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약에 황제주 올랐지만
논란속 주가 반토막넘게 나
당국 선제조치 아쉽단 지적
투자자도 묻지마 투자 말고
냉정한 리스크 관리 나서야
강두순 증권부장
증시가 오천피를 돌파하며 달아오르던 지난 1월 말. 주식 커뮤니티에서는 일명 '삼천당 할머니'가 등장한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삼천당제약과 레버리지 ETF 종목명들이 적힌 메모지를 손에 쥔 고령의 여성 투자자가 증권사 객장을 찾았다는 사연과 함께 올라온 사진이었다. 처음에는 "객장에 노인이 몰리는 걸 보니 역시 고점이 맞나 보다"라는 비아냥 섞인 댓글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상황은 이내 반전됐다. 삼천당제약이 개발 중인 먹는 비만 치료제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가가 더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할머니가 객장을 처음 찾았을 당시 48만원대였던 주가는 순식간에 100만원을 돌파했다. 토론방에는 "알고 보니 할머니가 숨은 고수였다"는 감탄이 쏟아졌고, 주가는 이후에도 상승세를 이어가 123만3000원을 찍으며 코스닥 '황제주'로 등극했다.
하지만 환희는 찰나였다. 최고가 경신 이튿날 주가가 하한가로 곤두박질치더니 연일 낙폭을 키워갔다. 라이선스 계약 발표 내용이 시장 기대치에 못 미치자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진 탓이다. 여기에 회사 측의 계약 규모 부풀리기 의혹, 주가 조작 의혹을 제기한 블로거와 회사 간 법적 공방까지 불거지며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회사 측이 뒤늦게 기자회견을 열고 수습에 나섰지만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사이 주가는 고점 대비 반 토막 넘게 빠진 상태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회사에 대한 원망과 함께 거래소와 당국의 시장 감시 체계가 허술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가가 단기간에 비정상적으로 폭등하고 각종 의혹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시장 과열을 잠재울 선제적 조치가 미흡했다는 것이다. 거래소가 뒤늦게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예고하고, 당국도 바이오 기업 공시 가이드라인 개정에 착수했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혼란이 터진 뒤에야 움직이는 사후약방문식 대처가 아쉬울 따름이다.
사실 우리 증시에서는 이와 비슷한 문제가 반복돼 왔다. 특정 세력이 수년간 차액결제거래(CFD)를 이용해 주가를 관리했음에도 2023년 4월 무더기 하한가 폭락 사태가 터진 뒤에야 수사가 시작된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삼천리 등 8개 종목의 주가가 3년 가까이 비정상적으로 우상향하는 동안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은 침묵했다. 별다른 호재 없이 1년 사이 주가가 10배 폭등하며 조작 의심이 제기됐음에도 방치되다 사태가 커진 영풍제지 사건 역시, "시장이 다 아는 위험을 당국만 몰랐느냐"는 비판과 함께 감시 체계의 허점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금양이 2차전지 신사업을 앞세워 단기간에 주가가 40배 넘게 치솟다 급락한 뒤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을 때도, 팬데믹 시기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 기대감에 급등했던 신풍제약이 임상 결과 발표 전 고점에서 자사주를 처분해 논란을 빚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두가 우리 자본시장이 투명성과 감시 효율성 면에서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들이었다.
미국·이란 전쟁이 임시 휴전으로 숨 고르기에 들어서면서 주식시장에도 봄기운이 감돌고 있다. 고유가·고환율에 잔뜩 움츠렸던 증시는 반도체주의 호실적을 발판 삼아 다시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다만 중동 정세의 긴장감이 여전한 만큼 시장 불안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당국의 시스템 개선 노력과는 별개로, 투자자 스스로도 분위기에 휩쓸린 묻지마 투자를 경계해야 한다. 결국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냉정한 리스크 관리와 자신만의 투자 원칙이다. 화려한 수익률을 좇기보다 긴 호흡으로 잃지 않는 투자를 최우선에 두는 기본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강두순 증권부장]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