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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칼럼] 피렌체 방문기

나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한 달 조금 넘게 머무는 동안 한 곳에서만 지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두어 시간이면 얼마 전 개막한 2026 베니스 비엔날레의 현장에 갈 수 있지만 그것도 삼가고 가족들과 같이 밥해 먹고 가까운 교외에서의 짧은 피크닉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했다.

[문화칼럼] 피렌체 방문기

김형국 칼럼니스트

나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한 달 조금 넘게 머무는 동안 한 곳에서만 지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두어 시간이면 얼마 전 개막한 2026 베니스 비엔날레의 현장에 갈 수 있지만 그것도 삼가고 가족들과 같이 밥해 먹고 가까운 교외에서의 짧은 피크닉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했다. 딱 한번, 며칠 간 피렌체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그랬다. 여기로 간 것은 2가지 목적이 있었다. 우선은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고 그 다음은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그 현장을 다니며 아직도 살아있는 그들의 숨결을 느껴 보고 싶었다.

피렌체라는 도시에는 르네상스, 메디치 그리고 많은 천재들의 이름이 담겨있다. 메디치 가문에서 소장한 방대한 작품, 또한 대가 끊기게 되자 모든 것을 기증하고 가문에서 사용하던 사무실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오늘날 전 세계에서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로 인하여 나 같은 문외한에게 메디치라는 말은 대체로 미술과 관련된 키워드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수 세기에 한명 나올까 말까한 위대한 천재들이 이 작은 도시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메디치 가문의 투자 전략(?)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들은 당시에는 크게 존경받지 못하는 금융업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겸손함을 바탕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얻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부를 자신들의 금고에만 쌓아 두지 않고 끊임없이 나누어 중세 암흑기 천년이 지난 후 메세나(Mecenat)를 부활시킨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자선을 베푼 것이 아니라 작품을 의뢰하고 그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특히 가능성 있는 젊은 원석들을 직접 발굴하고 교육하는 인재 육성 시스템까지 가동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빛나는 성과가 보장된 사람에게만 투자를 한 것이 아니라 미래가 불확실한 또는 낙오될 위기에 처한 예술가에 대한 관심과 지원 역시 그에 못 지 않았다. 그 대표적 사람이 피렌체 대성당 돔을 만든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다. 당시 브루넬레스키는 ‘산 조반니 세례당’ 청동문 공모전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뒤 로마에서 긴 실패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그를 당시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 발탁하여 산 로렌초 성당 재건축을 맡긴데 이어 수 십 년간 지붕이 뚫린 채 있던 대성당 돔을 올리도록 했다. 브루넬레스키의 아이디어는 엄청난 반대를 받을 만큼 당시로서는 검증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메디치 가문은 큰 위험부담을 안고 이를 과감히 수용하고 추진했다. 그 결과 오늘날 피렌체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처럼 널리 알려진 이야기 외에 불확실한 미래를 가진 젊은이에 대한 투자, 어려움에 처한 재목에 대한 손길을 아끼지 않은 메디치 가문의 과감함과 인간 존중이야말로 천재들이 유달리, 그 때 이 도시에만 많이 탄생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2010년 핀란드 알토대학교 학생들이 시작한 ‘세계 실패의 날’ 등 해외의 실패 공유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우리나라에서도 정부 주도로 2018년 ‘실패박람회’를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 행사의 가시적 성과를 넘어 실패에서 배우고, 실패에 직면한 청춘들에게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것에서 나는 늘 마음으로 응원해 왔다. 칼날 같은 승부의 세계를 살아가는 현실에서 실패자가 다시 큰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다. 우리의 실패박람회는 약 육백여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에 의해 이미 시작되었다고 나는 생각 한다.

그리고 메디치 가문이 후원했던 인재들과 장르가 광범위했다는 것도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최초의 미술사 책인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쓴 ‘조르조 바사리’ 메디치 가문의 지식인 모임인 ‘카메라타’의 핵심 멤버이자 악보가 온전히 남아있는 최초의 오페라 ‘에우리디체’를 작곡한 ‘줄리오 카치니’ 그리고 건반을 누르는 힘에 따라 소리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피아노포르테’ 즉 오늘날의 피아노를 만든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그리고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오늘날 프렌치 다이닝의 시작이 메디치 가문에서 프랑스 왕실로 시집간 한 여인으로부터 비롯되었을 만큼 이 가문의 영향력은 넓고도 깊었다.

삼박사일의 짧은 피렌체 방문 기간 동안 비가 자주 내렸다. 우산을 쓴 채 그들이 남긴 빛나는 유산이 가득한 도시의 이 골목 저 골목을 쏘다녔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그리고 바로크 시대 작품의 세례를 받음과 동시에 ‘스트로치 궁전’에서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핫 한 ‘마크 로스코’의 대규모 개인전도 감상할 수 있었다. 이처럼 지금도 폭넓은 예술의 향연이 펼쳐지는 도시를 거닐며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았다. 르네상스는 사람을 키우는 것으로 열렸고 그것으로 꽃을 피웠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과실만 취해서는 다음해 농사는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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