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모텔 연쇄 살인 사건 재구성]
남성 2명 사망·6명 의식 잃고 쓰러져
챗GPT 대화기록...살인 고의 근거로
뒤늦은 신상공개에 '사적 제재' 등장
범행 동기, 사이코패스 vs 낮은 지능
9일 살인·특수상해 등 혐의 첫 공판
서울 강북구 수유동 모텔에서 남성 2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소영(20)이 2월 12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9일 강북구 수유동의 한 모텔에서 20대 남성 B씨에게 약물이 든 음료를 건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연합뉴스
2026년 2월 9일 오후 8시 30분쯤, 서울 강북구 수유동 번화가에 있는 한 모텔 10xx호에 남녀 한쌍이 입실했다. 그로부터 두 시간 정도 뒤, 여성이 황급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의 손에는 치킨집 메뉴 22개가 가득 들어 있는 검은 봉지 3개가 들려 있었다.
다음날 모텔 직원이 10xx호 문을 벌컥 열었다. 전날 들어간 손님들은 오후 5시가 넘도록 퇴실하겠다는 말이 없었다. 침대에는 20대로 보이는 남성 A씨가 혼자 누워 있었다. 아직 자는 건가 싶었지만, 뭔가 심상치 않았다. 119에 전화를 걸었다.
"숨을 안 쉬고 몸이 굳어 있어요. 코나 이런 데 분비물이 다 뱉어 올라와 있어요."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폐쇄회로(CC) TV를 통해 남성과 함께 입실한 여성을 곧바로 확인했다. 왠지 낯익은 얼굴. 몇 시간 전 특수상해 혐의로 자택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던 여성과 동일 인물이었다.
경찰 뒤쫓는 순간에도 계속된 범행
강북 모텔 연쇄살인 피의자인 김소영(오른쪽)이 지인과 함께 찍은 사진. 지인 제공
1월 29일 강북구 수유동의 또 다른 숙박업소에서 B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전날 오후 9시25분쯤 한 여성과 함께 입실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그 여성을 찾아야했다. 현장에서는 별다른 타살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고, 부검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블랙박스와 CCTV 등으로 동선을 추적했고, 8일 만인 2월 6일 마침내 여성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었다. 나이 20세. 이름은 김소영.
경찰은 사건 관리 전자 시스템인 킥스(KICS·형사사법포털)에서 '김소영'을 검색했다. 그리고 뜻밖의 사건을 발견했다. 20대 남성 C씨가 진정을 넣은 특수상해 사건. 피진정인 이름으로 '김소영'이 적혀 있었다.
사건 내용은 이랬다. 지난해 12월 14일 C씨는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한 베이커리 카페 주차장에서 연인 관계였던 김소영이 "운전하느라 고생했다"며 건넨 피로회복제를 아무 생각 없이 마셨다. 그러고는 20분 정도 시간이 흘러 카페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C씨는 '독성 뇌병증'으로 이틀간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다. 의학적 처치로 겨우 호전된 C씨는 김소영에게 음료의 정체를 따져 물었으나, 마땅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결국 사건 한 달 뒤인 1월 C씨는 진정을 제기했다. C씨는 체내에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이 검출됐다는 서류도 병원에서 받아 제출했다.
이 사건과 B씨 사건이 왠지 유사하다는 의심이 들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B씨 체내에 벤조디아제핀 성분이 검출됐는지' 문의했다. 아니다 다를까. 국과수는 9일 동일한 성분이 나왔다고 구두로 회신했다. 더 명확한 증거와 진술을 확보해야 했던 경찰은 다음날인 10일 오전 김소영 자택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A씨가 모텔이 홀로 누워 숨져 간 그 날이었다.
