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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냄새까지 복원하는 과학…'향기 데이터'가 시간을 되살린다

향료·소재 기업인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등은 천연 향료 데이터베이스와 향기 분석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일부 스타트업은 인공지능 기반 향기 추천 및 합성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익명을 요청한 향료공학...

냄새까지 복원하는 과학…'향기 데이터'가 시간을 되살린다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동전과 고대 이집트 향수 용기 (사진=Wikimedia Commons)

| 이코노미사이언스 정연재 기자 |

향기는 가장 오래된 기억 저장 장치다. 시각이나 청각보다 먼저 감정과 기억을 자극하는 이유는 후각 신호가 뇌의 해마와 편도체로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프루스트 현상’으로 불리는 이 특성은 최근 과학 기술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연구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과거의 냄새를 데이터로 복원하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단순한 향기 재현을 넘어, 고대 사회의 생활 방식과 교역 구조까지 추적하는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핵심은 ‘생체분자 고고학’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연구진은 고대 유물에서 극미량의 유기화합물을 추출한 뒤, 기체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GC-MS)을 통해 화학적 패턴을 분석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는 물질마다 고유한 ‘화학 지문’을 갖는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특정 향이 어떤 식물, 어떤 기름, 어떤 조합으로 만들어졌는지까지 역추적할 수 있다. 실제로 연구진은 고대 이집트 미라 방부제에서 타르와 수지, 향신료가 혼합된 향기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 같은 연구는 문화유산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University College London 연구팀은 오래된 도서관의 종이 냄새와 역사적 공간의 향기를 분석해 전시 콘텐츠로 구현했다. 유럽연합이 추진한 Odeuropa 프로젝트 역시 수십만 건의 기록을 바탕으로 과거의 냄새를 데이터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연구자들은 이를 ‘후각 유산(olfactory heritage)’으로 정의한다. 눈으로 보는 유물뿐 아니라, 냄새까지 보존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기술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아예 사라진 향기를 다시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의 Ginkgo Bioworks는 멸종된 식물 표본에서 DNA를 추출해 향기 생성 유전자를 찾아낸 뒤, 이를 효모에 삽입해 향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복원에 성공했다.

이 방식은 화학적 복원을 넘어 ‘생물학적 재현’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평가된다.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현재는 사라진 향기를 실험실에서 다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R&I센터(원 안은 연구장면) (사진=아모레퍼시픽)

국내에서도 관련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향료·소재 기업인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등은 천연 향료 데이터베이스와 향기 분석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일부 스타트업은 인공지능 기반 향기 추천 및 합성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익명을 요청한 향료공학 전문가는 “향기는 감성 영역으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분자 데이터로 해석되는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며 “향기 복원 기술은 향수 산업을 넘어 문화 콘텐츠, 메타버스, 헬스케어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냄새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과학은 이제 보이지 않는 감각까지 데이터로 바꾸며, 인간의 기억 영역을 기술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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