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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이 개시된 이후 한국 경제가 요동쳤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급등락을 반복했고, 국제 유가 불안이 물가를 자극했으며 주식시장도 출렁였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가 중동에 의존하며,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하는 구조이니 이 불안이 얼마나 구조적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순간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미국 탓' 프레임이다.
좌파 진영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미국의 침략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하지 말라"며 미 대사관 앞 집회를 열었고, 반전·반미를 내세운 시민단체들이 결집했다.
환율이 오르면 미국 탓, 유가가 오르면 미국 탓, 주가가 흔들리면 미국 탓이다. 그러나 이 프레임이 작동하는 방식에는 치명적인
비대칭
이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모든 결과의 책임자로 지목하면서, 정작 한반도에 더 직접적이고 반복적으로 해악을 끼쳐 온
중국·러시아
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 한 일 — 피와 원조와 자유
미국은 한국에 무엇을 했는가. 1945년 일본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
을 이끈 연합국의 주축이었고, 1950년 6월 25일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이 기습 남침을 감행하자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72시간도 채 안 되어 지상군 투입을 결정했다.
이후 3년간 미국은 연인원 178만 9,000명을 한반도에 파병했다. 이 중 전투 중
사망자만 33,739명
, 부상자 103,248명, 포로 약 7,200명에 달했다. 워싱턴 D.C.의 한국전 참전기념비에는 후유증 사망까지 합산한 54,246명이라는 더 큰 숫자가 새겨져 있다. 미국 총 지상 전력의 절반 이상이 이 땅에 투입됐고, 유엔 16개국이 함께 피를 흘렸다.
전쟁 이후에도 미국은 식량 원조로 전후 기아를 막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1953)으로 안보 우산을 제공했다. 한국이 대미 수출의 기회를 발판 삼아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외부 기반에 미국이 있었음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가 향유하는 자유의 공기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피를 흘렸고, 누군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했다. 그 비용의 청구서를 미국에만 돌리며 중국의 오만에 눈을 감는 행태는 외교가 아니라 자해다.
중국이 한국에 한 일 — 침략, 착취, 그리고 6·25
그렇다면 중국은 한국에 무엇을 했는가.
수천 년간 한반도는 중원 왕조의 조공·책봉 체제 아래 자율성을 제약받았다. 1627년과 1636년 두 차례 청나라의 침략(정묘호란·병자호란)은 조선을 굴욕적 속국으로 전락시켰고,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찧는 치욕을 감내해야 했다.
수십만 명의 조선인이 포로로 끌려갔다. 그리고 1950년, 중국공산당은 소련의 기획에 호응해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이름 아래 10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파병하여 유엔군의 북진을 좌절시켰다.
중공군 개입으로 전선이 38선 인근으로 다시 밀려나지 않았다면, 한반도 통일은 훨씬 이른 시점에 현실화됐을 것이다. 중국은 오늘도 이를 영광스러운 역사로 가르치며 단 한 번의 공식 사과도 없다.
이후에도 중국의 대한(對韓) 행위는 일관되게 강압적이었다. 2016년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싼 경제 보복으로 한국 관광·유통·문화 산업에 수조 원대 피해를 입혔다.
'동북공정'
으로 고구려·발해를 중국사에 편입하려 했고, 서해 불법 조업으로 한국 어민의 생계를 위협했다.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 조직의 한국 내 침투 가능성은 정보 당국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 미국과 중국의 대한(對韓) 행위 비교
구분
미국의 대한 행위
중국의 대한 행위
군사·안보
6·25 연인원 178만 명 파병, 전사 33,739명,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핵우산 제공
'항미원조' 100만 대군 개입으로 분단 고착화, 북한 핵·미사일 도발 사실상 두둔
경제
전후 식량·경제 원조, 자유무역 기회 제공, 한강의 기적 외부 기반 역할
사드 보복 수조 원 피해, 서해 불법 조업, 공급망·희토류 제한 위협 반복
역사·문화
독립운동 지원, 자유민주 가치 공유
동북공정(고구려·발해 중국사 편입), 조공체제 강요 수백 년, 병자호란 침략
현재
주한미군 2만8,500명 기준 주둔(미 의회 법적 기준), 반도체·AI 공급망 협력
북한 핵무장 방치, 서해 내해화 시도, 친중 여론 공작 가능성 지속 제기
러시아·베네수엘라·이란 폭정에는 왜 침묵하는가
러시아
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을 때, 한국의 반미 진영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미국이 나토를 확장해 자극했다”는 논리로 침략자를 감싸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민간인이 학살되고 수백만 명이 난민이 되는 상황에서도 러시아를 향한 규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베네수엘라
의 마두로 독재 하에서는, 한때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던 나라가 포퓰리즘 실험의 결과로 국민의 70% 이상이 빈곤에 빠지고, 500만 명 안팎이 국외로 탈출했다는 것이 유엔과 국제기구의 추정이다.
