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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현우의 핫스팟] 미국이 싫어 중국 품에?···다극주의 '자발적 종속...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김현우의 핫스팟] 미국이 싫어 중국 품에?···다극주의 '자발적 종속...

'핫스팟(HotSpot)'

과거 상처 엉킨 반미 다극주의의 민낯

감정적 반발로 흐른 한국 외교의 현주소

다극 질서 담론 속 숨겨진 자국 우선주의

피해의식 끊어내야 진정한 자율성 확보

"중간만 가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처세술을 조기 이수한 우리는 영혼 없는 끄덕임과 '모르는 척'으로 무장한 생존의 고수들이다. 퇴근길 소주 한 잔에 "오늘도 버텼다"며 스스로를 마취하고, "받은 만큼만 일한다"며 핏대 세우는 걸 훈장처럼 여긴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공했다는 이들의 삶은 왜 우리와 이토록 딴판일까. 어쩌면 우린 그저 거대한 '펜듈럼(Pendulum)'의 진동판 위에서 시키는 대로 춤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공력을 낭비하며 '잉여 포텐셜'을 공급하는 건전지 신세로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 교과서 대신, 왜 이 지겨운 장면이 무한 반복되는지 그 메커니즘이 궁금했다. 내게 그 프리즘을 빌려준 바딤 젤란드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의 '트랜서핑' 이론을 메스 삼아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김현우의 핫스팟]을 시작한다.

한국 사회의 반미 다극주의는 IMF 등 과거의 상처와 피해의식이 투사된 감상주의의 결과다. 미국 패권에 대한 정서적 반발로 중국·러시아의 다극 질서를 대안으로 미화하는 착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낡은 기억의 케이블을 끊고 냉혹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현실을 직시하는 코어를 회복해야 할 때다. /챗GPT 제작 이미지

집집마다 거실 TV 장식장 아래나 서재 구석을 열어보면 ‘판도라의 상자’가 하나씩 있다. 언젠가 쓸 데가 있을 거라며 버리지 못한 온갖 잡동사니 전선이 뱀 허물처럼 엉켜 있는 서랍이다. 2005년에 쓰던 휴대폰 24핀 충전기·피복이 벗겨진 2012년산 이어폰·지금은 규격조차 가물가물한 구형 디지털카메라 연결 케이블 등이다.

가끔 최신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돼 급하게 C타입 케이블을 찾을 때 이 서랍을 열면 부아가 치민다. 과거의 유물들이 잔뜩 엉켜 정작 지금 당장 필요한 선을 꺼낼 수 없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버리면 그만인데 희한하게도 못 버린다. “혹시 나중에 필요하면 어떡해?”라는 막연한 불안감·과거에 그 기기를 사며 치렀던 비용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번지는 ‘반미 다극주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지금 최신형 C타입 케이블(현실)을 꽂아야 할 자리에 과거의 상처가 잔뜩 묻은 구형 24핀 충전기(기억)를 억지로 쑤셔 넣으며 화를 내고 있다.

과거 상처 엉킨 반미 다극주의

미국 주도의 질서에 피로감을 느끼며 다극 체제를 은근히 반기는 기류가 읽힌다. 집단 기억이 만들어낸 일종의 ‘재생 메커니즘’이다. 1973년과 1979년의 오일쇼크로 겪은 고물가와 구조조정의 공포·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1996년까지 연 10%씩 올랐던 명목임금의 팽창·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안겨준 국가적 굴욕이다. 서로 다른 시대의 상처들이 한데 엉켜 거대한 감정의 덩어리로 공진하고 있다.

트랜서핑의 용어를 빌리자면 한국 사회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기보다 아주 강렬한 감정이 덧칠해진 ‘슬라이드(Slide)’를 눈앞에 끼워 넣는다. 1970년대의 슬라이드가 “무조건 버티면 이긴다”였다면 1997년 이후의 슬라이드는 “외부 세력이 우리를 무너뜨렸다”였다. 당시 한국 정부나 IMF 문서 모두 우리의 과잉투자나 구조적 결함을 부도 사태의 원인으로 적시했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서 우리의 내부적 결함은 싹 지워졌다. ‘IMF라는 외부의 폭력’이라는 기호로 압축됐을 뿐이다.

