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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로드픽] '해운 공동행위', 담합인가 생존 위한 '안정화 카르텔'인가......

반도체 등 핵심 첨단 산업에 대한 획기적인 규제 완화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국가 기간망인 해운 물류망 보호를 위한 정책 당국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로드픽] '해운 공동행위', 담합인가 생존 위한 '안정화 카르텔'인가......

960억 과징금 사태로 시작된 '공동행위' 논란… "단순 담합 아닌 거시적 생존 전략"

업계 "수출 생명선 잇는 공동운항, 타 산업 피해 전무… 글로벌 시각으로 접근해야"

해수부·정치권 "합리적 제도 정비 공감대"… 반도체급 규제 완화로 국가 전략산업 사수 목소리

해운업계 관계자들이 포럼에 참가해 기념촬영하는 모습 [사진=뉴스로드]

해운업계의 오랜 뇌관이었던 '정기선 운임 공동행위'를 둘러싼 해운법과 공정거래법 간의 충돌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막대한 고정비와 높은 운임 변동성을 지닌 해운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선사 간의 공동행위는 단순히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담합'이 아니라 파괴적 경쟁을 막고 글로벌 물류 공급망을 보호하기 위한 '안정화 카르텔'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17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는 한국해운협회(회장 박정석)와 바다와미래연구포럼(공동대표 조승환 국민의힘 의원·주철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바다와 미래 연구 오찬포럼'이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조승환·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박정석 한국해운협회장(고려해운 회장), 금창원 장금상선 대표, 안중호 팬오션 대표 등 정·재계 및 해운업계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꽉 막힌 규제 현실에 대한 타개책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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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960억원 규모 과징금 사태...고법 승소 뒤 대법원의 파기환송

갈등의 시작은 지난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2003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외 23개 선사가 한국-동남아시아 수출입 항로 운임을 120차례 합의하면서 해운법에 따른 신고를 누락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약 96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선사들은 즉각 불복 소송을 냈다. 2024년 2월, 2심(서울고등법원)은 "해운법 제29조에 따라 해운사의 운임 공동행위는 자유 경쟁의 예외로 인정되며, 공정위의 제재 권한은 없다"고 판단해 공정위 처분을 전면 취소하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해운법의 우선 적용을 명확히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대법원은 이를 파기환송하며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은 공동행위 전체를 위법하다고 본 것은 아니었으나, "해운법이 공동행위를 무제한 허용하는 것이 아니며, 신고 요건 등 절차를 충족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적용 가능성을 다시 따져보라"는 취지로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해운업계는 국회 농해수위를 통해 해운법에 따른 선사 공동행위에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나,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며 입법적 해결도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강일 변호사 [사진=뉴스로드]

▲'공핵 이론(Empty Core Theory)'… "자유 경쟁에 맡기면 파괴적 출혈 경쟁 초래"

이날 주제 발표에 나선 강일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경제학적 개념인 '공핵 이론(Empty Core Theory)'을 바탕으로 공정위의 기계적 법 집행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해운산업의 구조적 특수성을 상세히 설파했다.

강 변호사는 "일반적인 제조업은 생산량을 한 단위씩 조절할 수 있지만, 해운 정기선 시장은 거대한 컨테이너선 한 척을 투입해야 하므로 생산 단위를 쪼갤 수 없는 '불가분성'을 띤다"며 "초기 투자에 막대한 매몰 비용(Sunken Cost)이 들어가고 수요 변동성이 극심한 시장에서 자유 경쟁에만 맡겨두면,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균형점(核·Core)이 비어버리는 공핵 현상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수요가 급감해 잉여 선복이 발생할 경우, 고정비 압박에 시달리는 선사들은 빈 배로 운항하느니 한계비용 이하로 운임을 낮추는 파괴적인 출혈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며, "이는 결국 선사의 도산과 공급망 붕괴로 이어져 사회적 총 후생을 감소시킨다"고 지적했다.

