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명보다 중요한 건 '확산'
AI 잘쓰는 나라가 경쟁 이길것
전세계 활용 사례와 현장 분석
구독료 바우처·AI 국무위원 등
韓 AI 네이티브 액션플랜 제시
1856년 헨리 베서머가 고품질 철강을 대량 생산하는 제강법을 발명했을 때 세계는 새로운 금속의 등장에 환호했다. 하지만 역사를 실제로 바꾼 것은 발명 그 자체가 아니었다. 철강을 가져다 대륙횡단철도를 깔고 산업의 혈맥을 만든 앤드루 카네기의 확산이 있었기에 산업혁명은 비로소 완성됐다. 토머스 에디슨의 전구 역시 전력망이라는 환경이 구축되지 않았다면 실험실의 신기한 장식품에 머물렀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기술의 '발명'이 아닌 '확산'을 통해 진화해왔다. 올해 창간 60주년을 맞은 매일경제가 펴낸 'AI 네이티브 코리아'는 바로 이 확산의 관점에서 인공지능(AI) 시대를 조명한다.
이 책은 지난 24일 열린 'AI 네이티브 코리아' 국민보고대회 결과물을 저서로 엮은 것이다. 기자 4명으로 구성된 저자들은 수개월간 AI라는 거대한 주제와 씨름하며 한국 사회가 실제로 선택해야 할 과제와 국가 차원의 액션플랜을 제시했다.
저자들은 책 전반에 걸쳐 강력한 경고를 던진다. AI를 소프트웨어 전문가나 석학들만 다루는 '특수 산업' 혹은 '복잡한 알고리즘'의 세계에 가두는 순간 한국의 AI 경쟁력은 시작도 하기 전에 길을 잃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AI를 전문가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순간 AI 활용의 격차는 시작된다"며 "잘 쓰느냐 못 쓰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AI를 안 쓰는 것은 이미 선택지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AI 네이티브 코리아
매일경제 국민보고대회팀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2만원
시중에 쏟아지는 AI 관련 서적과 이 책의 가장 큰 차별점은 '현장성'과 '구체성'에 있다. 저자들은 공학적 이론에 매몰되는 대신, AI가 이미 우리 먹거리와 산업 현장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전북 정읍 양돈농가에서 3D 카메라로 돼지 체형을 관리해 매출을 10% 올린 사례, 참치 살코기 속 미세한 가시를 0.1㎜ 오차로 잡아내는 AI 엑스레이 공정 등은 AI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도구'임을 보여준다.
책의 구조 또한 독특하다. AI 기술을 나열하는 대신, 기술이 인간의 생애주기 전반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살핀다. 난임 부부의 배아를 선별하는 '라이프 위스퍼러'부터 아기의 잠자리를 지키는 '큐보 AI',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공부를 돕는 '칸미고', 그리고 사후에도 데이터로 남는 '리메모리' 서비스까지 AI가 이제 인간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됐음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AI의 장밋빛 미래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2부에서는 일자리, 환경, 범죄, 윤리라는 AI의 이면을 냉정하게 살펴본다. 이어지는 3부와 4부에서는 미국·중국·영국·프랑스·싱가포르 등 주요국의 패권 경쟁 전략을 비교하고, 글로벌 가치사슬 속 한국의 SWOT(강점·약점·기회·위협)를 분석한다.
한국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와 초연결 인프라스트럭처에서 세계적 강점을 지녔지만, 연산 자원과 모험 자본 부족이라는 구조적 약점도 갖고 있다.
5부 '액션플랜'은 구체적 시나리오를 통해 국가 혁신의 실천적 경로를 제시한다. 대표적 과제인 'AI 네이티브 카드'는 모든 시민에게 월 3만원 상당의 AI 이용권을 부여하되 국가가 압도적인 가입자 규모를 무기로 빅테크와 협상해 실제 지출 비용을 3분의 1 수준으로 낮추는 '규모의 경제' 전략을 핵심으로 한다. 또한 기술이 사람을 격리하는 장벽이 되지 않도록 재래시장 상인이나 독거노인 곁에서 AI 설치와 관리를 밀착 지원하는 전문 인력인 '인공지능사' 제도를 제안하며 기술과 인간을 잇는 '휴먼 브리지'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 전략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인 정책 시뮬레이션을 제공하는 'AI 국무위원'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배석시키자는 제안은 이 책만이 가진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시각 중 하나다.
저자들은 "AI 네이티브 국가는 기술 강국이 아니라 사용자 강국에서 시작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은 공학적 수식보다 인간의 고통과 갈등, 그리고 변화에 대한 갈망을 기록한 현장의 고백서다.
독자가 이 책을 덮을 즈음에는 'AI 전문가'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AI라는 도구를 쥐고 자기 삶을 다시 설계하는 주체적인 '사용자'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다음 도약은 거대한 모델 개발이 아니라 국민의 질문과 상상력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이 책의 마지막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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