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만 알았던 반도체산업이 사람의 생명을 꺼뜨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19년 전 고 황유미씨를 통해 알려졌다. 그 이후 지금, 반도체산업을 묻는 연속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 이성민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희연)
1994년 12월생, 만 30세. 삼성전자 김치엽 연구원이 세상을 떠났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곧바로 입사해 일을 시작한 그에게 불과 1년 남짓한 시간은 삶을 포기할 만큼 버거운 시간이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몰아붙였을까. 뒤늦게 확인된 그의 기록에는, 일터에서의 극심한 압박과 고민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잘해보려 하는데 하나씩 일그러지고 있다. 이젠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검색기록에는 ‘회사에서 털렸을 때’ ‘마음이 지옥’ ‘회사에서 찍힌 사람’과 같은 표현이 반복된다. 업무 관련 내용을 찾던 흐름 속에서, 늦은 새벽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이 검색어들은 직장 내 갈등과 심리적 압박이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지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진료기록 역시 다르지 않다. ‘파트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남들만큼 해야 한다’는 문장에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몰아붙이며, 조직의 기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을 견뎌온 흔적이 담겨있다. 중요한 발표를 앞둔 시점, 그는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스스로에 대한 좌절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은 점차 ‘인사 조치’ ‘해고’라는 보다 구체적인 불안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검색으로까지 나아갔다. 그가 겪은 고통은 단순한 개인적 문제가 아니었다. 반복되는 업무 압박과 조직 내 관계 속에서 점차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입사 1년도 안 되어 정신건강휴직을 할 판이군.” 그는 사망 20일 전, 사내병원 마음건강클리닉을 찾았다. ‘지난 한 달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일과 직업’을 꼽았고 “잠을 설치고 모든 일이 힘들게 느껴진다” “앞날이 암담해 무엇을 해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등의 표현으로 업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회사는 그가 병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부인하지만, 그는 분명히 쉬어야 할 상태였다. 회사 제출용 진단서를 발급받았고, 면담 과정에서 마음건강휴직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사망 전날 검색어 중 하나 역시 ‘우울증 연차’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쉬지 못했다. 증상은 악화됐고, 특히 수면장애가 심각했다. 해가 뜰 때까지 잠들지 못했고, 수십 개의 알람을 설정해도 깨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졌다. 약을 바꾸어도 호전되지 않았다. 그의 검색기록에는 ‘전기충격알람’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한다. 그의 상태가 얼마나 절박했는지, 그 마음을 온전히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의 위태로운 상태를 회사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그가 출근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거주지를 찾아가 동의 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모습을 발견했다. 고인의 아버지가 “오후에 직접 찾아가 보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회사는 긴급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하고 확신했다. 회사는 그가 극한의 상황에 몰려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위기에 놓인 그에 대한 보호나 개입은 없었다. 그는 철저히 방치됐다.
그의 죽음은 우연이 아니다. 2024년 3월, 반올림이 전국삼성전자노조와 함께 발표한 건강 실태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수면장애 비율은 일반 임금노동자에 비해 최대 3.7배 높았고, 우울 증상 역시 약 2.5배에 달했다. 무엇보다 자살충동은 7배, 자살시도는 10배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됐다.
김치엽 연구원의 기록은 이 통계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픈 몸과 마음으로 버티며 그는 끝까지 노력했다. 그러나 병은 깊어졌고, 그 과정에서 그는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 우울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적지 않은 곳, 쉬는 것조차 동료에게 부담이 될까 고민해야 하는 곳, 아파도 멈출 수 없는 구조 속에서, 그의 죽음은 과연 개인의 문제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2025년, 그는 스스로의 손으로 새해 소망을 적었다. ‘행복해지기.’ 그 짧은 문장에는,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져가던 마음을 다시 붙잡아 보려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임과 전시회를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 노동자, 조금만 덜 힘들었으면, 조금만 숨 쉴 수 있었으면, 그가 그 소망을 이룰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가 무너져가는 신호를 보내고 있음에도 누구도 붙잡아주지 않았던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이 쌓여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면, 이것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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