경찰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A씨를 발견한 지 몇 시간 후 강북구 소재 주거지 앞에서 김소영을 긴급체포했다. 자택 압수수색을 통해 현장에서 다량의 항정신성 약물, 범행에 쓰인 숙취해소제 빈 병,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그리고 경찰 수사로 건장한 남성 2명을 숨지게 하고 4명의 의식을 잃게 만든 '강북 연쇄 살인 사건'의 전모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살해 의도 없었다"... 챗GPT에 잡힌 덜미
게티이미지뱅크.
A씨와 B씨의 사인은 예상대로 '약물 중독'이었다. 김소영은 식칼 손잡이 아랫부분을 이용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알약을 가루로 빻아 음료에 섞어 넣었다. 그가 피해자들에게 건넨 음료 안에는 벤조디아제핀 계열 향정신성의약품 '루나팜정'과 '삼진디아제팜정' 등이 섞여 있었다.
이들 약물이 남성들 사망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한 건 분명했다. 그러나 정작 '살해할 목적으로 약물이 섞인 음료를 건넸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살인 혐의를 적용하라면 '고의성'을 입증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김소영에게는 '상해치사(죽일 의도 없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혐의로 살인에 비해 가벼운 형량이 내려질 수밖에 없었다.
김소영은 경찰에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숙박업소 내에서 의견 충돌이 발생하자 피해자들을 잠재우려 약을 탄 숙취해소제를 건네 마시게 했다"는 말뿐이었다.
"(자신이) 복용 중인 항우울제였기 때문에 죽을 줄은 몰랐다"고도 했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범행에 사용된 향정신성의약품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정상적으로 처방받은 약물이었다. 김소영은 긴급체포 후 A씨와 B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은 걸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스모킹 건'이 있었다. 압수수색 당시 확보한 휴대폰을 포렌식해서 찾아낸 '생성형 인공지능(AI) 대화기록'이었다. 첫 살인 3일 전 김소영은 '수면제 많이 먹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챗GPT에게 질문했다.
'술과 함께 복용 시 호흡 마비로 인한 사망 위험이 매우 높으므로 즉시 119 신고가 필요하다'
는 답변을 얻었다. 첫 살인 당일에도 김소영은 챗GPT에게 '수면제 많이 먹는다고 그 사람이 죽느냐'고 물어본 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답을 받았다.
경찰은 김소영이
연인이었던 C씨 범행 때보다 약물 투입량을 2배 이상 늘린 사실도 파악
했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김소영에게 살인·특수상해 혐의를 적용, 2월 18일 검찰에 송치했다. 약물이 '단순 수면 유도를 넘어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살인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미필적으로 예견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사건을 넘겨 받은 검찰은 이에 더해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더했다. 김소영이 자신을 절도죄로 신고한 남성을 형사 고소하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실제로는 앓고 있지 않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료를 받고 약물을 처방받았다고 봤다. 그렇게 3월 10일 김소영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 수사는 계속 됐다. 사건 송치 후 김소영과 접촉한 남성들을 전수 조사, 추가 피해 3건을 더 파악할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25일 서초구 방배동 식당에서 김소영과 함께 와인을 마신 뒤 의식을 잃고 쓰러진 남성이 있었다. 올 1월 초 종로구 모텔 객실에선 20대 남성이, 같은 달 24일에는 강북구 수유동의 노래주점에서 30대 남성이 기절했다. 당시 김소영은 119에 '술을 마신 뒤 일어나지 않는다'고 직접 신고했다.
이들 3명은 다행히 의식을 되찾았다. 시간이 오래 지나 약물이 검출되지 않은 1명을 제외하고, 2명의 모발에서는 역시나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이 검출됐다. 경찰은 3월 19일 특수상해·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김소영을 추가 송치했다.
