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멜리아 호텔. EPA연합뉴스
외국 관광객이 사라진 호텔은 텅 비었고, 학생들은 입시 대신 성적으로 대학에 가게 됐다. 미국의 대(對)쿠바 제재가 전방위로 강화되면서 쿠바가 수십 년 만의 복합 경제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스페인 최대 호텔 체인 멜리아는 쿠바 군부 계열 기업 가에사(GAESA)와 함께 운영하던 호텔 15곳의 영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멜리아는 현재 쿠바에서 34개 호텔을 운영하고 있지만, 미국의 제재 강화·관광객 감소·전력난·악화하는 경영 환경 등을 이유로 사업 규모를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회사 측은 “지정학적·사회적·경제적 환경 변화에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쿠바를 떠나는 것은 멜리아뿐만이 아니다. 스페인 호텔 체인 이베로스타와 캐나다계 블루다이아몬드리조트, 아시아계 호텔 기업 아치펠라고 등도 최근 잇따라 철수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블루다이아몬드리조트는 쿠바 전역에서 62개의 호텔과 리조트를 운영해 온 대표적인 외국계 관광기업이었다.
항공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스페인 이베리아항공은 마드리드와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를 연결하는 직항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쿠바 관영매체 쿠바데바테는 수요 감소와 관광객 급감을 이유로 해당 노선이 최소 오는 10월까지 중단될 것으로 전망했다.
관광산업 침체의 배경에는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쿠바 군부 대기업 가에사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가에사와 거래하는 외국 기업에도 불이익을 주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미국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외국 기업들에 가에사와 관련된 거래를 정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쿠바 경제학자 다니엘 토랄바스는 “글로벌 기업들의 철수가 이어질 경우 쿠바 경제가 입게 될 단기적 충격은 파멸적 수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3일(현지시각) 쿠바 수도 아바나의 한 은행 밖에서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금융 분야 타격은 더욱 직접적이다. 쿠바 중앙은행은 오는 6일부터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 결제가 쿠바 내에서 전면 중단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관광객과 현지 주민들은 국제 결제카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 왔지만 앞으로는 사실상 국제 금융망 이용이 어려워진다.
쿠바 정부는 국가 선불카드와 러시아·중국 등 미국 제재 영향권 밖 국가의 카드 사용은 가능하다고 설명했지만, 관광객 감소와 소비 위축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쿠바의 한 초등학교. AFP연합뉴스
경제 위기는 교육 현장까지 번지고 있다. 쿠바 정부는 반복되는 대규모 정전으로 정상적인 수업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해 올해 학기를 조기 종료하고 대학 입학시험도 취소하기로 했다. 대신 학교 성적만으로 대학 신입생을 선발할 예정이다.
쿠바에서는 최근 국가 전력망 붕괴가 반복되면서 일부 지역에서 최대 48시간에 이르는 정전이 이어지고 있다. 전력난 장기화로 대학들은 사실상 휴교 상태에 들어갔고, 일부 학교에서는 급식과 식수 공급마저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앤 르메스트르 유네스코 아바나 지부장은 “현재의 에너지 위기로 쿠바 교육 시스템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며 “학생들은 정상적인 학습뿐 아니라 또래와의 사회적 관계 형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쿠바 혁명의 마지막 상징으로 불리는 라울 카스트로 전 공산당 총서기는 지난달 노동절 행사 이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올해 95세가 된 그는 여전히 쿠바 정치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건강 이상설부터 미국 제재 대응을 위한 비공개 행보라는 해석까지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쿠바 당국은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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