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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동십자각] 울타리를 허물기 전에 해야 할 질문

제도를 없애는 것과 제도가 하던 기능을 없애는 것은 다르다. 나쁜 제도조차 때로는 일을 하기에 어떤 제도든 폐지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20세기 영국의 저술가 G K 체스터턴은 이 주장을 울타리에 빗대 설명했는데 요지는 이렇다. 어떤 울타리가 왜 세워졌는지 모른다면 허물 권리가 없다.

[동십자각] 울타리를 허물기 전에 해야 할 질문

제도를 없애는 것과 제도가 하던 기능을 없애는 것은 다르다. 나쁜 제도조차 때로는 일을 하기에 어떤 제도든 폐지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20세기 영국의 저술가 G K 체스터턴은 이 주장을 울타리에 빗대 설명했는데 요지는 이렇다. 어떤 울타리가 왜 세워졌는지 모른다면 허물 권리가 없다. 쓸모를 다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허물어도 늦지 않는다.

정부가 집값 안정을 해치는 ‘울타리’로 다주택자를 지목한 맥락은 이해가 간다. 저금리 유동성이 넘치던 시절 타인의 전세금을 지렛대 삼아 감당할 수 없는 갭투자를 일삼으며 시장을 교란한 다주택자들이 있었다. 일부의 탐욕은 끝내 전세사기로까지 번지며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다주택자 수를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시행된 여러 대출·세금 규제가 시의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다주택자들이 시장에서 수행해온 기능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들은 오랫동안 전세 시장의 실질적 공급자였다. 부족한 공공임대의 빈자리를 채웠고, 특히 땅은 좁고 인구는 많은 대도시에서 그 역할이 두드러졌다. 집주인들이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자산을 불려가는 동안 세입자 역시 낮은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하며 목돈을 축적할 수 있었다. 전세는 금융 제도의 발달과 함께 자연 소멸할 사금융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수십 년간 수백만 가구의 주거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다주택자를 옥죄는 동안 저렴한 전세 매물은 빠르게 사라졌다.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처분할 때 ‘똘똘한 한 채’를 남기려는 경향이 강한 탓에 서울보다는 수도권, 강남 3구보다 외곽의 감소세가 더 가팔랐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 전세는 약 21% 줄었는데 강남 3구의 물량이 1만 3989건으로 10% 늘어난 반면 나머지 22개 구는 1만 1487건에서 6242건으로 45.7% 급감했다. 경기도 전세는 2만 5059건에서 1만 2278건으로 아예 반 토막이 났다.

제도가 어긋날 때 그 비용은 언제나 가장 약한 쪽이 치르는 법이다. 전세 부족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고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은 서울 시민들을 아파트에서 빌라로, 서울에서 경기도로 밀어내고 있다. 정부는 다주택자라는 울타리를 뽑기 전에 그들이 하던 일을 누가 대신할 것인지 먼저 물었어야 했다. 이제라도 그 질문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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