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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형건설사, 중동 리스크 피해 북미·유럽으로 '원전수출' 돌파구 마련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에너지 인프라, 원전 투자 확대가 이 같은 흐름의 배경으로 꼽힌다. 전체 해외수주액은 감소했지만 북미·태평양 지역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인 셈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2월 초만...

대형건설사, 중동 리스크 피해 북미·유럽으로 '원전수출' 돌파구 마련

중동 리스크 확산에 공정 지연·미수금 우려…해외사업 불확실성 확대

북미·유럽 원전·에너지 인프라로 이동…건설사 수주 전략 재편

유가 영향 제한적이지만 현지 변수 부담…중동 의존도 탈피 가속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란 테헤란 모습.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기범 기자]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 충돌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중동발 공정 지연과 발주 축소, 미수금 확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건설사들도 해외 수주 전략의 무게중심을 북미·유럽 등으로 넓히는 모습이다.

1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북미·태평양 지역 수주액은 올해 1월 4억39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4% 증가했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에너지 인프라, 원전 투자 확대가 이 같은 흐름의 배경으로 꼽힌다. 전체 해외수주액은 감소했지만 북미·태평양 지역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인 셈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2월 초만 해도 올해 해외 수주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봤지만 이란발 중동 사태로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원전 경쟁력을 앞세워 미국과 유럽 등으로 시장을 넓히는 전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전 분야는 중동을 대체할 고부가 해외 수주처로 부상하고 있다. 대우건설이 포함된 한국수력원자력 컨소시엄은 체코 신규 원전 사업의 본계약 마무리 절차를 진행 중이다. 두코바니 5·6호기 사업이 최종 궤도에 오르면 대우건설도 시공 계약을 통해 유럽 원전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체코 원전이 대우건설의 유럽 중후장대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건설은 올해 신규 수주 목표를 창사 이래 최대인 18조원으로 제시했다. 체코 원전을 비롯해 가덕도 신공항, 파푸아뉴기니 LNG CPF, 이라크 해군기지 등 초대형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실적 반등을 노리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과거 중동 플랜트에 의존했던 해외 사업 축이 유럽 원전 같은 고부가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체코 본계약이 마무리되면 국내 주택 경기 침체를 만회할 새로운 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도 북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원전 사업 보폭을 넓히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10~11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핀란드·스웨덴 신규 원전 건설 심포지엄’을 열고 핀란드와 스웨덴, 미국 정부 관계자와 원자력 관련 기관 100여 곳 인사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현대건설은 웨스팅하우스와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대형 원전 설계 계약을 체결했고, 슬로베니아 신규 원전 기술타당성 조사와 핀란드 포툼과의 원전 건설 사전업무착수계약도 맺었다. 스웨덴에서는 홀텍과 소형모듈원전(SMR) 사업 협력을 논의했고, 네덜란드 원전 기술기업 토리존과는 용융염원자로(MSR) 기술 협력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북유럽 국가들이 전력 수요 증가와 탄소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 도입에 적극적인 만큼 대형 원전과 SMR 시장 모두에서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투자한 미국 차세대 SMR 기업 테라파워가 지난 4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상업용 첨단 원전 건설 승인을 받았다. NRC가 신규 상업용 원전 건설을 허가한 것은 10년 만이며, SMR 건설 승인으로는 처음이다. 테라파워는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2030년 실증로 가동을 목표로 세계 최초 상업용 SMR 플랜트 건설에 착수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SK와 함께 테라파워에 2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랐고, 최근에는 한국수력원자력에 일부 지분을 넘기며 협력 범위를 넓혔다. 북미에서 원전과 에너지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할 경우 국내 건설사와 에너지 기업들의 참여 기회도 함께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사진은 체코의 신규 원전 예정부지인 두코바니 전경. 사진=연합뉴스

공사비 상승은 제한적…중동 공정 지연 우려 확대

문제는 유가보다 중동 현지 사업 환경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원유 가격 상승이 건설 생산비용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유가가 50% 상승할 경우 국내 건설 생산비용은 1.06% 오르는 데 그칠 것으로 추산됐다. 해당 분석은 한국은행의 2023년 산업연관표 가격파급효과 분석 모형을 적용한 결과다.