신상공개 논란... 여전히 가득한 의문점들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은 지난달 9일 서울 강북구 모텔에서 20·30대 남성들에게 약물을 먹여 사망·상해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 김소영(20)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서울북부지검 제공
수사 과정에서는 신상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검찰 송치 전 신상공개를 검토한 경찰은 범죄 수법의 잔혹성 등의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비공개를 결정했다. 중대범죄신상공개법에 따르면 ①잔인한 범행 수단·중대한 피해 발생 ①범행에 대한 충분한 근거 ③알 권리 보장, 재범방지 등 공공의 이익 보장 등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유족은 반발했다. 서울북부지검에 '피의자의 신상정보 공개를 적극 검토해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누리꾼들은 '신상 털이'에 나섰다. 김소영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개 계정은 열흘 만에 팔로워가 1만1,000여 명으로 55배 증가했다. 전체 공개된 얼굴 사진이 모자이크 없이 온라인상에 퍼졌다. 지난달 9일, 북부지검은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친 뒤 홈페이지에 30일간 머그샷 사진, 이름, 나이를 게시했다. 경찰 송치 19일 만이다.
김소영은 지난 9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첫 재판을 받았다. 김소영 측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이 약물을 건넨 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피해자들을 잠들게 하려 했을 뿐, 특수상해 및 살해 고의가 없었고 사망 결과에 대한 예견 가능성도 없었다"고 했다. 초록색 수의를 입고, 흰색 마스크를 쓴 김소영은 재판 내내 허공을 보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검찰은 반면 "치사량이 넘는 향정신성의약품을 반복 투약해 피해자 2명을 숨지게 한 범죄"라고 했다.
재판이 시작된 현재도 김소영의 범행 동기는 흐릿하다. 초반엔 이상동기에 의한 계획 범죄로 보였다.
경찰이 진행한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PCL-R)에서 김소영은 40점 만점 중 25점으로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았다
. 25점 이상을 받으면 통상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검찰 역시 '죄책감과 공감능력의 결여, 자기중심적 태도, 불안정한 대인관계로 인한 정서조절의 어려움과 현저한 충동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공소장에 적었다.
그런데 김소영의 지능지수(IQ)가 평균 이하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연 계획적 살인이 가능하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 언론사 유튜브에서
대검 포렌식 전문가와 정신과 의사, 심리 전문가 등이 참여한 지능평가에서 김소영의 IQ가 70 이상 80 미만으로 나타났다
고 전했다. 통상 IQ는 100을 평균으로 두고 표준편차 15점을 적용해 85~115 구간을 정상 범위로 본다. 70 이하는 지적장애 등록이 가능하다.
이 교수는 "김소영은 표준편차를 벗어난 하위 10%에 해당한다"며 "지능이 현저히 떨어지면 계획적인 행동을 치밀하게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강북 모텔 연쇄살인 피의자 김모씨가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른 당일 인근 치킨집에 접수된 주문 내역. 22개 메뉴가 범행 현장으로 주문됐다. 치킨집 업주 제공
실제 김소영이 범행과 수사 과정에서 보인 비상식적 행보는 이 같은 의구심을 키웠다. 그는 살인 당일 A씨에게 음료를 마시게 한 뒤 모텔 객실에서 13만 원어치의 치킨집 메뉴 22개를 주문했고 결제를 A씨 카드로 했다. 김소영은 배달이 온 지 약 10분 만에 배달 음식과 함께 현장을 빠져나왔다.
A씨에게 "택시비를 줘서 고맙다" 등 장문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두 건의 살인 당시 김소영은 숙박업소 투숙을 먼저 제안했는데, 온라인에 공개된 옥중편지에선 '성추행이 무서워서 재우려 했다'고 주장했다. 압수수색 당시 김소영이 '범행에 쓰고 가져간 빈 병을 모아놓았다'고 진술해 경찰이 현장에서 증거물을 챙기기도 했다.
첫 재판에 앞서 A씨 유족 측은 총 94부의 탄원서를 제출하며 김소영의 사형 선고를 요구했다. 김소영과 그의 부모에게 각각 3,100만 원과 1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냈다. 다음 재판은 다음 달 7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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