사람이든 국가든 에너지를 과도하게 쏟는 대상은 결국 현실을 왜곡하게 마련이다. 한국 사회는 늘 위기 그 자체의 구조적 해결보다는 위기의 ‘얼굴’에 더 많은 감정을 실었다. 1970년대엔 고통을 감내하는 국가주의로·1997년엔 굴욕을 강요한 외부에 대한 원망으로·지금은 ‘피로한 미국 질서’라는 얼굴로 분장해 나타났다.

감정적 반발로 흐른 외교 전략

감정의 거대한 진동체 즉 ‘펜듈럼(Pendulum)’이 작동한다. 지금의 반미 다극주의는 “미국 패권 피로”·“IMF 기억”·“동맹 비용 부담 증가”라는 불만들이 서로 엉켜 만들어낸 거대한 펜듈럼이다.

트럼프 2기 이후 미국은 동맹국에 더 강한 안보·경제적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이런 변동성 앞에서 “미국 질서에 너무 깊게 묶여 있다”는 피로감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 피로가그저 ‘정서적 탈출구’를 찾는 감정적 반발로 흐르고 있다는 데 있다.

이때 중국과 러시아가 제시하는 다극 질서라는 청사진이 한국 사회의 정서적 빈틈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동아시아연구원(EAI)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 주도 동맹 체제를 ‘냉전적 사고’라 비판하며 다자주의와 공동안보를 앞세운다. “종속 대신 자율·일극 대신 균형”이라는 이들의 슬로건은 꽤나 달콤하게 들린다.

착각하면 안 된다. 펜듈럼은 늘 ‘상대 진영을 부정하는 언어’로 세력을 불린다. 미국 패권에 대한 피로와 반감이 커질수록 중국·러시아의 다극 담론은 마치 우리를 구원해 줄 감정적 해방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다극주의 밑바닥에는 철저하게 ‘자국 영향권 확대’라는 힘의 논리가 깔려 있다. 우리가 지금 좇는 반미 다극주의가 과연 진정한 자율성의 확장인지 그저 미국에 삐쳐서 선택한 또 다른 형태의 맹목적 의존인지 묻지 않는다면 우리의 외교 노선은 철없는 감정의 반사작용으로 전락하고 만다.

과거의 기억이 마비시킨 현실

조용한 코어(Core)가 없는 국가는 시끄러운 메모리(Memory)에 휘둘린다. 코어가 튼튼한 현실의 구조라면 메모리는 축적된 과거의 감정이다. 한국 현대사는 외부 충격이 올 때마다 낡은 시스템(코어)을 수리하기보다 억울하고 분했던 과거의 기억(메모리)을 호출하는 데 더 열을 올렸다.

재밌는 것은 좌우의 진영 논리조차 이 지점에서는 한통속이라는 사실이다. 보수는 자강과 주권의 언어를 빌려오고 진보는 반패권과 평화의 언어로 포장하지만 그 깊은 밑바닥에는 공통적으로 “외부 질서가 우리를 괴롭힌다”는 피해의식의 엉킨 케이블이 깔려 있다. 이것이 바로 좌우를 가로지르는 한국 사회 특유의 토양이다.

지금의 반미 다극주의는 세 가지 착시가 겹친 결과물이다. △오일쇼크와 IMF의 고통이 하나로 뭉친 ‘기억의 압축’ △복잡한 내부 구조 문제를 미국이라는 단일 상징에 몰아넣는 ‘적대의 단순화’ △미국 밖의 질서는 덜 폭력적일 것이라 믿는 ‘대안의 미화’다. 어떤 대상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하면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미국을 넘어선다는 것 자체에 상징적 구원을 실어버리면 외교는 종교가 된다.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전략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이 진짜 비극이다. 한국 사회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스크린 위에 우리 현대사의 피로와 콤플렉스를 그대로 투사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반미 다극주의는 고도의 외교 철학이라기보다 국가적 감상주의가 국제질서의 변화라는 무대 위에서 새로 주워 입은 옷에 불과하다.

거실 장식장 아래 서랍을 정리할 때가 됐다. 엉킨 24핀 케이블을 과감히 끊어내지 못하면 우리의 스마트폰은 영원히 방전된 채 켜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이미 C타입을 넘어 무선 충전 시대로 가고 있는데 말이다.

☞트랜서핑(Transurfing)= 러시아 출신 물리학자 바딤 젤란드 씨가 창안한 개념으로, 현실은 무수한 가능성의 공간이며 개인이 어떤 에너지(감정)를 방출하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특정 현실이 눈앞에 구현된다는 이론이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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