들의 찬반 의견이 인허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개발사가 먼저 주민을 찾아가 설득해야만 사업이 굴러가는 구조, 이것이 바로 피츠버그가 갈등을 줄이고 성공을 이끈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커리 스퀘어는 낡은 조례를 깨는 제도적 상상력과, 그 과정 끝까지 주민을 참여시킨 뚝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철강으로 한 시대를 세웠던 도시가 이제 낡은 공장 하나를 되살리는 방식으로 다음 시대를 쓰고 있다. 피츠버그가 이스트리버티에서 증명한 것은 도시 재생은 건물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제도와 사람을 함께 설계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김민환

·홍승태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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