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곤영 부국장
최근 이재명 정부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열고 한국형 AI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반도체 생산능력,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제조 기반을 비수도권에 새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정부는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국가 성장축으로 제시했고 삼성전자, SK, LG전자, 퓨리오사AI, HD현대로보틱스 등이 참석해 분위기를 띄웠다. SK는 반도체 공급 확장에 1천100조원과 AI 데이터센터에 1천조원을, 삼성은 지역별 미래 산업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향후 10년간 두 그룹의 국내 투자 규모는 3천2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는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해왔다. 성장과 균형발전, 미래산업 육성을 위해 대형 국책사업을 발표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책 방향은 바꿔졌고 성과는 희미해졌다. 이재명 정부 역시 출범과 함께 인공지능(AI) 중심 국가전략, 에너지 대전환, 국토균형발전과 초광역 경제권 조성을 통한 국가의 미래를 바꿀 대규모 메가 프로젝트를 내세웠다. 방향성만 놓고 보면 시대적 요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AI와 반도체, 바이오, 친환경 에너지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은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고 일본과 유럽도 국가 차원의 산업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 살아남기 위해 한국도 국가가 미래산업의 방향을 제시하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특히 산업 공동화, 인구 감소 등 복합적인 위기를 맞아 새로운 성장동력이 절실한 지방에 이재명 정부가 제조업 중심 경제구조를 디지털 산업으로 확장하고, 수도권에 집중된 혁신역량을 전국으로 분산시키겠다는 구상은 충분히 환영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장밋빛 청사진만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면 사업 방향이 수정되거나 중단됐고 정치적 논리가 경제성을 앞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산 확보는 물론 지역 간 이해관계 충돌, 환경 문제, 행정 절차까지 수많은 장애물을 넘지 못한 사례가 반복됐다. 역대 정부가 추진했던 대형 국책사업들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재원이다. 기업의 투자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대규모 AI 인프라 구축과 에너지 전환, 지역 균형발전에는 막대한 국가 재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로 복지 지출은 계속 늘어나고 국가채무도 증가하는 상황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정치적 접근이다. 메가 프로젝트가 국가 경쟁력보다 정치적 성과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경우 왜곡될 수밖에 없다. 경제성보다 지역 안배가, 국가 전략보다 선거 계산이 앞서는 순간 메가 프로젝트는 성장 전략이 아니라 예산 나눠먹기로 전락하게 된다.
지역균형발전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마다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지방의 청년은 수도권으로 떠나고 기업과 대학도 수도권으로 몰린다. 산업과 교육, 주거와 문화가 함께 움직이지 않는 균형발전은 결국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정책 추진 방식이다. 정부는 속도를 강조하지만, 사회적 합의와 경제적 검증더 중요하다. 메가 프로젝트는 수십 년을 내다보는 사업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린다면 투자도, 기업도, 국민도 신뢰하지 않는다. 충분한 타당성 조사와 국민적 공감 없이 추진되는 사업은 갈등만 키우고 결국 비용만 늘리는 결과를 낳는다.
정부가 정말 국가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화려한 구호나 숫자보다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국민들이 보는 시각은 단순하다. 과연 실현 가능한가이다. 전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책을 통해 삶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결과다. 언제까지 무엇을 하고, 얼마의 예산을 어떻게 마련하며, 실패할 경우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이 정부는 국민 앞에 명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과거 수많은 국책사업이 약속만 화려했을 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은 더 이상 거창한 청사진에 쉽게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현 가능한 계획이며,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냉정한 전략이다. 이재명 정부가 메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재정의 한계, 정치적 이해관계, 정책의 지속성, 국민적 합의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민은 거대한 정책에 반대하지 않는다. 메가 프로젝트의 성패는 발표 순간이 아니라 임기 말, 그리고 그 이후에 판가름 난다. 화려한 청사진보다 묵묵한 실천이 국가를 바꾼다는 사실을 이번 정부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곤영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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