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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기업 노조 성과급 명문화 주장, '탐욕'이라는 프레임을 넘어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현금보다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중심 보상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이들 사례는 고용 유연성이 매우 높은 노동시장 구조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고용을 중시하는...

대기업 노조 성과급 명문화 주장, '탐욕'이라는 프레임을 넘어서

SK하이닉스가 던진 이정표,  ‘투명한 배분 시도'

경직된 명문화인가, 유연한 엔진인가

비난이 아닌 ‘공정한 룰’이 필요한 이유

비난의 과녁이 가린 성과급 논쟁의 본질

최근 삼성전자 등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명문화하라는 요구가 거세지자,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한탕주의"나 "귀족노조의 탐욕"으로 규정하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복잡한 경제·산업 구조의 문제를 지나치게 손쉽게 ‘선과 악’, 혹은 ‘이기주의’ 프레임으로 환원해버린다는 데 있다.

​갈등의 당사자들을 비난의 과녁으로 세우는 순간, 정작 우리가 논의해야 할 구조적 해법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진다. 성과급을 둘러싼 파업과 갈등이 반복되는 이유 역시 보상과 투자라는 경제 구조의 본질보다 ‘누가 더 나쁜가’를 가리는 데 사회적 에너지가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과급 논쟁의 핵심은 특정 집단의 탐욕 여부가 아니다. 오히려 기업의 성과를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부족, 그리고 무엇보다 구성원 간 신뢰의 결핍에 가깝다. 예측 가능한 보상 체계와 투명한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노사는 매년 같은 갈등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당사자 간의 대화로 실마리를 풀기보다 매번 정치권과 정부의 개입을 요청하는 모습은 우리 노사 관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율적 협상이 실종된 자리를 외부 기관의 중재와 사후 조정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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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던진 이정표,  ‘투명한 배분 시도'

사실 최근의 성과급 논쟁은 2021년 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보상 체계 논란 이후 본격화됐다. 당시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회사가 사상 최대 실적을 냈는데도 성과 배분 기준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라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이후 SK하이닉스 노사는 영업이익과 연동된 성과급 체계를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이어갔고, 2025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원칙에 합의했다. 구성원들이 공시된 실적을 통해 자신의 보상 수준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 성과급 상한선(Cap)을 폐지한 점 역시 중요한 변화였다. 시장 예상 실적 기준으로는 인당 1억 원 안팎의 성과급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초과이익 공유 폭이 확대됐다. 이는 단순한 ‘돈잔치’라기보다 성과와 보상을 보다 직접적으로 연동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에 따라 다른 주요 기업 노조들이 앞다투어 성과에 상응하는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지난 4월 23일 삼성전자 노조 투쟁 결의대회 [사진=디지털포스트DB]

경직된 명문화인가, 유연한 엔진인가

물론 성과 공유의 정당성이 곧 기계적인 '명문화'의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처럼 업황 변동성이 큰 산업에서 특정 비율을 고정적으로 제도화할 경우, 기업의 투자 여력과 재무 유연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충분히 타당하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수십조 원 규모의 선행 투자가 필요한 대표적 자본 집약 산업이라는 점에서, 미래 투자 여력을 유지하면서 성과를 공유하는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

​SK하이닉스는 이러한 문제를 일정 부분 보완하기 위해 성과급 일부를 나눠서 지급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성과급의 일부를 수년에 걸쳐 분할 지급함으로써 단기 보상과 장기 성과를 연결하려는 시도다.

​또한 일부 판례는 경영 성과와 연동된 변동 성과급의 임금성을 제한적으로 판단해 기업의 운용 유연성을 인정해왔다. 즉 실적이 좋을 때 과실을 함께 나누되, 업황이 악화될 때는 일정 부분 위험을 분담하는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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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이 아닌 ‘공정한 룰’이 필요한 이유

글로벌 경쟁사들 역시 보상의 ‘규모’보다 ‘방식’과 ‘유연성’에 집중한다. 대만 TSMC도 이익 연동형 보상 구조를 운영하지만, 지급 규모와 방식은 업황과 경영 판단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된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현금보다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중심 보상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이들 사례는 고용 유연성이 매우 높은 노동시장 구조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고용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결국 기업의 성과는 어느 한 주체만의 결과물이 아니다. 경영 전략과 자본 투자, 현장의 숙련노동과 기술 혁신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결과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성과를 독점하려는 접근도, 반대로 노동자의 성과 공유 요구를 비상식으로 치부하는 냉소도 해법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많은 갈등에서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이유는 문제의 원인을 구조보다 상대의 ‘도덕적 결함’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비난하는 일은 쉽지만, 지속 가능한 보상 구조를 설계하는 일은 훨씬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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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공정한 보상이 경쟁력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쟁이 단순한 임금 갈등을 넘어 미래 산업 경쟁력과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AI 시대에는 단순 반복 노동보다 고숙련 인재의 창의성과 협업 능력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 결국 핵심 인재에게 어떤 방식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성과를 어떻게 공정하게 공유할 것인가는 기업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영 논리가 아니라 경기 변동의 위험과 생산성 기여도를 합리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정교한 보상 체계다. SK하이닉스 사례가 보여주듯 보상의 목적지가 단순한 ‘과거의 잔치’가 아니라 미래 혁신을 향할 때, 성과급은 경영의 족쇄가 아니라 성장의 엔진이 될 수 있다.

​감정적 비난과 선악 구도를 넘어 신뢰 가능한 ‘공정한 룰’을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AI 시대에도 인간 노동의 가치와 동기를 유지하기 위해 지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가장 현실적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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