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찬 칼럼] 교권과 학생 인권의 균형, 이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기 이전에 질서를 배우는 공간이다. 아이들은 교과서 속 지식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타인의 말을 끝까지 듣는 태도, 약속을 지키는 습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법을 학교에서 배운다. 그런 점에서 교실은 단순한 학습장이 아니라 사회의 축소판이다. 한 사회가 어떤 규범을 지키고 어떤 기준을 존중하는지는 결국 학교라는 공간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교실에서는 성적이나 입시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흔들리고 있다. 교육의 권위와 공공의 기준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충남 계룡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피습 사건은 우리 사회에 깊은 충격을 남겼다. 그러나 더 무거운 의미는 사건 자체보다, 많은 교사가 이를 예상 밖의 비극이 아니라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었던 위험으로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그만큼 학교 현장은 오랜 시간, 작은 균열을 방치해 왔다. 수업을 방해해도 즉각적인 제지가 어렵고, 생활지도를 하면 민원과 신고가 먼저 돌아오며, 정당한 교육행위조차 아동학대 논란으로 번지는 현실 속에서 교실의 중심은 조금씩 흔들려 왔다. 이번 사건은 예외적 사고가 아니라 누적된 불안이 드러난 신호로 읽어야 한다. 문제는 단지 한 사건의 충격이 아니라, 그 사건이 오늘의 교실이 얼마나 불안정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교권은 교사를 위한 특권이 아니다. 학생을 억누르기 위한 권한도 아니다. 교권은 수업을 가능하게 하고 생활지도를 가능하게 하며, 다수 학생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공적 장치다. 교권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쪽은 오히려 학생들이다. 수업은 집중력을 잃고, 규칙은 힘을 잃으며, 성실하게 배우려는 아이들이 조용히 피해를 떠안는다. 공동체의 기준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유가 아니라 무질서가 자리 잡는다. 소란은 활력이 아니고, 방종은 인권이 아니다. 교실 안에서 지켜져야 할 기본선이 무너지면 피해는 늘 조용한 다수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교권 회복은 교사를 위한 요구가 아니라 학생 전체의 배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다.
생성형 AI 제작 삽화
물론 시대는 변했다. 과거처럼 교사의 권위만을 일방적으로 앞세우던 방식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학생 인권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하며, 부당한 체벌이나 모욕적 언행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인권과 질서는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다. 두 가치가 균형을 이룰 때 학교는 비로소 건강해진다. 문제는 우리가 그 균형을 잃었다는 데 있다. 권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말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과 규범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교사는 책임만 지고 권한은 잃었으며, 학교는 갈등을 해결하는 공간이 아니라 갈등을 회피하는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교육의 이름으로 누구도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는 명분은 중요하지만, 그 명분이 아무런 지도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으로 이어질 때 학교는 더 이상 교육의 공간일 수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추상적인 위로나 선언이 아니다. 작동하는 제도와 분명한 원칙이다. 무엇보다 정당한 생활지도는 명확히 보호되어야 한다. 교육활동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 지도에 대해서는 교사가 과도한 수사와 소송의 부담에 노출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 있는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악성 민원과 보복성 신고 역시 개별 교사와 학교에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교육청과 국가가 전면에 나서 대응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또한 수업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거나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즉시 분리 지도와 후속 교육이 가능하도록 학교의 실질적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 아울러 학부모와 학생 역시 학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권리와 함께 책임을 진다는 원칙이 분명해져야 한다. 교실의 평온과 수업의 지속성은 결코 사소한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공교육이 유지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토대다.
교실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과거의 권위를 복원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기준과 원칙을 보여줄 것이냐의 문제다. 존중은 결코 일방적일 수 없다. 학생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교사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고, 자유에는 질서가 뒤따른다. 이 당연한 원칙이 학교에서부터 바로 서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공동체 속 자유의 의미를 올바로 배울 수 있다.
교권 회복은 교사를 위한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무너진 교실을 다시 세우고, 흔들리는 공교육을 지키며, 우리 사회의 기본 질서를 회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이제 교사를 보호하는 문제를 교육정책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놓아야 한다. 국가가 책임 있게 기준을 세우고 제도를 작동시킬 때, 학교는 다시 학교다워지고 교실은 다시 배움의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민병찬 국립한밭대 교수 | 민주평통 대통령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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