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예온 기자] 국내 건설 시장의 장기 침체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국내 주요 건자재 기업들의 실적이 전반적인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내수 급감으로 공장 가동률이 위험 수위까지 낮아진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원재료비 상승 압박까지 더해지며 수익성 방어가 업계 전반의 최우선 과제로 부각되는 모습이다.
19일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6년 4월 주택사업경기 전망지수는 전월 대비 25.3p 하락한 63.7을 기록했다. 이처럼 전방 산업인 주택 경기가 급속도로 냉각된 것은 7%대 고금리, 선거 이후 예고된 세제 부담, 중동 분쟁에 따른 원가 급등 등 이른바 '삼중고'가 누적되며 시장에 영향을 미친 결과로 풀이된다.
주택 경기 냉각의 여파는 이미 지난해부터 건자재 업계를 덮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LX하우시스, 한샘, KCC글라스, 현대L&C 등 국내 인테리어 자재 시장을 이끄는 주요 기업들의 지난해 실적은 전반적으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LX하우시스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 3조1786억원을 기록하며 전년(3조5720억원) 대비 11.0% 감소했다. 특히 주력 사업인 건축자재 부문 매출이 15.8% 줄어든 2조1323억3000만원에 그쳤고, 영업이익은 500억6300만원 흑자에서 303억4300만원 손실로 돌아서며 적자 전환했다. 이에 따라 전체 연결 영업이익 역시 전년 대비 86.6% 급감한 130억6000만원에 머물렀다.
한샘 역시 실적 하락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1조7445억원으로 전년 대비 8.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85억원, 당기순이익은 463억원으로 각각 40.8%, 69.3% 급락했다. 사업부별로는 리하우스와 홈퍼니싱 부문 매출이 5.9% 줄었고, 기업 간 거래(B2B) 부문은 11.2% 하락했다.
KCC글라스는 매출 1조9006억600만원을 기록했으며, 주력인 유리 제품 매출이 7.4% 감소하며 수익성이 악화됐다. 현대L&C 또한 건축자재 부문 매출이 9828억5300만원으로 전년 대비 8.8% 하락하며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이처럼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수익성 악화는 단순한 실적 감소를 넘어 기업의 미래 성장 동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부터 줄이는 '마른 수건 짜기'식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실제로 LX하우시스의 R&D 비용은 전년 대비 21.5% 급감한 523억8600만원에 그쳤다. 한샘(-7.8%), KCC글라스(-6.3%), 현대L&C(-15.9%) 역시 투자 규모를 일제히 축소하며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대외 변수 역시 여전히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고조로 인한 에너지 가격 변동은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동 의존도가 높은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NCC(나프타분해시설) 가동률이 60%대로 떨어지면서, 창호와 바닥재의 핵심 원재료인 PVC(폴리염화비닐) 가격의 불확실성도 크게 확대됐다.
이에 대해 KCC글라스 관계자는 "사태 장기화 시 원가 압박은 불가피하지만, 현재는 비축 물량이 있어 당장 판매가를 인상할 계획은 없으며 상황을 예의주시 중"이라고 밝혔다. 한샘 관계자 또한 "주요 표면제와 핵심 원자재는 이미 상반기에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 원가 상승과 수급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자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유류 최고가격제 도입과 특별관리 품목 확대(43개) 등을 통해 물가 안정 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며, 공정거래위원회도 시장 점검에 나선 상태다. 업계는 원가 상승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만큼 가격 조정 시점이 일부 겹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정부는 건자재 공급망 관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5일 김이탁 제1차관은 "국토부는 건자재 수급 차질에 따른 건설현장 공사 중단을 방지하고자 건설현장 비상경제 TF(태스크포스)를 가동해 단열재와 창호 등 주요 건설자재 수급 동향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시장 다변화와 체질 개선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LX하우시스는 북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고부가가치 제품인 엔지니어드 스톤 등을 앞세워 신제품 출시와 신규 고객사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한샘은 강도 높은 내실 경영과 수익성 중심의 사업 재편을 추진 중이다. 비효율 채널을 축소하고 핵심 카테고리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 현지 법인 청산 및 지분 매각 등 해외 사업을 정리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KCC글라스는 해외 신규 시장 개척과 함께 반도체 패키징용 유리기판 소재 개발 등 기술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현대L&C는 인도 시장을 중심으로 지역 확장과 제품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인도 정부의 도시 인프라 개발 기조와 프리미엄 주택 수요 증가에 맞춰 현지 라인업을 강화하고 판로 확대에 나서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