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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화균 칼럼] ‘삼전닉스’만의 호황, 한국병(病)이 두렵다

농림업 국가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환골탈태했다. 전체 수출액 중 20% 이상이 노키아 몫이었다. 조세 수입이 넘쳐났고, 정부는 원없이 복지 비용을 썼다. 영원할 것 같았던 노키아 왕국은 애플 아이폰의 등장과 삼성...

[김화균 칼럼] ‘삼전닉스’만의 호황, 한국병(病)이 두렵다

김화균 편집국장

김화균 편집국장

노키아는 1990년대부터 10여년간 휴대폰 최강자로 군림했다. 삼성폰도 모토롤라폰도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국가대표 노키아의 독보적 활약에 핀란드 경제는 초호황을 누렸다. 농림업 국가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환골탈태했다. 전체 수출액 중 20% 이상이 노키아 몫이었다. 조세 수입이 넘쳐났고, 정부는 원없이 복지 비용을 썼다.

영원할 것 같았던 노키아 왕국은 애플 아이폰의 등장과 삼성 스마트폰의 가세로 급격히 무너졌다. 1등에 안주해 스마트폰 시대의 지진아가 된 탓이었다. 노키아에 기대온 핀란드 경제의 충격파는 더 컸다. 경제 전체가 뒷걸음했고, 실업 대란이 뒤따랐다. 급감하는 세금에 복지 왕국은 결국 길고 고통스런 긴축 재정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네덜란드는 1959년 대형 천연가스 유전 개발에 성공하며 또다른 황금기를 맞았다. 유전 개발로 이익이 넘쳐났다. 하지만 약보다 독이 더 컸다. 이어진 통화 가치 상승은 네덜란드의 다른 산업에 약영향을 미쳤다. 경쟁력이 처졌다. 경제는 날개없이 추락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1977년 이를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라고 꼬집었다. 네덜란드병은 특정 업종(자원·기업)에 집중된 호황이 결국 국가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 내리는 현상의 상징어가 됐다.

비슷한 사례는 글로벌 경제 곳곳에서 이어졌다. 1970~1980년대 ‘영국병’(British Disease)과 1982년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한 멕시코가 대표적이다. 러시아도 2000년대 초반 위기를 겪었다. 모두 에너지 ‘횡재’에 ‘몰빵 안주한’ 결과가 낳은 참사다.

결은 다르지만 스페인과 그리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들 국가에는 2000년대 초반 유로화 채택 이후 낮은 금리 덕에 막대한 외자가 유입됐다. 부동산과 건설업만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졌다. 물가·임금 급등 속에 제조업 경쟁력이 사라졌고, 2008년 남유럽 재정위기 때 직격탄을 맞았다. 금융 산업에 올인하던 아이슬란드도 금융위기 폭탄에 국가 부도사태를 맞았다.

2026년, 한국 경제에도 유사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 즉 반도체 업종 의존도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동전쟁 속에서도 견조하게 성장하는 나라로 꼽힌다. 수출은 사상 최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경제는 다시 플러스 성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식 시장은 더 놀랍다. 꿈 같았던 ‘오천피’(코스피 5000포인트)는 현실이 됐다. ‘육천피’를 넘어 ‘칠천피’를 눈 앞에 두고 있고, ‘팔천피’ 전망도 나온다.

모두 반도체 슈퍼사이클 덕분이다. 수출과 소비, 투자의 축이 모두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반도체가 꿋꿋이 버티고 있다. 당장 27일부터 지급되는 고유가 피해지원금도 반도체로 번 돈이 없었으면 정부가 ‘땡빚’을 내야 할 판이었다. 국민의 노후 버팀목인 국민연금의 수익율도 반도체 강세가 끌어 올리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와 국민의 현재와 미래가 오롯이 반도체 하나에 달려 있는 셈이다.

가히 ‘기승전 반도체’, ‘기승전 삼전닉스’다. 하지만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반도체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삼전닉스가 언제까지 현재 경쟁력을 유지할까. 반도체가 다시 침체기를 맞을 경우 다른 대체 산업이 있는가. 언제까지 반도체 벌통에서 꿀을 빨 수 있을까. 자동차, 철강, 이차전지, 그리고 유독 각광을 받고 있는 K-방산인가. 하지만 이들 업종이 과연 반도체 경기 후퇴를 상쇄할 방어 업종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다행히 정부도 포스트 반도체 시대를 이끌 신성장동력 육성에 나섰다. 인공지능(AI), 로봇, 바이오, 에너지 등 셀 수 없이 많다. ‘뿌리 창업’, 즉 스타트업 육성도 외친다. 해고된 노키아맨들이 스타트업 설립에 나서면서 핀란드가 유럽 최대 창업 허브 중 하나로 재탄생한 것이 반면교사다.

방향은 맞지만 속도가 늦다. 현장의 체감도 역시 정부의 구호와 괴리가 있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기업 앞길을 막는 대못만 줄창 박고 있다. 곳곳에서 “벌꿀을 더 많이 달라”는 아우성이 요란하다. 기업 미래는 안중에 없다.

위기는 잘 나갈때 대비해야 효과가 배가되는 법이다. 잔치 뒤에는 어김없이 쓰레기가 쌓인다. 그게 경제의 냉정한 이치다. 자칫 ‘한국병’이란 신조어가 탄생할까 두렵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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