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찬 작
신현찬 작가의 모든 그림은 결국 얼굴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풍경이나 사물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하지만, 붓질이 거듭되고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언제나 한 사람의 얼굴이다. 작가 자신도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상하게 작업을 하다 보면 결국 얼굴이 되요. 풍경을 그리다가도 마지막에는 얼굴로 돌아가죠.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화면을 메우는 얼굴들은 대중문화의 스타이기도 하고, 만화 속 캐릭터이기도 하며, 때로는 미술사 속 거장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수많은 얼굴을 따라가서 종국에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작가 자신의 내면이다. 타인의 얼굴을 빌려 끊임없이 자신을 그려온 것이다. 이는 그의 작업의 자신 삶에 대한 독백인 이유다.
오는 7월 1일부터 독립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어린 기억들…'은 그의 회화 세계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이번 전시의 출발점은 '순수한 기억'이다. 광고회사에서 오랫동안 캐릭터 디자인과 패키지 디자인을 해온 그는 상업 이미지 속에서도 자신을 설레게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화폭으로 불러낸다.
미키마우스와 같은 만화 캐릭터, 반 고흐와 앤디 워홀, 마돈나와 같은 대중문화의 아이콘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구성하는 감정의 표상으로 읽는다. 특히 미키마우스는 작가에게 단순한 캐릭터 이상의 개념으로 작동한다. 여섯 살 무렵 흑백TV 앞에서 처음 만났던 행복한 시간의 환기이며, 잊고 있던 유년의 감정을 현재로 소환하는 매개체다.
"집을 정리하다가 옛날 만화책을 발견했어요. 그걸 보니까 어린 시절 기억이 한꺼번에 살아나더군요."
신현찬 작
화면 속 미키마우스는 디즈니의 캐릭터 이전에 기억의 자화상이다. 작가는 익숙한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색채와 감각으로 다시 해석하고 변형하면서 개인의 기억을 보편적 감정으로 확장시킨다. 관람객은 미키마우스를 보면서 작가의 어린 시절을 만나고, 동시에 자신의 유년을 떠올리게 된다.
"저의 모든 그림이 결국 얼굴로 귀결되는 것은 평생 수많은 타인의 얼굴을 빌려 제 초상화를 그려왔기 때문입니다."
화면 속 반 고흐와 앤디 워홀은 화가로써 그가 존경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대상들에 자신의 정체성을 이입한다. 말하자면 작가의 정체성을 비추는 또 다른 거울인 셈. 특히 워홀을 그린 작품은 워홀의 초상이 아니라 워홀이라는 얼굴을 통해 스스로를 투영한 자화상에 가깝다.
이는 그의 인물들이 외형의 재현이 아닌, 감정의 흔적을 담아낸 심리적 초상으로 읽히는 이유다.
색채 또한 그의 삶의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최근 작업일수록 화면은 더욱 강렬한 원색으로 채워진다. "예전보다 색이 훨씬 화려해졌어요. 묻혀 있는 색보다 제 자신을 더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화면 속 붉은색과 노란색, 선명한 파랑 같은 강렬한 색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쌓여 있던 외로움과 고독을 드러낸다. 특히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에서는 이런 감정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부모를 모두 떠나보낸 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마치 오래된 가족사진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기대어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음속 깊이 남아 있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화면 위로 스며든 결과다.
“제 작업은 한 사람의 개인적인 추억을 넘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그리움과 상실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현찬 작
신현찬은 치밀한 계획보다 우연의 힘을 신뢰한다. "길을 가다가 무언가를 보거나 TV를 보다가 어떤 장면이 마음에 들어오면 그게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우연히 마음을 흔든 이미지가 작업의 씨앗이 되고, 직관은 이성을 앞지른다.
처음에는 추상이던 화면이 어느 순간 얼굴이 되고, 풍경이 인물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자체가 회화가 지닌 생명력이라고 그는 믿는다.
작가는 작품의 완성에도 특별한 철학을 부여한다. 그는 붓을 놓고도 긴 시간 작업을 응시한다. 그 시간은 1년이 될 수도 있고, 그 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다. "그릴 때는 마음에 안 들어 치워두는데, 1년쯤 지나 다시 보면 괜찮은 작품이 있어요."
붓을 내려놓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또 하나의 요소를 거치며 작품이 비로소 완성된다는 이야기였다.
“작가와 작품 사이에 생긴 거리는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내고, 그림은 시간이 더해질수록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하게 됩니다.”
최근 그는 디지털 작업과 회화를 병행하고 있다. 디지털은 수정과 반복이 자유롭고 재료에 대한 부담도 적다. 그러나 지금 그의 중심은 다시 손으로 그리는 회화다. "디지털은 편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손작업을 더 많이 합니다."
수정할 수 없는 붓질 하나, 화면 위에 남는 물감의 물성,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흔적들이야말로 회화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의 기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관 역시 분명하다. 작업은 철저하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진행한다. "누군가 시키는 그림은 못 그리겠더군요. 그냥 제가 그리고 싶은 걸 그려서, 마음에 들면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특정 인물을 의뢰받아 그리는 일을 수용하지 못한다. 상업적 효율보다 자신의 감각을 우선하는 그의 태도는 다소 고집스럽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고집은 오히려 신현찬 회화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축이다.
그의 그림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왜 얼굴인가. 왜 스타인가. 왜 어린 시절의 캐릭터인가”다.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는 줄곧 사람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도, 화가도, 만화 캐릭터도 모두 기억과 감정을 담는 하나의 그릇이다.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순수, 가족을 향한 그리움, 사람에 대한 갈망, 그리고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온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독립갤러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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