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펑후해협에서 조업하던 어선이 끌어올린 육상동물 뼈 무더기(왼쪽)를 소장자가 2011년 대만국립중앙자연과학박물관에 기증했다. 여기에 포함된 정강이뼈(오른쪽 사진 왼편)와 넙다리뼈의 단백질 분석 결과 데니소바인으로 밝혀졌다. 뼈 길이를 토대로 추정한 키는 각각 190㎝와 180㎝다. 대만국립중앙자연과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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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생명을 이루는 두가지 요소의 하나는 유전 정보이고 나머지는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이다. 흐름에 이상이 생기면 늙거나 병들고 멈추면 죽는다. 반면 유전 정보는 조건만 맞으면 오랜 세월 보존될 수 있다. 이렇게 봉인된 게놈의 염기 서열이나 그 산물인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해독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고생물학과 고인류학을 혁신시켰다.
그 대표적인 예가 4만년 전까지 현생 인류와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게놈 해독이다. 특히 데니소바인의 유골은 아이 손가락뼈와 어른 어금니가 전부였기에 여기서 디엔에이(DNA)를 추출하지 못했다면 실체가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다. 유전 정보 덕분에 이름까지 얻었지만(알타이산맥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 정작 데니소바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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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아시아 곳곳에서 데니소바인의 뼈가 추가로 나왔음에도 지금까지 확인된 건 손가락뼈와 조각난 갈비뼈 하나를 빼면 두개골과 아래턱뼈, 치아 등 머리에 국한돼 있었다. 그 결과 데니소바인은 머리와 어금니가 무척 크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머리 아래 생김새는 미스터리였다.
약 20년 전 어선이 대만 펑후해협 해저에서 끌어올린 그물에서 육상동물의 뼈가 무더기로 걸렸는데 그 가운데 사람 뼈 3점(아래턱뼈와 넙다리뼈, 정강이뼈)이 포함돼 있었다. 이곳은 수심이 얕아 빙하기 때는 육지였다. 지난해 대만과 일본 공동연구자들은 아래턱뼈의 단백질을 분석해 데니소바인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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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생명과학 분야의 사전 공개 논문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에는 펑후해협에서 건져 올린 넙다리뼈와 정강이뼈도 단백질 분석 결과 데니소바인으로 확인했다는 후속 논문이 올라왔다. 뼈 길이를 토대로 키를 추정한 결과 넙다리뼈의 주인공은 180㎝로 훤칠했고, 정강이뼈의 주인공은 190㎝에 이르는 거구였다. 물론 아직은 두 사람뿐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두개골과 어금니도 다들 컸기 때문에 아마도 데니소바인은 기골이 장대한 인류였던 것 같다. 방사성동위원소 측정 결과 이들은 약 4만4천년 전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2010년 게놈 해독으로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데니소바인은 아직 정식 학명이 없다. 종을 특징지을 수 있는 기준이 되는 모식표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1년 ‘호모 롱기’(Homo longi)라는 학명을 얻은 중국 하얼빈의 두개골(롱기의 모식표본)이 지난해 단백질 분석 결과 데니소바인으로 밝혀지면서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참고로 롱기는 하얼빈이 있는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용’(龍) 자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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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계 미국 인류학자인 하와이대 크리스토퍼 배 교수는 2024년 중국 티베트 샤허의 데니소바인 아래턱뼈, 대만 펑후의 아래턱뼈(이듬해 데니소바인으로 확인됨)와 함께 같은 계열로 보이는 두개골 등을 묶어 ‘호모 줄루엔시스’(Homo juluensis)라는 학명을 붙였다. 줄루엔시스는 큰 머리뼈라는 뜻의 중국어 ‘쥐루’(巨顱·거로)에서 따왔다. 이에 따르면 이번에 데니소바인으로 드러난 펑후의 다리뼈 두점도 호모 줄루엔시스로 봐야 한다.
롱기가 됐든 줄루엔시스가 됐든 이제 데니소바인에게 정식 이름을 붙여줄 때가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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