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될 일말의 가능성 내려놓고, 명랑하게 작업하겠다.”
허진 교수 정년퇴임 기념 ‘말이라 불리는 사나이’전
19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세종뮤지엄갤러리 1·2관
2026년 08월 18일(화) 19:45
‘유전’(流轉)
‘유목동물+인간-문명’
작가는 영원한 현역이다. 직장이라는 밥벌이의 장에서 직함을 내려놓고 물러날 수 있지만 예술의 여정에는 퇴직이 없다. 창작을 하는 이에게 은퇴는 오히려 새로운 열정을 피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말이라 불리는 사나이’라는 역동적이면서도 다의적인 의미를 담은 주제로 정년퇴직을 앞두고 전시를 여는 허진 전남대 미대 교수.
허진 교수는 19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세종뮤지엄갤러리(세종대 대양AI센터) 1·2관에서 전시를 펼친다.
‘말이라 불리는 사나이’라는 표제는 허진 작가의 예술 인생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은빛 빗금이 쳐진 빛나는 몸으로 화면을 질러가는 동물들의 형상은 그림에 삶을 통째로 바쳐온 이의 열정으로 다가온다.
‘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
허 교수는 최근 전화 통화에서 “1991년 전남대 전임강사로 대학에 몸을 담았는데 지금까지 35년을 대학 공동체와 동고동락했다”며 “대학을 떠나며 그에 걸맞은 애정으로 지난 시간을 기념하고 싶어 이번 전시를 마련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는 세리모니(ceremony)보다 리츄얼(ritual)의 성격을 띄는데 저 자신에대한 내적 의례(儀禮)이기도 하다”며 “하나의 문지방을 넘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신고식이나 다름없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11년 성곡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이후 가장 넓은 공간에서 펼쳐진다. 과거에 공개하지 않았던 시리즈를 선보이는 것 외에도 ‘유전’ 시리즈와 기타 작품으로 자신의 예술인생을 응축해 보인다는 데 의미가 있다.
1988년 동숭동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지금의 아르코미술관)에서 첫 개인전 ‘묵시’를 열었을 때 그는 주목받는 청년작가로 떠올랐다. 한지와 수묵채색이라는 전통 재료에 여러 화판을 콜라주하는 기법을 결합한 그림은 관람객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됐다.
이후 작가는 관심 주제를 점차 넓혀가며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작품에 투영했다. ‘묵시’ 등의 작품이 당대 한국 근현대사의 강박을 파편적으로 묘사한 것이라면 ‘다중인간’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고통을 투영한 작품이다.
허진 교수가 정년퇴임을 기념해 ‘말이라 불리운 사나이’전을 세종뮤지엄갤러리에서 19일부터 30일까지 연다. <허진 교수 제공>
20년대 들어서는 화폭에 동물들을 묘사함으로써 새로운 작품 세계로 나아갔다. 포유류 동물의 형상이 화면을 장식하는 대신 인간은 실루엣으로 흩어져 배열될 뿐이었다. 이주희 평론가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고 초자연적 현상을 환유하며 자유에 다가가고자 했던 마술적 리얼리즘과도 성격을 함께한다”고 평한 바 있다.
허 교수는 작가생활을 해오며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지지해준 이들과 가까이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가족, 친구, 선후배 같은 분들과 무엇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어쩔 수 없이 크게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재주 있는 학생들을 많이 봤다. 재능을 타고난 학생들이 적지 않았지만 예술의 길을 가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화가로 살아가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자기 삶을 잘 찾아나가고 있을 것이다”라면서 “그럼에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파고들었으면 한다”고 허 작가는 부연했다.
대학 교수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이제 오롯이 작가 허진으로 남았다. 그는 ‘모범의식’을 내려놓아야겠다고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꼰대”라는 말이 있지 않나요? 어느 자리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굳어지고 퇴색하지요. 앞으로 전업작가 허진으로서, ‘꼰대’가 될 일말의 가능성을 내려놓고, 명랑하게 작업하는 사람이 될 생각입니다.”
/박성천 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