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전선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시장과 산업에도 조용히 침투한다. 최근 중동 정세가 급격히 불안해지면서 한국 건설산업에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중동은 한국 건설산업의 핵심적 시장이다. 지난해 한국의 해외 건설 수주액은 약 472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중동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18억 달러로 전체의 약 25%에 달한다.
중동은 건설 시장규모가 크지만 지정학적 위험이 매우 큰 지역이다. 중동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건설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건설 프로젝트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며 대규모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기 때문에, 정치적 불안정은 곧 프로젝트 지연 또는 취소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과거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2014년 이후 이슬람국가(IS) 내전이 격화되던 시기에 한국 건설사의 이라크 수주액은 85억 달러 수준에서 불과 1300만 달러로 급감했다.
현재 상황 역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시장과 직결된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등 주요 산유국을 연결하는 해상 통로로,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의 약 20%가 그곳을 통과한다. 이 해협 봉쇄 또는 불안정성에 따라 세계 에너지 가격은 즉각 반응할 수밖에 없다. 건설산업은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크게 영향을 받는 산업 가운데 하나다. 에너지와 원자재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은 단순히 연료비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건설 장비 운용 비용, 자재 생산 비용, 운송 비용 등이 동시에 상승하면서 공사비 전체를 밀어 올리게 된다. 여기에 건자재 가격 상승까지 더해진다. 결국 유가 상승은 건설산업의 원가 구조 전반을 흔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환율이다. 중동에서 긴장이 높아질수록 안전자산 선호 성향에 따라 달러 강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해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건설사들은 금융 비용과 자재 조달 비용 측면에서 추가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이 경우 공사비 압박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공급망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건설산업은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에 비해 공급망 관리 체계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자재 조달, 물류, 장비 공급, 금융 조달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은 아직 충분히 고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물류 불안이 발생할 경우 공사비 조정 제도나 물가연동 계약 같은 장치가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제기된다.
특정 지역에 대한 수주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을 다변화하는 전략, 원자재 조달망을 안정화하는 공급망 전략, 그리고 환율과 금융 리스크를 관리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업계 역시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 능력을 경쟁력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다. 과거에는 시공 기술과 공정 관리 능력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정치와 안보, 에너지 시장의 변화를 읽고 대응하는 전략적 능력도 요긴해지고 있다.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할 곳은 바로 국토교통부다. 특히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충돌은 기업이 단독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영역이기에 정부 차원의 실효적 대책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해외 건설 프로젝트의 지정학적 위험을 관리하는 리스크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중동 정세, 유가, 해상 물류, 환율 등 주요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기업과 공유하는 조기 경보 체계가 필요하다.
해외 프로젝트 금융을 지원하는 금융 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정학적 충돌이 발생하면 금융기관들의 위험 회피 성향으로 인해 자본조달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 정책 금융기관과 협력해 프로젝트 보증과 정치 리스크 보험을 확대하는 정책도 검토해야 한다.
해외 건설 시장의 다변화 역시 중요한 과제다. 앞으로는 인도와 동남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 인프라 수요가 증가하는 지역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울러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와 스마트시티, 데이터 인프라 같은 새로운 분야로의 진출 전략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
전쟁은 더 이상 먼 나라의 뉴스가 아니다. 곧바로 유가와 환율, 그리고 기업의 비용 구조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는 통합으로 인해 지정학적 충돌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시대에 들어섰다. 건설업계와 국토부 역시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필요한 것은 단순한 우려가 아니다. 외부충격에 최적대응을 위해 업계와 정부가 함께 준비하는 행동계획이다. /이양승 군산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이양승 군산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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