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훈 원장(편한자리의원, ‘통합돌봄현장 의사가 집으로 옵니다’ 저자)
2005년 대구가톨릭대병원. 당시 인턴이었던 필자의 목에는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바로 삐삐다. 한 개가 아니다. 동료 인턴들이 오프(휴무)인 날에는 그들의 삐삐까지 넘겨받아 4개에서 많게는 6개까지 걸었다. 걸을 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수행 중인 승려의 목탁 소리 같았다. 밤낮없이 울려대는 호출은 영혼을 탈탈 털어가는 ‘지옥의 벨소리’였다.
그땐 몰랐다. 대학병원이란 거대한 구조 속에서 인력을 효율적(?)으로 쥐어짜는 그 시스템이, 20년 뒤 내 삶의 복선이 될 줄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병동’
2026년 현재, 필자는 병원 건물 안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더 큰 병원을 누비고 있다. 의정부에서 양주, 동두천, 연천, 포천을 거쳐 남양주, 노원, 도봉, 강북까지. 필자의 진료실 경계는 지도로 그려야 할 만큼 광범위하다.
요즘은 목에 삐삐를 매달진 않지만 업무용 스마트폰이 대신한다.
초고령사회, 병원 문턱을 넘기 힘든 어르신들에게 방문진료는 가뭄의 단비다.
한 번 맛 보면(?) 절대 끊을 수 없는 이 서비스의 매력 때문에 진료가 끝나면 번호를 알려달라는 보호자가 있다.
신뢰가 가는 분께는 번호를 드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업무용 폰으로 안내한다. 간호사들에게 ‘퇴근 후엔 전화를 받을 의무는 없다’고 한다. 근로기준법을 우습게 보는 악덕 고용주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며 낮에 열심히 일한 선생님들에게 최소한의 휴식시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우리기 살아야 다음 날 환자를 볼 수 있으니까.
삐삐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달리는 현재 필자의 모습(그림=AI생성).
왜 지금 안 와요
방문진료는 5분 대기조가 아닙니다
가끔은 대학병원 인턴 시절보다 매운 상황이 펼쳐진다. 동선상 근처를 지날 때 호출이 오면 번개처럼 방문하는 특급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때가 더 많다.
그럴 때면 수화기 너머로 불호령이 떨어진다. 환자가 죽겠다는데 왜 지금 당장 안 오냐. 원무과 직원에게 험한 말을 쏟아내는 보호자를 마주하면 씁쓸해진다. 환자를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방문진료는 방문 응급실이 아니다.
예약된 시간에 진료하는 것이 원칙인데, 짜장면 배달 늦었다고 독촉하듯 화를 내면 마음에 멍이 든다.
대학병원 인턴 시절 병동을 뛰어다니며 조치하던 그때나 지금이나 “선생님, 빨리요!”라는 외침은 변함이 없다.
2026년엔 사회적 의사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커다란 대학병원과 같다. 고령화로 인해 집집마다 환자가 있고 병동 복도 대신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린다.
필자는 그 거대한 병원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호출에 응답하는 사회적 의사인 셈
이다.
20년 전 6개의 삐삐를 목에 걸고 잠을 쫓던 그 시절의 열정이 차 뒷좌석에 실린 진료 가방 속에 담겨 있다. 가끔 화내는 보호자 때문에 기운이 빠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민원을 넣는 보호자 때문에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환하게 반기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보며 다시 시동을 건다.
오늘도 내 삐삐(스마트폰)는 울린다. 자, 다음 병동(동네)은 어디인가? 사회적 의사 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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