이란
에서는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망 이후 벌어진 시위 진압 과정에서 수백 명, 일부 인권단체 추산으로는 400~5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유엔 조사기구는 이 과정에서 이란 정권이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결론내렸다. 북한은 2010년 천안함 폭침으로 우리 해군 46명을 살해하고, 연평도 포격으로 민간인까지 희생시켰다. 이 모든 사안에 대해 한국의 반미 진영은 무엇을 했는가. 대체로 침묵이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정작 그 폭정 아래 신음하는 현지 민중의 목소리다. 베네수엘라 국민 상당수는 더 이상 “반미” 구호에 호응하지 않는다. 경제 붕괴 속에서 미국과 국제사회가 제재와 외교 압박으로 마두로 정권을 제어해 주기를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반미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그 나라에서조차, 거리의 민중은 “누구든 이 지옥을 끝내 줄 힘”을 찾는다.
이란도 마찬가지다.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며 거리로 나온 이란 청년들 중 상당수는 서방의 제재와 압박이 신정(神政) 체제에 타격을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반미·반이스라엘 구호를 강요받아 온 세대가 역설적으로 서방의 압박을 자유의 희망으로 여기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국의 반미 담론은 독재자의 주권은 보호받아야 하고, 억압받는 민중의 인권은 외면해도 된다는 논리 위에 서 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인도주의의 실체다.
그렇다면 오늘 한반도에서 진정한 인도주의는 무엇인가. 베네수엘라의 국민이 그렇고, 이란의 청년이 그렇듯, 북한 주민이 굶주림과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날을 앞당기는 일 아니겠는가. 우리가 북한을 그런 폭정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시대와 역사 앞에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에 더 가깝다.
항미원조 자랑하는 중국, 사과 요구도 않는 좌파
이 이중성은 6·25 문제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국은 6·25를 '항미원조전쟁'이라 부르며 자국의 영광스러운 역사로 가르친다.
시진핑 정부 들어 관련 기념행사는 오히려 대규모화됐다. 그런데 한국의 친중 세력은 중국에 사과를 요구하기는커녕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논리가 일관되려면 중국의 조공체제 강요, 병자호란 침략, 6·25 개입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 일본에는 '역사 앞에 무릎 꿇으라'면서 중국에는 일언반구 요구도 않는 태도, 이것이 이념에 의해 포획된 선택적 역사관의 실체다.
한국갤럽이 2026년 1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비호감도는 84%,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66%였다. 국민 다수는 이미 이 권위주의 지도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부 진영은 반미 연대의 이름으로 이들의 행태를 사실상 방치하거나 비호해 왔다.
미국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호르무즈도 한국의 이익
미국의 대이란 작전은 단순한 패권 유지 욕구로 환원될 수 없다. 이란 신정 체제는 자국 여성을 탄압하고 반정부 시위대를 사살하며, 후티 무장조직을 통해 국제 해상 운송을 위협해 온 반문명적 권위주의 정권이다.
이 체제를 견제하고 국제 항행의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의 수혜자에 한국도 포함된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가 중동에 의존하며, 그 대부분이 바로 그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으로 발생한 유가 충격과 환율 불안의 근본 원인은 중동 권위주의 체제들이 조성해 온 지역 불안정에 있다. 미국의 군사행동은 그 결과에 대응하는 것이지, 원인이 아니다. 원인을 덮고 결과만 탓하는 것이 '미국 탓' 프레임의 지적 불성실함이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 패권 침탈을 막기 위해 반도체 수출 통제와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는 것도 한국 첨단 산업의 생존 공간을 지켜주는 측면이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국산화가 완성되는 날, 한국 반도체 기업이 직면할 경쟁 압력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분담 압박이나 거래적 외교 방식에 대한 비판은 당당히 국익의 관점에서 협상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그것과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 자체를 흔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후손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이 문제는 결국 가치와 역사 인식의 문제다. 1882년 고종은 청나라의 압력 아래 사실상의 속국 지위를 수용했고, 이후 강대국 사이를 기회주의적으로 오가던 조선은 스스로의 힘을 키우지 못한 채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경술국치로 주권을 잃었다.
'전략적 모호성'을 가장한 친중 경사와 반미 선동이 반복된다면, 21세기판 사대외교의 재연이 우려된다는 경고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정의는 상대에 따라 달리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러시아의 침략에 침묵하고 중국의 인권 탄압에 눈 감으며 북한의 핵 도발을 묵인하면서 미국에만 분노를 쏟아내는 것은, 어느 편을 들지 명백히 드러내는 정치적 선택이다.
그 선택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와 통계와 현재의 지정학이 모두 증명한다. 가짜 평화의 가면을 쓰고 혈맹에는 죽창을, 침략자에게는 굴종을 바치는 국가의 미래는 없다.
선혈로 맺은 혈맹에 적개심을 심으면서 정작 침략과 탄압의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이 선택적 정의의 민낯을, 자라나는 후손 앞에서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박대석 칼럼니스트
참고자료
6·25 전쟁 미군참전 통계, 위키백과 「6.25 전쟁 기간 미국의 군사사」 /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기념비 / 한미우호협회 GT Bulletin 제5호
유엔군 16개국 파병 — 국가기록원 「16개국 참전과 전쟁의 경과」
이란 시위 사망자 — UN 인권조사단 보고(2023), PBS NewsHour, Times of Israel
베네수엘라 이탈 인구 — UNHCR·IOM 추산(2023~2024년 기준)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648호 (2026년 1월 3주) — 주변 4국 정상 호감 여부
호르무즈 한국 원유 의존도 — 조선일보 (2026.2.28) / 네이트뉴스 (2026.3.3)
이란 전쟁·파병 논란 — 노동자연대 토론회 (2026.3.19) / 리포터아 (202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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