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인공지능(AI) 열풍이 반도체 시장을 뒤흔들면서 노트북과 게임기, 그래픽카드 가격이 급등하는 이른바 '칩플레이션(Chipflation)'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AI 서버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일반 소비자용 PC와 게임기에 들어가는 메모리와 부품 공급이 줄어들고, 그 여파가 완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장 큰 원인은 AI 서버용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 급증이 꼽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업체들이 AI 서버용 HBM 생산에 집중하면서, 일반 노트북과 조립 PC에 들어가는 범용 D램 공급이 빠르게 줄고 있다.
9일 정부는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 6차 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논의된 'PC·노트북 가격동향 및 대응방향'에 따르면, PC용 메모리로 쓰이는 DDR5 16Gb D램 가격은 지난해 1분기 3.9달러에서 올해 1분기 29.5달러로 7배 이상 뛰었다. DDR4 8Gb 역시 같은 기간 1.4달러에서 11.7달러로 급등했다.
정부는 용인의 SK하이닉스, 평택의 삼성전자, 미국 아이다호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 신규 공장이 2027년부터 가동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초기 생산 안정화 기간을 고려하면 공급 부족은 2027년 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앞서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TrendForce)도 올해 2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이 전 분기보다 58~63%, 낸드플래시 계약가격은 70~75%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메모리 업체들이 수익성이 높은 서버용 제품 생산을 우선하면서 PC 제조사와 부품업체에 공급되는 물량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완제품 가격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정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 16인치·램 32GB·SSD 1TB 노트북 모델의 국내 판매가격은 지난해 9월 216만원에서 올해 4월 255만원으로 18.1% 올랐다. 또 다른 15.6인치·램 16GB·SSD 512GB 모델 역시 같은 기간 137만원에서 145만원으로 5.8% 상승했다.
실제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컴퓨터 가격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4.3%에서 올해 3월 12.4%까지 높아졌다. 반도체 가격 상승이 노트북과 데스크톱, 주변기기 가격 전반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의미다.
이 밖에 시장조사업체 가트너(Gartner)는 2026년 연간 평균 D램 가격이 전년 대비 125%, 낸드플래시 가격은 234%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메모리와 SSD 가격 상승으로 올해 PC 가격은 평균 17%, 스마트폰 가격은 13%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게임기와 그래픽카드 역시 예외는 아니다. AI 서버용 HBM 생산이 확대되면서 같은 D램 생산능력을 사용하는 그래픽카드용 GDDR 메모리 공급이 줄고 있다. 이에 따라 게이밍용 그래픽카드와 차세대 게임기 역시 메모리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향후 신제품 가격 인상이나 할인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생산 비용 자체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칩플레이션을 키우는 요인이다. 업계에서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의 차세대 2나노 공정 웨이퍼 가격이 3만달러 안팎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현재 3나노 공정보다 10~20%가량 높은 수준이다. 첨단 공정으로 갈수록 설비 투자와 제조 난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과거처럼 성능 향상과 가격 인하가 동시에 이뤄지던 공식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특히 PC·노트북 가격 상승이 저소득층과 학생의 디지털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보고 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이날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에서 PC·노트북 시장의 유통·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가격 담합이나 매점매석 등 불공정행위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온라인 경쟁과 재고 부담 등을 고려할 때 현재로선 시장에 매점매석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또 중앙정부와 공공기관이 보유한 불용 PC를 지방정부에 무상 양여해 취약계층 지원에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는 현재 폐기되는 불용 PC 가운데 약 58%는 수리와 정비를 거치면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사랑의 그린 PC' 사업과 'AI 디지털 배움터' 사업에 활용하도록 관련 지침을 개정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정부는 불용 PC 재활용과 저소득층 지원 확대를 병행하기로 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도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한 PC·노트북 구매 지원 단가를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가격 상승을 반영해 1인당 지원 단가도 104만2천원(지난해 기준)에서 높일 계획이다. 또, 추가경정예산이 확정되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증액분을 활용해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학생 1인 1디바이스 보급 정책도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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