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단독] '대한 독립' 헌신 외국인 390명‥공적 인정은 4명뿐

일제강점기, 한국인이 아님에도 대한 독립을 위해 헌신한 외국인들이 있습니다.

[단독] '대한 독립' 헌신 외국인 390명‥공적 인정은 4명뿐

뉴스데스크

홍의표

[단독] '대한 독립' 헌신 외국인 390명‥공적 인정은 4명뿐

[단독] '대한 독립' 헌신 외국인 390명‥공적 인정은 4명뿐

2026-08-15 20:05

|

Previous

Next

전체재생

상세 기사보기

재생목록

연속재생

◀ 앵커 ▶

일제강점기, 한국인이 아님에도 대한 독립을 위해 헌신한 외국인들이 있습니다.

MBC 취재 결과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발굴한 외국인 독립운동가는 390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그 중 서훈을 받은 사람은 단 4명에 불과했습니다.

홍의표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 리포트 ▶

1924년 1월 5일, 일본 왕궁 인근 다리.

의열단원 김지섭 의사가 왕궁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벌였습니다.

숨은 조력자는 일본인 고바야시 형제였습니다.

선원이었던 형 고바야시가 동생의 요청을 받고,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으로 가는 화물선 창고에 김 의사를 몰래 숨겨준 겁니다.

이 때문에 재판에 넘겨진 김 의사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당시, 이들 형제도 모두 징역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김철영/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발굴TF 연구원]

"밀항을 도왔던 일본인들은 자신의 안위를 걸고 이런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분들의 행위가 참 의미가 깊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과 교수로, 당시 일본인 '엘리트'였던 미야케 시카노스케.

비밀결사를 이끌다 일제에 쫓기던 독립운동가 이재유 선생을 자신의 관사 마룻바닥 밑에 한 달 넘게 숨겨줬습니다.

그 대가로 교수 자리에서 쫓겨난 미야케 교수는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습니다.

[김경일/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자신과 가족의 어떤 총체적인 몰락과 불행을 감수해야 됐고. 생활이 어려워지니까 (미야케 교수의 부인이) 책방을 차렸는데 일본인들이 몰려와서 침을 뱉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비국민'이라고 해서…"

미국인 사업가였던 앨버트 테일러는 1919년 3·1 독립선언서를 AP통신에 전달해, 뉴욕타임스 등을 통해 독립 만세운동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데에 기여했습니다.

외국인이지만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공통점은, 뚜렷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MBC 취재 결과, 독립기념관 산하 TF팀이 지난 5년간 발굴한 외국인 독립운동가는 390명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중 유공자로 인정돼 서훈을 받은 사람은 단 4명으로, 1% 정도에 불과합니다.

[김용만 의원/국회 정무 위원회]

"도움을 주셨던 분들에게 그 감사함을 보답할 수 있는 수준의 국격을 갖추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 된다…"

그나마 외국인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온 TF조차 한시적 조직인 데다, 관련 예산도 줄고 있어 국회와 정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MBC뉴스 홍의표입니다.

영상취재: 전효석 / 영상편집: 김지윤 / 자료조사: 김은지

MBC 뉴스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전화 02-784-4000

▷ 이메일 mbcjebo@mbc.co.kr

▷ 카카오톡 @mbc제보

이 기사 어땠나요?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