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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 ‘페미니스트 아이콘’ 글로리아 스타이넘 92세 타계

미국 여성운동의 아이콘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2세.

미 ‘페미니스트 아이콘’ 글로리아 스타이넘 92세 타계

글로리아 스타이넘. 연합뉴스

미국 여성운동의 아이콘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2세.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스타이넘 재단은 이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가 뉴욕시 자택에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기자로 출발해 작가 겸 잡지 편집인이었던 스타이넘은 37세인 1972년 초에 미즈(Ms.) 잡지를 공동창간했다. 집 꾸미기 및 미용에 한정되었던 여성 잡지였는데 사회적 경제적 및 성적인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주창하는 여성 대상 잡지를 낸 것이다.

1970년대에 스타이넘은 여성의 ‘생식 자기결정권’을 여권의 핵심으로 주창하는 연설과 글쓰기에 몰두했다. 22세 때인 1954년 임신중절을 했던 그는 여성의 낙태를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1973년 대법원 판결에 환호했다. 이 미국 여성의 권리는 2022년 다시 대법원에 의해 주의회 결정 사항으로 격하되었고 20여 주가 낙태를 불법으로 처벌한다.

스타이넘은 남녀간 차별 없는 임금과 보수를 주장한 데 이어 동성간 결혼 합법화를 촉구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다.

1934년 3월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출생했으며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가정이었으며 12세가 돼서야 정규 학교에 들어갔다. 훗날 예쁜 얼굴과 날씬한 몸매로 눈길을 끌었지만 대학 때까지 얼굴이나 몸매에 자신감이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1950년대 말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 장학생으로 인도에서 2년을 보냈으며 마을 여성들의 정부정책 반대 비폭력 시위에 눈을 뜨고 관여했다.

1960년 대 뉴욕시로 와 프리랜서 작가 길을 걷기 시작했다. 뉴욕 메가진의 컬럼니스트로 자리 잡은 뒤 1972년에 미즈 잡지를 창간했다.

페미니스트의 시조인 셈이지만 유명한 여러 남성들과 상당 기간에 걸쳐 교류를 했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은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거부했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민간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 메달’를 받았다.

고인의 재단은 이날 “그녀는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평등을 위해 끊임없이 애썼다”고 말했다.

스타이넘은 2002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2015년에는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를 걸어서 넘는 ‘위민크로스DMZ’ 행사의 명예 위원장을 맡아 남북 군사분계선을 밟았다.

AP통신은 스타이넘이 삶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보내며 평생 집회와 행진에 앞장섰다고 전했다.

그는 2015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한 공간에 있지 않다면 진정한 공감을 이룰 수 없다”며 “우리는 오감을 통해 직접 현장에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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