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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6-05-06 09:23:00
수정 : 2026-05-06 09:31:57
대학원생의 현실에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
2026-05-06 0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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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의 현실에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
[2026년 5월호 vol.0]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김강리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수석부지부장
지난 3월, 근로복지공단은 교수 갑질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학원생 A 씨의 유족이 신청한 산업재해를 최종 승인했다. A 씨는 전남대 공과대학에서 연구조교로 일하며 과도한 업무와 부당한 업무 지시에 시달렸다. 전남대 대학원생의 평균보다 2배 많은 연구과제에 참여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교수가 '컴'이라고 부르면 일과시간 이후와 야간에 이뤄진 업무 지시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했다. 또 연구교수의 배우자가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의 업무를 처리하거나, 교수의 가족 행사 준비와 중고 거래 등 연구·교육과는 무관한 사적인 심부름을 수행해야 했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처음 맞닥뜨린 것이 아니다. 2015년 제자를 상대로 임금 갈취, 집단 폭력을 일삼고 인분을 먹이는 등 가학행위를 저질렀던 일명 '인분 교수 사건'과 2017년 대학원생에게 8만 장 분량의 문서를 스캔하도록 지시했던 '서울대 스캔 노예 사건'부터 2024년 교수가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제자를 강제 근로하게 한 일명 '교수 노예' 사건까지. 어렵지 않게 여러 사건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비일비재하다.
이 사건들의 배경에는 교수-학생의 수직적 위계질서가 있다. 학위 취득 과정은 물론 졸업 이후에도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교수의 위치는 부당한 업무 지시에도 대학원생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든다. 또 대학원생은 학생연구원, 조교, 학회 간사, 강사 등의 이름으로 학술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인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단계에 있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기 십상이다.
이와 같은 대학원생의 현실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특례조항과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연구실안전법)이 대학원생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법적 기반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학생연구원도 산업재해보상보험에 특례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올해 1월에는 상해·사망뿐만 아니라 정신상의 손해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연구실안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법·제도 변화의 배경에는 2019년 경북대 실험실 안전사고를 계기로 한 투쟁이 있었다.
2019년 12월, 경북대 화학관에서 시료를 폐기하던 중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5명 중 4명이 다쳤고, 그중 대학원생 B 씨는 온몸 89%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당시 학교는 치료비를 전액 부담할 것을 약속했지만, 곧 사고 수습과 관련한 규정이 없다며 말을 바꿨다. 대학이 건물 내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가입한 안전보험과 재난보험만으로는 치료비가 턱없이 부족했고, 대학원생은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산재보험 처리가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생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국회 앞 농성을 시작했다. 대학 또는 교수와의 종속적 관계에서 연구·행정·교육에서 실질적 노동을 수행하지만,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대학원생의 현실을 알리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그 결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으로 이어지면서 제한적이나마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2025년 최초로 이공계 대학원생 수가 10만 명이 넘었으며, 전국의 대학원생 수는 약 35만 명으로 추산된다. 매년 대학원생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연구하고 노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됐다. 이제 더 나아가, 학생이자 노동자인 대학원생의 이중적 지위로 인해 발생하는 권리 침해를 해소하기 위해 법적 구속력을 발휘하는 근로관계를 확립하고자 한다.
"대학원생은 노예다." 이 오래된 농담은 교수-학생의 수직적 위계질서와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부당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문제 제기가 어려운 환경에서 대학원생이 경험하는 부당한 처우를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하지만 익숙한 농담이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대학원생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래로 대학원생의 노동을 여타의 임금 노동과 동질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싸워 왔다. 그리고 2016년에는 연방노동관계위원회가 대학원생 조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노동관계법의 보호 대상임을 공표하는 성과를 일궈 냈다. 경제적 안정성, 수평적인 문화 등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미박(미국 박사의 준말)'의 환경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더 이상 우리 대학원생의 삶을 '운'에만 맡길 수는 없다. 운 좋게 장학금에 선정돼 운 좋게 성품이 좋은 지도교수를 만나 운 좋게 연구실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야만 겨우 대학원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 우리의 노동환경을 우리가 결정하기 위해서, 대학원생노조의 이름으로 우리는 더 많이 모일 것이고 더 큰 걸음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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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리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수석부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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