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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동서남북] 국민성장펀드인가, 자산가 성장펀드인가

인공지능이나 반도체 같은 첨단 전략 산업에 정부와 금융기관이 장기 투자를 할 텐데, 일반 국민에게도 과실을 나눠 주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투자할 수 있도록 여러 유인책을 마련하겠다고...

[동서남북] 국민성장펀드인가, 자산가 성장펀드인가

수익은 자산가들이 따먹고

손실은 국민 세금으로 메워

자기 책임 하의 투자 원칙이

왜 국정 상품엔 적용 안되나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출범식. /뉴스1

인도 정부는 ‘금(金) 국채’라는 상품을 10여 년 전 출시했다. 투자자가 금 국채를 사면 8년 만기 후, 만기 때의 금값으로 원금을 돌려준다. 거기에 연 2.5% 이자를 얹어주고, 소득세도 물리지 않는다. 매혹적인 조건이다. 금을 너무 사랑하는 인도인들 때문에 금 수입이 나날이 급증, 경상수지를 위협할 지경이 되자 도입했다. 실물 금 대신에 제발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금 국채를 사서 수익을 취하라는 취지다. “당신의 투자를 금처럼 반짝이게 하세요”라는 광고 카피도 매력적이었다.

인도 정부는 이후 금 국채를 한 해 4~5차례씩 발행했다. 결과는 대실패. 금 수입이 꺾이지 않았다. 금 수요의 거의 대부분이 결혼식 등 자산가들의 잔치에 쓰이는 실물 수요라 금 국채가 대체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렇게 금값이 뛸 줄 인도 정부가 알았겠나. 정부 상환 부담이 눈덩이처럼 늘었다. 한국 식으로 치면 초기 한 돈어치 금 국채를 18만원에 샀던 투자자는 8년 후 만기 때 80만원으로 돌려받았다. 투자자 입장에선 연 수익률이 20%가 넘는다. 손해가 막심한 인도 정부는 2024년에야 항복, 더 이상의 금 국채 발행을 포기했다.

앞으로도 인도 정부는 그동안 발행한 금 국채를 계속 오른 금값으로 돌려줘야 한다. 금값이 내리지 않으면 2조원 정도 세금을 더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본다. 금 국채가 다른 정책 실패보다 더 악성인 것은, 수익은 금 국채를 살 능력이 있던 자산가들이 따먹고, 손실은 평생 금과 별 상관없는 일반인 세금으로 메우도록 설계됐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정부가 논의하고 있는 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 구조는 실패한 인도 금 국채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정책은 ‘선의’에서 시작했다. 인공지능이나 반도체 같은 첨단 전략 산업에 정부와 금융기관이 장기 투자를 할 텐데, 일반 국민에게도 과실을 나눠 주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투자할 수 있도록 여러 유인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1인당 2억원까지 투자할 수 있게 하되, 3년 투자하면 투자액의 최대 40%까지 소득공제 방식으로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한다. 성장성을 주로 보고 하는 투자라 마냥 장밋빛은 아니라서, 만약 투자 실패로 손해를 보면 정부가 세금으로 -20%까지는 메워준다는 조건을 내걸 참이다.

이 방식은 상대적으로 자산가에게 유리하다. 예를 들어 연봉 5000만원인 사람과 1억원인 사람이 급여의 10%인 500만원과 1000만원을 국민성장펀드에 투자한다면 다른 공제 혜택을 제외할 경우 세액 감면 혜택이 각각 30만원, 96만원으로 1억 연봉자가 훨씬 유리하다. 만약 두 사람이 동일한 500만원씩 투자한다고 쳐도, 1억 연봉자가 받는 세금 혜택이 18만원 더 많다.

부모 도움이 없다면 연봉 5000만원 이하 직장인이 큰 돈을 장기 투자하긴 쉽지 않다. 이대로라면 국민성장펀드 투자는 가구 연소득이 1억원 넘는 상위 20% 자산가 중심으로 굴러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자산가들은 투자 위험을 감당할 수 있다고 본다. 금융당국은 자기 책임하에 투자할 것을 항상 강조하면서, 왜 이런 국가 주도 투자 상품에는 “만약에 손실 나더라도 세금으로 메워 줄게”라는 달콤한 약속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관련 법이 아직 국회 문턱을 다 넘지 못했다. 전체 국민성장펀드 150조원 중 국민참여형은 3조원에 그친다. 국민참여형의 출범이 조금 지연된다고 해서 첨단 사업에 대한 국가 전략 투자가 늦어지는 것도 아니다. 요즘 투자 심리가 조심스러운 상황이라, 인기몰이를 위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국정과제인 국민성장펀드가 인도 금 국채 꼴 났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신중한 재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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