유가가 10% 오르면 전체 건설 생산비용은 0.21%, 60% 오르면 1.27%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물 가운데서는 주거용 건물 생산비용 상승률이 0.90%, 비주거용 건물은 0.80%, 건축보수는 0.93%로 모두 1% 미만이었다.

다만 토목 부문은 상대적으로 충격이 컸다. 유가가 50% 오를 경우 토목 건설 생산비용은 2.93%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건산연은 전체 380개 건설투입 요소 가운데 경유 가격 인상 효과가 가장 컸다고 분석했다. 경유 영향이 전체 파급효과의 35.2%를 차지했고, 레미콘 8.5%, 아스콘 및 아스팔트 제품 8.4%, 도로화물운송서비스 4.2%가 뒤를 이었다.

경유가 건설기계의 핵심 연료이자 주요 자재 생산 과정에 광범위하게 투입된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다. 박철한 건산연 연구위원은 “유가 급등 장기화에 대비해 경유·아스콘 중심의 수급과 단가 관리가 필요하다”며 “건설기계·화물운송 업계 지원과 함께 토목 현장 중심의 물가변동 계약금액 조정 지침을 선제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동 현지의 사업 불확실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4일 ‘미국-이란 전쟁의 전개 상황과 산업별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중동 사업 비중이 높은 국내 건설사들의 현지 공정 지연과 원가 상승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인력과 자재 이동 제약, 물류 불안정이 일부 프로젝트 진행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사태가 길어질수록 신규 발주와 협상 중인 프로젝트 일정 조정 가능성도 커진다는 분석이다.

실제 중동은 국내 건설사들의 전통적인 텃밭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액은 472억7000만달러였고, 이 가운데 약 118억8000만달러가 중동에서 발생했다. 전체의 약 25% 수준이다. 최근 수년간 중동 비중이 30~40%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건설사의 해외사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여전히 크다.

다만 올해 수주 흐름은 부진하다. 해외건설협회 해외건설통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1월 해외수주액은 7억7516만달러로 전년 동월 14억7135만달러에 크게 못 미쳤다. 2월 수주액도 4억5133만달러로 전년 동월 32억2634만달러보다 86% 급감했다. 1~2월 공사 건수는 93건으로 전년 동기 82건보다 늘었지만,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줄면서 전체 금액은 오히려 축소됐다.

현재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카타르 등에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현대건설은 사우디 자푸라 유틸리티와 380킬로볼트 송전 공사, 이라크 해수처리시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이라크 신항만 프로젝트를 맡고 있으며, 삼성E&A는 사우디 파딜리 가스 증설 사업과 카타르 에틸렌 저장 설비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이란 현지에서 직접 공사를 수행 중인 국내 건설사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각 사는 현지 안전 매뉴얼에 따라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동향 파악과 대응 계획 점검에 나선 상태다. 대우건설은 휴가와 출장 일정도 잠정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의 직접 피해는 없지만 장기 미수금 문제는 부담을 키우는 대목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종욱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국내 기업이 해외 건설공사를 수행한 뒤 1년 이상 대금을 받지 못한 장기 미수금은 총 46건, 약 4억9492만달러였다. 이 가운데 약 3억439만달러, 원화로 약 5061억원이 중동 및 인근 지역에서 발생했다. 5년 이상 회수하지 못한 악성 미수금도 약 2억1003만달러에 달했다.

특히 이란 관련 사업에서도 수천만달러 규모의 장기 미수금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종욱 의원은 “중동 지역 정세 불안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우리 기업의 미수금 관리와 회수 지원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중동 비중이 약 25% 수준으로 낮지 않다는 점에서 확산 여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도 전쟁이 단기간에 종료되더라도 자재와 인력 수급에 어려움이 남을 수 있다고 봤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은 중요한 시장이지만 전쟁과 유가 등 외부 변수에 따른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중동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북미와 유럽, 동남아 등으로 수주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전략이 건설사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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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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