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울산 야드(조선소) 전경. 사진=HD현대
[THE Biz(더비즈)=최찬우 기자] 글로벌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의 승부처가 '전력' 확보전으로 치닫으면서 국내 조선업계가 뜻밖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인프라 부족으로 전력망 확충에 난항을 겪는 북미 빅테크들에게 조선소의 엔진 기술이 즉시 가동 가능한 에너지 솔루션으로 재평가되기 때문이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와 삼성중공업은 최근 부유식 데이터센터(FDC)와 발전 설비 시장 진입을 단순 신사업이 아닌 주력 수익 모델로 격상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 내 전력 변압기 공급 부족(Shortage)이 심화되면서 주문 후 인도까지 3~4년이 걸리는 육상 전력망 대신 조선소의 '중속 엔진' 발전 설비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실제 HD현대는 최근 미국 에너지 기업과 역대 최대 규모인 6271억원의 발전 설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육상 전력망 확충을 기다릴 수 없는 빅테크들의 '온사이트(On-site) 자가발전' 수요를 공략한 결과로 풀이된다. 조선소의 엔진이 선박용을 넘어 북미 전력 공급망의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핵심 장치로 몸값이 치솟는 셈이다.
조선업계의 변신은 수익성 지표마저 바꾸고 있다. 과거 저가 수주 경쟁에 매몰됐던 선박 건조와 달리, 데이터센터용 발전 설비는 맞춤형 정밀 설계가 요구되는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분류돼 일반 상선 대비 높은 마진율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 등 자체 전력망 구축에 사활을 건 글로벌 빅테크기업들이 하드웨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국내 조선사들과의 장기 파트너십을 직접 타진하면서 조선소는 '에너지 인프라 공급자'로서 협상 주도권을 쥐게 됐다는 분석이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사진=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 역시 50MW급 FDC 개념설계 인증(AiP)을 기반으로 글로벌 빅테크들과 실무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FDC는 차가운 해수를 냉각수로 직접 활용해 운영 효율을 높일 뿐 아니라 부지 확보와 주민 민원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육상 데이터센터의 한계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
최근 출범한 한미 조선 협력 파트너십(KUSPI)은 이러한 흐름에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양국 정부의 기술 교류 합의로 북미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시장에 국내 조선사의 엔진과 FDC 기술이 핵심 공급망으로 참여할 길이 열렸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시대의 병목 현상은 결국 전력 확보에서 발생할 것"이라며 "조선소가 보유한 해양 플랜트와 엔진 기술은 이제 선박을 넘어 해상 디지털 영토를 점유하는 인프라 솔루션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상용화를 위한 해상 인허가 규정 마련과 거친 해양 환경에서의 장기 신뢰성 검증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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