강 변호사는 항공운수업이나 파이프라인 사업 등을 예로 들며 "항공업 역시 국가가 노선을 인허가로 제한하고 가격을 통제하는 사실상의 과점 형태를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기선 시장의 공동행위는 독점화를 통해 폭리를 취하려는 단순 담합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붕괴를 막고 생존하기 위한 '안정화된 카르텔(Stabilization Cartel)'"이라며 "이러한 협조 체계는 오히려 극심한 운임 변동성 리스크를 줄여주어 화주(수출입 기업)들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고 상호 윈윈(Win-Win)할 수 있는 합리적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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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은 국가 전략산업…국내 시각으로 규제하면 글로벌 경쟁력 잃을 수도"

이날 포럼에 참석한 업계 대표들은 글로벌 해운 시장의 급격한 지각변동을 언급하며, 공정위의 잣대가 우물 안 개구리 식의 국내적 시각에 매몰되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정석 회장은 "세계 1위 선사인 스위스 MSC가 선복량을 우리 정기선사 전체를 뛰어넘는 규모로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고, 독일 하팍로이드 등 유럽 거대 선사들의 과점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라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박 회장은 "이웃 나라 중국은 코스코(COSCO)와 차이나쉬핑을 통합하고 홍콩 OOCL을 계열사로 편입시켰으며, 일본 역시 주요 3사(NYK, MOL, K-Line)의 컨테이너 부문을 합병해 ONE(Ocean Network Express)을 출범시키는 등 해운을 철저히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이어 "상대적으로 체급이 작은 한국의 12개 중견 선사들이 80여 개 일본 항만 및 한·중·일 등 아시아 역내에서 촘촘한 공동운항을 통해 부산항 환적화물(TS)의 50%를 방어하고 있다"면서 "이를 좁은 국내법 잣대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것은 산업의 경쟁력 유지·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우리 해운을 사지로 내모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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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계

"해운 공동행위, 타 산업 피해 준 적 있나… 물류망 안정화가 중요"

공동행위가 화주 등 타 산업에 피해를 준다는 공정위의 인식에 대한 업계 현장의 적극적인 반박도 이어졌다.

금창원 장금상선 대표는 "해운 공동행위는 이미 1974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정기선 동맹 규약'이라는 국제 조약으로 인정해 덴마크,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 주요국이 받아들인 검증된 시스템"이라며 "실제 공동행위로 인해 타 산업이 피해를 입은 사례는 없으며, 오히려 장기적으로 해상 운임은 하향 안정화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금 대표는 해운이 국내 모든 산업에 미치는 전방위적 파급력을 강조했다. 그는 "대형 글로벌 선사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부산항을 패싱(Passing)하게 되면 화물 운송 기일이 2주 이상 지연된다"며 "이는 고스란히 수출 기업의 재고 비용 및 금융 비용 증가로 직결되어 국가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안정적인 물류망을 지키기 위한 선사들의 협력은 필수불가결하다"고 역설했다.

▲해수부 "업계와 입장 동일… 정책적 결단 필요"

이날 정부 측 대표로 참석한 김한율 해양수산부 항만물류과장은 해운업계의 입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김 과장은 "해수부 역시 공정위와의 협의 과정에서 강 변호사의 '공핵 이론'과 동일한 논리로 해운 공동행위의 필수성을 지속적으로 설명해 왔다"며 "공정위도 기본적으로 공동행위 자체는 인정하고 있으나 공정거래법 적용 배제 범위에 대해 이견이 있는 만큼, 앞으로 업계와 함께 합리적 접점을 찾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해수부 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조승환 의원 역시 "선사 간 공동행위는 글로벌 해운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돼 온 구조임에도 정부 부처 간의 이견과 대응 부족으로 업계에 혼란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며 "공정한 시장 질서와 해운산업의 현실을 모두 반영할 수 있는 합리적인 입법과 제도 정비에 국회 차원의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해운 선사들의 공동행위를 어떻게 법적으로 조화롭게 품어낼 것인가는 이제 단순한 부처 간 관할권 다툼을 넘어 대한민국의 수출 생명선을 지키는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반도체 등 핵심 첨단 산업에 대한 획기적인 규제 완화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국가 기간망인 해운 물류망 보호를 위한 정책 당국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산항 신항 7부두 [사진=B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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